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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공이야기> 손호규 도예가
 <도공이야기> 손호규 도예가
ⓒ 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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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규(52) 도예가 작품은 세련되고 명징하다. 살짝 휜 선은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은은한데 선명하고, 깊은 우물처럼 신비스런 이야기가 숨어있는 듯하다. 이 느낌의 정체는 무엇일까. 작품 여기저기를 훑어보고 만져봤다. 그와 나눈 대화도 한참동안 상기했다. 지난 6일 이천시 신둔면 예스파크 내 도예공방 <도공이야기>에서 나눈 이야기다.

손 작가는 강원도 원주 출생으로 중·고등학교 시절 독서와 글쓰기를 즐겨한 문학소년이었다. 그림 그리기도 좋아했다. 하지만 그는 1987년 원주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도예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그 시절을 전화위복의 때라고 회상했다.

"집안 사정으로 대학입시를 포기했어요. 그땐 마음이 힘들었죠. 그래서 바람도 쐴 겸 원주에서 이천으로 놀러왔는데 친척 어르신께서 도자기 기술을 배워보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물레를 돌리게 됐는데 며칠 돌리다보니 너무 신기하고 좋은 거예요. 대학입시 포기한 게 그다지 큰 상처로 다가오지도 않고요. 날이 날수록 도자기 형태가 변해가는 게 눈에 보이면서 나도 뭔가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더군요. 도예를 배우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가 마음을 다잡고 도예 기술을 배운 또 하나의 통로는 책이었다. 그는 짬짬이 다양한 인문학 서적을 읽었다. 그 가운데 고등학교 재학시절 읽은 <도산사상>과 <윤동주 시집> 등은 그가 도예 기술을 터득하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나침반이 돼주고 창작의 모티브가 됐다.

"<도산사상>은 도산 안창호 선생님에 대해 쓴 책이에요. 당시 굉장히 감동적이었어요. 기술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 계기도 됐고요. 이 책에 따르면 '우리가 한평생 참되게 살려면 건전한 인격을 갖추고 꾸준히 발전시켜 나가는 것과, 전문 지식이나 전문 기술 중 한가지를 갖추는 것' 등의 내용이 있는데요, 저는 이 부분에서 '기술을 습득하고 연마하여 시대 정신에 맞게 자신을 발전시키고 기술을 혁신시켜 나가는 것이 미래를 위한 준비'라고 이해를 했습니다." 
 
손호규 작가의 2001년 제1회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국제공모전 동상 수상작, 시대가 변해감에 따라 그의 도자기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손호규 작가의 2001년 제1회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국제공모전 동상 수상작, 시대가 변해감에 따라 그의 도자기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 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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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전통도자기 제작 기술을 빠르게 습득해갔다. 1990년대 초반 청자와 백자, 분청사기 등 전통도자기와 이천도자기가 호황이던 때였다. 그는 마침내 도공이 됐다. 2000년 〈대한민국 도자전〉에서 특별상을, 2001년 제1회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국제공모전에서 동상을, 2003년 제2회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국제공모전에서 입선 등 여러 차례 수상을 했다.

손호규 작가가 국제공모전에 출품할 작품을 구상하고 도전하게 된 배경에는 중국 고전을 소개한 책 <도시를 걷는 낙타>에서 얻은 창의성과 지혜, <성서>에서 읽은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길 수 있다는 믿음이 한몫 했다. 그는 그것을 바탕으로 작품에 대한 발상을 전환했고 상처를 보듬어 아름다운 도자기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제1회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는 저에게 남다른 의미였어요.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시도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고 도자기 형태를 약간 비대칭으로 했는데 좋은 반응을 보여주셨어요. 그 당시 우리나라 도자기 형태가 정형적인 게 많았거든요. 뿐만 아니라 국제공모전에 출품된 세계 여러 나라 작가의 다양한 작품을 관람하면서 사고의 전환을 하게 됐어요. 세계적인 수준에 도전하고 도자기 시장에서 친근감 있게 다가가려면 소비자의 취향을 파악하고 시대의 흐름에 맞는 작품을 만들어야한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죠."

