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테헤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란과 캄보디아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예선 경기의 여성 관중 입장을 보도하는 AP통신 갈무리.

이란 테헤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란과 캄보디아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예선 경기의 여성 관중 입장을 보도하는 AP통신 갈무리. ⓒ AP

 
이란 여성 축구팬들이 마침내 '금녀의 땅'이었던 축구장의 문을 열었다.

이란은 10일(현지시각) 수도 테헤란의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캄보디아와의 경기에서 여성 관중의 입장을 허용했다. 이란 대표팀은 역사적인 경기에서 14-0 대승을 거뒀다.

이란은 1981년 이슬람 혁명 이후 여성이 남성 선수의 스포츠 경기 관람을 엄격히 금지해왔다. 지난해 이란 대표팀의 러시아 월드컵 본선 경기를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전광판으로 중계하며 일시적으로 입장을 허용한 것이 전부였다.

'금녀의 벽'에 좌절한 이란 여성 축구팬의 분신

그러나 지난 8월 남장 차림을 하고 몰래 축구 경기장에 들어갔다가 적발된 여성 관중 4명이 풍기 문란과 공무 집행 방해 등의 혐의로 체포돼 재판을 받게 됐다. 

이 가운데 사하르 코다야리라는 30세 여성이 재판에서 징역 6개월 이상의 중형을 선고받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지난달 9일 법원 앞에서 분신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국제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성명을 통해 "이란 정부는 여성의 경기장 출입을 막기 위한 싸움에 참여하는 모든 여성의 자유와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이란 축구팬들도 프로축구 불매 운동을 벌이며 코다야리의 죽음을 애도했다.

하지만 FIFA도 이란 축구계의 오랜 성차별을 묵인해왔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란 축구대표팀 주장 마수드 쇼자에이의 누나이자 이란의 여성 인권운동가인 마리암 쇼자에이는 "FIFA가 더 엄격하게 이란 축구의 성차별을 규제했다면 코다야리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은 이날 열린 캄보디아와의 경기부터 여성 관중 입장을 허용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란 여성 축구팬 "평생 기다려왔다" 감격 
 
 축구 경기장 입장을 시도했다가 적발돼 분신한 이란 여성 사하르 코다야리를 애도하는 소셜미디어 갈무리.

축구 경기장 입장을 시도했다가 적발돼 분신한 이란 여성 사하르 코다야리를 애도하는 소셜미디어 갈무리. ⓒ 트위터

 
결국 이란 정부는 지난달 15일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여성이 스포츠 경기장에 입장할 수 있도록 준비 작업을 시작했다"라며 FIFA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란은 이날 경기에서 아자디 스타디움의 전체 7만8000석 중 3500석을 여성 관중에게 할당하고, 임시로 벽을 세워 '여성 전용' 구역을 만들어 남성 관중들과 격리했다. 여성 관중을 위한 3500석은 불과 몇 분만에 매진됐다.

경기를 관람한 한 여성 축구팬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마침내 경기장에 들어올 수 있는 기회를 얻어 너무 기쁘다"라며 "거의 평생 이 기회를 기다려왔다"라고 감격스러워했다. 경기를 중계한 이란국영방송도 여성 관중들의 응원을 보여줬다. 

다만 여성 관중을 위한 할당량을 더 늘리고, 더 나아가 남성 관중과의 격리와 엄격한 복장 규정도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또 다른 여성 축구팬은 "앞으로 더 많은 자유가 올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조이스 쿡 FIFA 사회책임프로그램 담당자는 "여성을 비롯한 모든 축구팬이 동등하게 경기를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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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축구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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