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과 그의 주장에 동조하는 식민지근대화론자들과 정치인들은 '신반민족행위자'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을 것이 확실하다."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열린 <반일 종족주의> 비판 학술대회에서 신운용 광복회 학술연구원 교수가 힘주어 말했다. '친일이 애국'이라고 주장한 이광수가 반민족행위자라면, 일제의 식민지배를 미화하고 찬양하는 이들 역시 반민족행위자라는 역사의 준엄한 평가를 피해갈 수 없다는 주장이다.
광복회 학술연구원(원장 김병기) 창립 기념으로 열린 이번 학술대회는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비롯 친일학자들이 <반일 종족주의>를 펴내는 등 일부 지식인들이 일제 식민지배를 미화하는 목소리를 내는 현실에 맞서 역사학계의 본격적인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학술대회는 임우철 애국지사, 이태원 애국지사, 김원웅 광복회장,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이부영 (사)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장 등 주요 내빈과 시민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반일 종족주의>를 중심으로 친일학자들이 주장하는 '독도공유론, 식민지근대화론, 반일종족주의론, 위안부' 문제의 허구를 집중 검토하고 비판하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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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일학자 이영훈의 <반일 종족주의> 비판 학술대회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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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웅 광복회장 "친일찬양금지법 제정하겠다"
본격적인 발표에 앞서 이번 행사를 주관한 김원웅 광복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학문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일제강점기를 찬양하고 미화하는 세력이 뻔뻔하게 활개치고 있다"면서 "광복회가 식민사학이 지배하는 역사학계를 바꿔나가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또한 '친일찬양금지법' 제정을 통해 친일지식인과 정치인의 근절을 위해 광복회가 앞장서겠노라 다짐했다.
"학문으로 위장되는 반민족·반인류 범죄자들을 처단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선거가 6개월 남았다. 6개월 후에 친일찬양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은 국회에 한 발자국도 들여놓을 수 없도록 온 힘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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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일학자 이영훈의 <반일 종족주의> 비판 학술대회에서 김원웅 광복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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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이 살아있었으면 일갈했을 것"
본격적으로 대회의 막이 오르면서 <반일 종족주의>에 대한 광복회 학술연구원 소속 역사학자들의 집중적인 비판이 시작됐다. 첫 번째로 발제를 맡은 신운용 교수는 이영훈 등 친일학자들의 뿌리와 정체성을 폭로하여 주목을 받았다.
신 교수는 이영훈 등 친일학자들의 뿌리에 스승 안병직 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있음을 지목하면서 그가 1987년에 세운 '낙성대경제연구소'가 식민지근대화론을 확산하는 첨병임을 강조했다(실제로 <반일 종족주의>의 공저자 6명 중 4명이 해당 연구소 소속이다).
그러면서 낙성대경제연구소가 일본 전범기업 도요타가 세운 도요타재단의 재정 지원으로 연구를 진행됐던 사실을 공개했다. 해당 연구소가 태생적으로 일본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밖에 없는 기관임을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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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일학자 이영훈의 <반일 종족주의> 비판 학술대회에서 발제하는 신운용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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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신 교수는 친일학자들이 독도를 일본 영토라 주장하는 근거인 '시마네현 고시 40호'에 대해서도 이미 한참 전에 역사학계에서 논파함으로써 철 지난 이야기임을 강조했다.
'시마네현 고시 40호'는 1905년 2월, 일본 정부가 독도를 일방적으로 시마네현에 편입시킨 사실을 알린 고시다. 그러나 신 교수는 '해당 고시가 국제법에 따라 공포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는 점', '원본이 소실되었다는 점', '일제가 고시에 기록한 독도의 위치와 실제 독도의 위치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들을 지적하면서 "독도에 대한 한 편의 연구 논문도 없는 비전문가가 학계의 성과를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 교수는 100년 전, 안중근과 그를 심문했던 일제 검사 '미조부치 타카오'의 일화를 언급하면서 친일학자들에게 역사적으로 준엄한 평가가 내려질 것임을 경고했다.