분청사기에 몰입했던 손 작가는 그 무렵 백자로 변화를 시도했다. 아울러 실용성과 디자인은 물론 도자기의 품질 개선에도 집중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면 기존 것을 버릴 줄 알아야하죠. 근데 그게 쉽지 않았어요. 기존에 해 왔던 전통도자기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때였거든요. 게다가 제가 주로 했던 분청사기는 현대 도자기에 비해 강도가 약하고 굽는 온도 역시 100도 이상의 차이가 나는데 이런 문제점을 보완해 나가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했습니다. 그렇지만 '시대가 요구하는 기능적인 부분을 도자기에 담아내지 못한다면 살아남지 못하겠구나' 하는 불안감이 더 크게 다가왔어요.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그에 따라 소비자의 트렌드도 달라지고 있으니까요."  
 
<도공이야기> 손호규 작가의 작품, 그의 작품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숨어있다.
 <도공이야기> 손호규 작가의 작품, 그의 작품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숨어있다.
ⓒ 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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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흙은 입자가 아주 곱고 내구성이 강한 실크소지로 바꿨고 가마도 성능이 뛰어난 것을 들여왔다. 도자기의 유약과 색상에도 신경을 썼다. 그렇게 1년 정도의 지난한 실험을 한 끝에 단단하고 아름다운 도자기를 제작했다. 그러자 단골고객이 늘어났다. 십여 년 전부터는 신세계백화점 협력도예공방으로 백화점에서 전시· 판매도 하고 있다.     

요즘 다른 분야도 그러하지만 도자기 시장도 많이 침체돼 있다고 한다. 손 작가는 어떤지 물었다. 그는 아니나 다를까 책 이야기를 꺼냈다.

"책<몰입>을 보면 자신의 일에 집중하다 보면 재미와 가치, 일과 세상과의 관계, 생각의 재발견, 창조적 체험 등의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자신의 분야에 몰입하다 보면 길이 보인다는 상식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꾸준히 성실하게 하되, 쉽지 않지만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와 혁신을 하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는 믿음을 갖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경기가 어렵고 인건비가 올라가니까 뜻하지 않게 저희처럼 작가가 손수 제작하고 운영하는 소규모 공방에 판매 기회가 오더라고요."

손호규 작가가 30여년 넘게 도자기와 함께 쉼 없이 해온 일이 있다. 독서와 글쓰기다. 그는 시집 <도공이야기>를 출간한 시인이기도 하다. 그는 도자기와 사랑과 별과 우주 등 그의 세계관을 시(詩)로 담담하게 때로 서정적으로 풀어냈다.
 
별처럼 많은 시간이 흐른 뒤/ 내 삶에도 흐린 기억이 있어 짧은 언어로/ 시를 쓰고 설운 세월을 얘기할 때/ 도자기에 바칠 수 있었던 꿈과 열정은/ 어머님의 눈물이었다고/ - 『도공이야기』의 일부-
 
손호규 작가는 소비자와 시대의 흐름에 맞춰 정직하고 우직하게 신뢰를 쌓고 오랜 세월 사랑받으며 감동을 주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불현듯 그의 작품에 숨어있는 비밀이 조금 씩 풀리는 것 같았다. 도자기를 빚으면서 상처를 덜어내고 그 자리에 채운 세상을 바라보는 진실하고 따듯한 시선과 희망, 흠인 듯 예술인 듯 자꾸 보게 한 형태, 하여 어쩌면 그 작품이 우리 삶을 닮은 매력 때문이었을 듯.

덧붙이는 글 | 이 기사의 일부는 이천소식 11월호에 실립니다.


태그:#도공이야기, #도시를 걷는 낙타, #몰입, #윤동주 시집, #도산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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