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에 발매된 이 책을 드디어 읽었습니다. 이전까지는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자들의 성서와도 같아서, 왠지 모를 거부감이 느껴졌던 책이었습니다. 이제야 책을 편 것은 82년생 김지영,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또다시 논란이 될 것이 뻔해서, 읽어보고 까자! 라는 생각이었죠.
실제로 있을 법한 내용을 담은 이 소설은 82년생 김지영이 주인공입니다. 그녀는 2016년에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그녀가 3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공무원인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 밑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살아온 인생을 간략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거를 건 거르고, 말하고 싶은 것만 모아서 넣어놨다는 말이죠.
어렸을 적부터 김지영 씨는 차별을 받고 살아갑니다. '남아선호사상'으로 대놓고 할머니의 총애를 받는 남동생,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고' 그녀를 괴롭히는 초등학교 옆자리 남자애, '니가 먼저 흘렸잖아'라며 버스에서 그녀를 성추행할 뻔한 고등학생 등 그녀의 과거는 두려움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김지영 씨가 성인이 되자 두려움은 더욱 커집니다. '학생회장'을 여자로 뽑지 않는 대학교, '큰 프로젝트'를 여자사원에게 넘기지 않는 회사, '아이를 낳는 것'을 무심하게 여기는 남편 등 그녀는 '남자'를 자신을 비롯한 여자들을 막는 사회의 필요악으로 바라봅니다.
저는 어렸을 적, 제가 보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사회의 기준점이고 적당하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처럼 생각한다고 여겼습니다. 즉, 저의 경험은 누구나 다 겪는 경험이니 특별할 것이 없다는 느낌이었죠. 김지영 씨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만의 경험을 우리는 읽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일부는 공감가지만 일부는 공감이 가지 않습니다. 저와 그녀는 성별도 다르고 세대도 다르니까요. 무엇보다도 그녀의 매우 편협한 시선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전세대, 그리고 지금의 여자들이 차별받았다는 사실을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제 여동생은 고등학교 때 귀가하면서 성추행을 당할 뻔한 적이 있거든요. 그 이후로 줄곧 여동생의 귀가를 안전하게 도와준 기억이 납니다. 어두운 밤거리를 고등학생이 홀로 걷는다, 남자들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끼지만 여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사건이었습니다.
김지영 씨는 남자를 매몰차게 대하진 않습니다. 공무원 출신의 아버지를 나름 객관적으로 바라봤고, 힘든 와중에도 연애를 줄곧 했으며, 결혼 후 남편이 힘들어한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에게 피해를 입은 기억만 있기 때문에 우리는 김지영 씨의 마음이 어떤지 절반밖에 모릅니다. 게다가 그녀의 이야기에는 등장인물의 이름이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게다가 남자의 이름은 남편인 정대현밖에 없습니다. 마치 정보를 고의적으로 누락하는 느낌이에요.
심지어 연애하다가 남자친구가 군대를 간 후 차 버리는 에피소드는 아주 담담하게 적어놨습니다. 다른 에피소드는 대화를 적고 속마음도 자세히 적지만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갑니다. 왠지 모를 불공평함을 넘어서, 저는 김지영 씨의 내로남불을 느꼈습니다. 여자가 겪는 불편함만 잔뜩 적어놔서 '그럴 수도 있지' 라고 넘어가기에는 아무래도 힘들었네요.
이처럼 82년생 김지영의 인생은 남자에게 불편함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속으로 참고만 삽니다. 어렸을 적부터 계속 그래 왔습니다. 차별을 당하면 울었고 주저앉았으며 속으로 분을 삭였습니다.
과연 김지영 씨는 이럴 수밖에 없었을까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갑자기 귀신이 씌고, 정신과 상담을 받았던 것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이야기에는 차별에 저항한 여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언니, 아버지의 사업계획을 철저하게 막은 어머니, 버스에서 구해준 이름 모를 여자, 육아와 일을 병행한 팀장 등이 그녀의 조력자로 등장하기 때문이죠. 이들 가운데 그녀는 내성적이고 무언가를 남들에게 잘 말하지 못하는 성격인 것 같습니다. 그녀가 '차별받는 여자'의 대표성을 가지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한 면이 많아 보이네요.
이 책은 하루 만에 쓱 읽어볼 수 있을 정도로 얇은 책입니다. 190페이지, 해설을 빼면 178페이지 밖에 안 되거든요. 장편소설이라기엔 페이지 수가 적어 깜짝 놀랐습니다. 차라리 에세이였다면 조금 더 공감할 수 있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