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조커>는 묘한 문제작이다. 아름다운 화면, 뛰어난 연기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며칠이 지나도 개운하지가 않다.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적 비극이라는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한 <기생충>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둘 다 슬프고 비관적이지만 <조커>는 더 독하다.
 
블랙코미디이지만 그나마 숨 쉴 구멍이 있었던 <기생충>과 달리 <조커>는 처음부터 주인공인 아서 플렉이 처한 비관적인 상황이 계속 악화되며 비극으로 치닫는다. 영화가 시작하며 나오는 뉴스에는 청소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며칠 째 쓰레기가 수거되지 않고 있다고 나온다. 이후에도 영화에서는 거리 곳곳 쌓여있는 까만 쓰레기 봉투들이 계속 나온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되었던 사회복지 서비스는 줄어들면서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아서 플렉은 약을 처방받을 수도 없게 된다. 부자이자 정치인으로 대변되는 토마스 웨인은 실업난에도 가난한 이들이 게으르고 노력하지 않아서라고 비웃는다.

레이건 시대와 겹쳐보이는 트럼프 시대 그리고 한국
 
 영화 <조커> 곳곳에는 검은 쓰레기 봉투가 한 가득 쌓인 장면이 눈에 띈다. 청소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며칠 째 쓰레기가 수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높은 실업난, 사회서비스 축소 등 빈부격차로 인한 갈등이 심화되는 모습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 <조커> 곳곳에는 검은 쓰레기 봉투가 한 가득 쌓인 장면이 눈에 띈다. 청소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며칠 째 쓰레기가 수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높은 실업난, 사회서비스 축소 등 빈부격차로 인한 갈등이 심화되는 모습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 워너브라더스

  
흥미로운 점은 영화는 1981년의 가상의 도시인 고담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1980년대와 현재의 미국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는 점이다. 1980년대는 영국의 대처와 함께 신자유주의를 대변하는 레이건의 재임시기이다. 레이건은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대대적인 감세와 복지예산 축소를 실시했다. 70%에 달했던 소득세 최고세율은 레이건 재임 후 35%까지 낮춰졌다. 무엇보다 사회복지 축소를 위해 선거 때부터 내세웠던 '복지 여왕'(welfare queen)이 큰 효과를 봤다. 복지여왕은 수십 개의 가명을 이용해서 발급받은 사회보장카드와 복지카드를 통해 15만 달러의 소득을 올린다는 흑인 여성이다. 사회복지가 악용되고 세금이 낭비되는지를 강조하기 위해 사례였다. 하지만 후일 '복지 여왕'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인물로 밝혀졌다.
 
트럼프 시대 미국 역시 부자들을 위한 작은 정부에 여념이 없다. 2017년 12월 부자 감세를 실시해 향후 10년간 1조5000억달러(약 1620조원)를 깎아주는 세제 개편을 통과했다. 레이건 정부 이후 30년만의 최대 감세였다. 반면 복지예산은 계속 줄여가고 있다. 2020년 예산의 경우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행정부가 주거지원, 저소득층 영양지원(푸드 스탬프), 의료보험 등 각종 복지혜택에서 줄인 예산의 규모가 3200억달러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더 나아가 메디케어(고령자 의료지원),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지원)도 향후 10년간 2400억~8400억 달러 줄여나가는 방안을 제시되고 있다.
 
미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조커>는 개봉 9일차 만에 300만명이 넘었다. 북미를 제외한 국가들 중 한국이 흥행성적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사실 <조커>는 기존의 마블이나 DC의 히어로 영화들과 달리 대중적인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불친절한 예술 영화에 가깝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의 선택을 받고 N차 관람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런 흥행의 비결에 영화 속 풍경과 흡사한 우리나라 상황이 있다고 본다면 비약일까.