"안병직과 이영훈이 주도하는 식민지근대화론은 이미 100년 전 안중근을 심문한 일제 검사 미조부치 타카오의 그것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 점에서 그는 일본의 식민사관을 철저히 옹호하는 미조부치와 같은 인물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일제가 아니었다면 한국은 더욱 발전하였을 것이다'라고 미조부치에게 일갈한 것처럼 안중근이 지금 살아있다면 이영훈을 비롯한 모든 식민지근대화론자들에게도 일갈했을 것이다."
"학문의 기본이 되어있지 않다" 패널들 한목소리로 비판
뒤이어 발제를 맡은 김병기 광복회 학술연구원장은 친일학자들이 내세우는 '통계'에 주목하면서 '식민지근대화론'의 허상을 비판했다.
김 연구원장은 "소위 성경책에서 뽑아도 <공산당 선언>이 나온다고 한다"라며 "책이라는 것은 자기가 필요한 부분만 뽑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라고 통계 인용의 위험성을 먼저 언급했다.
이어 "(이영훈 등은) 자기들에게 필요한 통계만 이용했다"라며 "그 이면을 봐야 하는데 그러지 않으니 일제강점기가 좋은 시절로 보일 수밖에 없다"라고 이영훈 등의 연구가 갖는 허점을 짚었다. 그러면서 허수열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의 '김제, 만경평야의 실증적 사례'를 근거로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 주장하는 통계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조목조목 까발렸다.
김 연구원장의 인용에 따르면 허수열 교수는 '김제, 만경평야의 실증적 사례'를 통해 "일제의 농업개발은 조선인들의 토지 상실과 소작농으로 재편되는 과정이었으며, 농업개발에 따른 증산 부분이 철저하게 수탈당함으로써 소작농들의 생활수준은 조금도 향상될 수 없었다는 사실이 실증으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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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일학자 이영훈의 <반일 종족주의> 비판 학술대회 현장 사진 (왼쪽부터 김병기 광복회 학술연구원장,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김명섭 단국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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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발제를 맡은 학자들 역시 '학문의 기본이 되어있지 않다',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 '황당하며 의아하고 기가 차다'라는 등 <반일 종족주의>의 논리적 부실함과 허무맹랑함을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김동환 교수는 "본질은 외면한 채 현상에만 주목하는 이영훈 교수의 논리는 생각하는 학자의 자세와는 거리가 멀다"라며 "논증 없는 허구의 결과물이 그의 <반일 종족주의>의 구호"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장우순 연구위원은 "위안부는 자발적 성매매로 이루어졌다"라는 친일학자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취업사기, 협박, 폭력, 인신매매, 유괴 납치, 근로정신대 등 피해자들이 개인의 자유의사에 반해 강제로 일본군 위안부가 되었다는 실제 사례를 정리한 연구를 토대로 정면 반박했다.
역사학자들 "부끄럽고 민망하다"
이번 학술대회에 참여한 학자들은 한결같이 "부끄럽고 민망하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김병기 연구원장은 "역사학계가 대응을 못해서 부끄럽다"라며 "이제는 각성해야 할 때"라고 일침을 가했다.
신운용 교수 역시 "식민사관에 입각한 이들이 한국의 역사학계를 장악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는 점을 학자의 양심으로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다"라며 식민사관을 극복하지 못한 우리 역사학계의 현실에 대해 씁쓸한 목소리로 고백했다.
<반일 종족주의>가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일제의 식민지배를 미화하고 찬양하는 움직임이 확산되는 가운데서도, 그동안 소극적으로 대응했던 역사학계의 자성이 돋보이는 시간이었다. 이번 학술대회를 시작으로 역사학계가 보다 적극적이고 강력한 대응에 나설지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