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서 약팀이 강팀으로 성장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현재의 성적을 포기하고 미래를 위해 착실히 유망주들을 수집(?)하는 것이다. 미프로농구(NBA)의 필라델피아 76ers가 그랬고 2017년 메이저리그 우승팀이자 올해도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는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그랬다. 비록 단기간에 팀을 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보장이 없지만 인내를 견디면 반드시 달콤한 열매가 따라오게 마련이다.

반대로 모기업의 과감한 투자를 등에 업고 우수 선수들을 대거 스카우트하는 경우가 있다. 실업배구 시절의 현대자동차서비스(현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가 라이벌 고려증권을 꺾기 위해 마낙길, 하종화, 윤종일, 임도헌, 박종찬, 후인정 같은 대학배구 스타들을 싹쓸이했던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삼성화재(현 삼성화재 블루팡스) 역시 김세진과 신진식, 석진욱, 최태웅, 장병철 등 1990년대 중·후반 대학배구 스타들을 대거 영입해 순식간에 강팀으로 떠올랐다.

이제 배구도 프로화가 되면서 1990년대의 현대자동차서비스나 삼성화재 같은 방식의 극단적인 전력보강을 할 수 없다. 하지만 프로 스포츠에서는 우승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적절한 투자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배유나와 박정아, 이바나 네소비치를 차례로 영입하며 프로 출범 14년 만에 우승의 한을 푼 한국 도로공사 하이패스는 지난 시즌 준우승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챔피언 탈환에 나선다.

과감한 투자로 만들어낸 첫 통합우승과 2연속 챔프전 진출
 
 문정원의 서브와 수비가 없으면 도로공사의 배구는 절반의 힘 밖에 내지 못한다.

문정원의 서브와 수비가 없으면 도로공사의 배구는 절반의 힘 밖에 내지 못한다. ⓒ 한국배구연맹

 
공기업을 모기업으로 두며 투자가 비교적 인색한 구단으로 유명했던 도로공사는 2014년 FA 자격을 얻은 센터 정대영과 세터 이효희를 동시에 영입하며 단숨에 우승후보로 떠올랐다. 도로공사는 2014-2015 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챔프전에 직행했지만 챔피언 결정전에서 IBK기업은행 알토스에게 허무한 3연패를 당하며 프로 출범 후 첫 우승이 좌절됐다.

흔히 과감한 투자 후 원하는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자포자기하는 팀도 생기기 마련이지만 도로공사는 강팀이 되기 위한 꾸준한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2016년 국가대표 센터 배유나를 영입하고도 최하위로 떨어진 도로공사는 2017년 토종 거포 박정아를 데려오며 팀의 약점을 채웠다.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어 이바나 네소비치를 지명한 것도 도로공사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도로공사는 2017-2018 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후 챔피언 결정전에서 3년 전 도로공사에게 패배의 아픔을 줬던 기업은행을 다시 만나 3승 무패로 설욕에 성공하며 프로 출범 후 첫 우승을 차지했다. 실업배구 시절을 포함해 만년 하위권이었던 도로공사가 메이저 겨울리그에서 차지한 첫 우승이었다. 당장 성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은 도로공사의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지난 시즌 우승 멤버 손실 없이 2연패에 도전한 도로공사는 시즌 초반 외국인 선수 이바나의 부상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자 도로공사는 과감하게 결단을 내려 외국인 선수를 파토우 듀크로 교체했다. 2017-2018 시즌 GS칼텍스 KIXX에서 활약하며 공격력이 검증된 파튜는 팀에 합류하자마자 도로공사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결국 도로공사는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에 이어 V리그 준우승을 차지하며 강자의 자리를 지키는데 성공했다.

박정아와 파튜가 공격을 이끌고 정대영이 블로킹 부문 2위(세트당 0.71개)에 오르며 중앙에서 건재를 과시했지만 지난 시즌 도로공사 준우승의 숨은 주역은 단연 문정원이었다. 박정아의 공격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2인 리시브'를 고 있는 도로공사에서 문정원은 무려 1264개라는 독보적으로 많은 리시브에 참여해 52.85%의 효율로 어지간한 리베로보다 뛰어난 수비를 선보였다. 또한 세트당 0.33개의 서브득점으로 커리어 2번째 '서브퀸'에 올랐다. 

앳킨슨 교체와 배유나 부상, 그럼에도 도로공사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2000년생 유망주 이원정 세터의 성장은 도로공사에게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2000년생 유망주 이원정 세터의 성장은 도로공사에게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 한국배구연맹

 
도로공사의 주전세터를 이효희 세터라고 한다면 지난 시즌 도로공사 주전 7명의 평균 나이는 무려 33.4세였다. 도로공사는 여자부 6개 구단 중에서 독보적으로 높은 평균 연령을 자랑하는 팀이다. 물론 미래를 위한 세대교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현재 기량이 좋은 베테랑 선수를 인위적으로 벤치로 불러 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도로공사는 현재의 멤버들이 건재할 때 최대한 많은 우승을 노려야 한다.

파튜와의 재계약을 포기한 도로공사는 외국인 드래프트에서 196cm의 좋은 신장과 뛰어난 힘을 가진 셰리단 앳킨슨을 지명했다. 앳킨슨은 컵대회에서 뛰어난 공격력을 선보이며 시즌을 기대케 했지만 연습 도중 무릎을 다치면서 V리그 데뷔도 하기 전에 한국 무대를 떠나게 됐다. 도로공사는 지난 2015-2016 시즌과 2017-2018 시즌 흥국생명에서 활약했던 테일러 쿡을 대체 선수로 영입했다.

이효희 세터가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빠르고 안정된 토스워크를 유지하고 있지만 정규 리그 30경기의 장기레이스에서 이효희 세터 혼자 팀을 이끌어 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프로 3년 차를 맞는 이원정 세터가 이효희 세터 대신 코트에서 많은 시간을 소화해야 한다. 이효희 세터의 은퇴가 가까워진 만큼 이원정 세터에게는 단순히 '선배를 보좌한다'는 마음보다 도로공사의 새 주전 세터라는 자각과 책임감이 필요하다.

이번 시즌 도로공사의 가장 큰 변수는 바로 배유나의 이탈이다. 비 시즌 동안 어깨 수술을 받은 배유나는 무릎 상태도 썩 좋지 않아 이번 시즌 정상적인 출전이 쉽지 않다는 진단을 받았다. 도로공사는 비 시즌 동안 KGC인삼공사로부터 베테랑 중앙 공격수 유희옥을 영입해 배유나의 공백에 대비했다. 하지만 김종민 감독은 내심 1998년생 유망주 정선아가 이번 시즌을 통해 주전 센터로 성장해 주길 기대하고 있다.

도로공사는 지난 시즌 챔피언 결정적에서 흥국생명에게 1승 3패로 패했다. 하지만 매 경기 매 세트마다 접전을 벌였을 만큼 도로공사와 흥국생명의 전력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바꿔 말하면 도로공사는 이번 시즌에도 3연속 챔프전 진출을 노리기 충분한 전력이라는 뜻이다. 도로공사는 이번 시즌 '선수들의 나이가 많다는 것은 체력이 약하다는 뜻이 아니라 노련하고 영리하게 경기를 펼칠 수 있다는 의미'라는 것을 코트에서 증명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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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배구 도드람 2019-2020 V리그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문정원 이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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