올 한해 흥행한 영화들을 살펴보자. 백수나 명퇴로 떠밀려 자영업자가 되어 동네 곳곳에 치킨집을 차리는 애달픔이 블랙코미디와 액션으로 승화된 <극한직업>, 냄새마저도 구별되는 상류층, 반지하, 지하의 3단계 신분간의 격차의 블랙코미디와 호러의 <기생충>, 장기 백수와 취업해도 알바만도 못한 처우의 청년들의 상황을 재난과 사고로 빗댄 재난탈출무비 <엑시트>까지. 최대한 무겁지 않게 코믹하게, 은유로서 다루고 있지만 모두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부의 편중 문제를 배경으로 낭떠러지에 놓인 자영업자, 몰락한 중산층, 백수 청년 등을 다루고 있다. <조커>의 아서 플렉의 위태로운 모습과 겹쳐지는 부분이다.

아서 플렉이 조커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
 
 아서 플렉이 조커가 되기까지는 개인적인 문제만이 아닌 사회적 배제와 집단 폭력 등 사회적 문제가 깔려있다.

아서 플렉이 조커가 되기까지는 개인적인 문제만이 아닌 사회적 배제와 집단 폭력 등 사회적 문제가 깔려있다. ⓒ 워너브라더스

   
이처럼 비슷한 배경이지만 <조커>는 앞서의 한국 영화들에 비하면 너무 독하다. 단순히 살인과 집단폭력, 방화 등이 등장해서가 아니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영화 속 폭력과 관련해서 "<존 윅3>에선 주인공이 300명을 넘게 죽여도 관객들이 웃고 소리 지르는데 왜 <조커>만 다르게 보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분명 다르다. 영화 <존 윅>이나 <킬빌>에선 <조커>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죽지만 영화 자체가 비현실적인 문법을 전제로 한 장르 영화이다. 반면 <조커>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서 플렉의 고통과 분노의 과정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무엇보다 사회에서 배제되고 집단 폭력의 대상이였던 소수자로서 아서 플렉이 스스로에게 향하던 분노를 외부로 발산하는 과정이 이해되기에 더욱 무섭다. '머레이 프랭클린 쇼' 진행자와 이웃집 여자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환상마저 깨어져버리자 '내 죽음이 삶보다 가치있기를' 되내이며 자살을 생각하다가 이내 총구를 반대로 돌려 그들을 살해한다. 비웃음을 당하던 이에서 비웃는 주체(joker)로 다시 태어난다. 더욱이 마지막에는 그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려고 하던 상담사마저 살해한다. 영화가 반드시 권선징악으로 결말이 날 필요는 없지만 <조커>의 결말은 묻지마 폭력을 이해하고 더 나가 옹호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그런 점에서 조커가 나오는 <다크나이트> 결말에 묻어있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믿음이 그리워진다. 조커는 범죄자들만 타고 있는 배와 일반시민들이 탄 배 각각에 서로를 폭발시킬 수 있는 기폭장치를 두고 정해진 시간까지 아무도 폭발 기폭장치의 스위치를 누르지 않으면 두 척 모두 폭파하겠다고 협박한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서 이들은 괴물이 되어 사는 것보다 인간답게 죽기 위해 양쪽 모두 기폭장치를 버린다. 비웃음을 당하지 않기 위해 비웃는 자가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조커>가 <다크나이트>와 같은 결말을 취해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서 플렉이 조커가 되기 전까지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봤다. 인간에 대한 낙관적인 믿음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누군가 진지하게 그의 고통을 들어주었다면, 차별과 냉대를 누군가가 걷어낼 수 있었다면. 작년 기준으로 GDP에서 공공사회복지지출의 비중이 우리나라가 OECD 회원국 중 꼴지라는 뉴스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대목이다.
 
 다크나이트 속  범죄자들만 타고 있는 배와 일반시민들이 탄 배 각각에서 서로를 폭발시킬 수 있는 기폭장치를 두고 생기는 갈등의 모습

다크나이트 속 범죄자들만 타고 있는 배와 일반시민들이 탄 배 각각에서 서로를 폭발시킬 수 있는 기폭장치를 두고 생기는 갈등의 모습 ⓒ 워너 브라더스

 
조커 다크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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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및 사회적경제 연구자, 청소년 교육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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