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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7일부터 10월 11일까지 '2019 제대군인주간'이다. 이 기간을 맞아 제대군인을 재조명하는 '제대군인 아리랑' 기획을 5회에 걸쳐 내보낸다.[편집자말]
 
이효백 소령이 버스회사에 내야하는 서류 목록
 이효백 소령이 버스회사에 내야하는 서류 목록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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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서, 주민등록등본, 버스운전사자격증사본, 도시가스안전교육필증, 건강보험사자격득실확인서, 운전경력증명서... 지난 8일 오후, 대전의 한 버스 차고지에 승용차를 세운 그는 봉투에서 13개가 되는 서류를 꺼내 일일이 확인하면서 한마디 던졌다.

"이렇게 많은 서류를 갖다 달랍니다. 휴~"

10여분 뒤 그는 미소를 머금은 채 자동차로 되돌아왔다.

"한 번은 더 와야겠네요. 그것도 제겐 감사한 일이죠. 저처럼 버스 운전을 하려는 사람들이 더 있는데, 그 사람들과 공동 면접을 봐야 한답니다. 그래도 이번엔 잘 될 것 같습니다."

이효백(51)씨는 예비역 소령이다. 1989년 12월에 임관해 첫 부임지 17사단 신병교육대에서 근무했고, 2013년 12월 31일에 전역했다. 24년 동안 군에 몸을 담다가 사회로 나왔을 때의 나이는 45세. 첫째 딸과 두 아들 모두 학생이었다. 생활비는 물론 교육비가 꽤 많이 들 시기였다.

그는 처음에는 헬기 조종사와 헬기 교관 등으로 근무했던 경험을 살리고 싶었다. 항공 분야 회사에 몇 통의 이력서를 냈지만 대부분 연락조차 받지 못한 채 퇴짜를 맞았다. 전역할 때만 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 뒤부터 트럭 운전, 운전학원 강사, 특수경비직 등 비정규직 '투잡'을 뛰면서 버텨야 했다. 결국 그는 희망 직업을 항공직에서 버스직으로 바꿨다.

"안정된 직장을 구하려고 스무 번도 넘게 이력서를 제출했지만, 오늘 여기까지 왔네요."

그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효백 예비역 소령이 구직 서류를 꼼꼼히 챙겨보고 있다.
 이효백 예비역 소령이 구직 서류를 꼼꼼히 챙겨보고 있다.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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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군인은 누구?] 평균 37세, 일자리 절실한 시기에 사회에 나와

'제대군인'. 이 예비역 소령처럼 5년 이상 군에서 복무하면서 장교, 준사관, 부사관으로 전역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지난 한해 동안 전역한 제대군인은 7170명에 이른다. 제대 나이는 20대가 2950명으로 가장 많았고, 50대도 2879명으로 비슷했다. 40대는 1338명이었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37세. 결혼을 한 뒤 육아비와 내집 마련 등을 위한 일자리가 절실한 시기이다.
  
하지만 취업률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지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전역한 제대군인들의 계급별 취업률은 평균 55.4%로 절반을 약간 상회했다. 3만3522명의 제대군인 중 1만8581명만이 취업에 성공했다. 이 기간 동안 전역한 부사관은 1만7896명으로 가장 많았지만, 취업률은 48.9%로 가장 낮았다. 이 수치만 보아도 전역 부사관의 절반 이상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제대군인 취업률
 제대군인 취업률
ⓒ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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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씨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가 육군 제3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에 복무하기 시작한 것은 자의에 의해서였다. 하지만 전역은 그가 스스로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45세까지 중령 진급을 하지 못하면 군복을 벗어야 하는 계급정년제에 따른 것이었다.

군인사법 제8조에 따르면 부사관인 하사, 중사, 상사, 원사는 각각 40세, 45세, 53세, 55세까지 진급을 하지 못하면 전역을 해야 한다. 준사관인 준사는 55세, 위관인 소위, 중위, 대위는 43세, 영관인 소령, 중령, 대령은 각각 45세, 53세, 56세까지 진급을 해야 한다.

[이들이 사회로 나오는 이유] 진급 못하면 군복 벗어야 하는 운명
 
이효백 예비역 소령이 구직 서류 봉투를 들고 버스회사로 향하고 있다.
 이효백 예비역 소령이 구직 서류 봉투를 들고 버스회사로 향하고 있다.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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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위 계급 때까지는 보병생활을 했습니다. 육군항공학교에 가서 조종사 양성 과정을 밟은 뒤 53보병사단 항공대에서 경공격헬기인 MD500를 조종했습니다. 그 뒤에 기동헬기로 전환해서 제21 항공단에선 UH1H(수송헬기)를 타고 강습작전을 했고, 제21항공단 207 항공대대 조종사, 항공단 보급장교를 하면서 대위, 소령으로 진급했습니다."

여기까지는 비교적 승승장구한 군인의 길을 걸었다. 헬기를 조종했고, 교관 임무 등을 수행했다. 항공작전사령부 예하의 관제대대에서 정보작전과장을 지냈고, 보병 제8사단 항공장교를 지내면서 보병과의 협동훈련 작전을 계획하면서 국토방위에 전념했다. 보급장교, 인사과장 등을 거치며 조직과 인사의 전문성을 획득했다.

하지만 그 뒤부터가 문제였다. 매년 진급심사가 있는데 4번에 걸친 진급 심사에서 중령 계급을 달지 못했다. 군 생활을 더 하고 싶어도 계급정년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전역을 해야 했다. 결국 그는 공격헬기 대대 중대장, 블랙호크로 불리는 UH-60p 정비중대장과 부대대장을 지내며 후배들의 비행 기량 양성 교육을 하면서 군 생활을 마감했다.

"경찰이나 소방직의 경우는 정년이 보장되지요. 하지만 우리는 장교의 길을 계속 걷고자 해도 진급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멀리 있는 사람과 경쟁하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옆에 있는 동료들과 4번에 걸쳐 진급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 그게 심적으로 부담이 되더라고요."

그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가 받은 마지막 훈련은 경기남부제대군인센터에서의 교육이었다. 24년 동안 입었던 군복을 벗고 1년간 사회적응 훈련을 받은 뒤 45세의 나이로 사회로 나왔다. 군에서는 작전계획을 세우고 헬기를 조종하면서 후배 조종사를 양성하는 장교였지만, 한 순간에 사회 초년병이 됐다.
 
이효백 예비역 소령
 이효백 예비역 소령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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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대학을 다니다가 우연히 육군 제3사관학교에서 군인모집 포스터를 보고 마음이 끌려서 군에 임관했습니다. 처음부터 국토방위에 대한 투철한 애국심이 있었던 것은 아닌데, 군 생활하면서 그런 마음이 굳어졌죠."

하지만 군인은 쉽고 편한 길이 아니었다. 매번 작전에 임할 때에는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했고, 때로는 생명의 위협을 감수해야 했다. 작전에 나가기 전에는 밤을 새면서 수십 번에 걸쳐 시뮬레이션을 해야 했고, 작전이 시작되면 철두철미하게 시간을 지켜야만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뿐이 아니었다.

"소위로 임관했을 때 월급 실수령액은 18만 2000원이었습니다. 중위였을 때 결혼을 했는데, 월급날 아내와 함께 시장을 갔습니다. 은행에 가서 돈을 찾으려는 데 잔고부족이라고 하더군요. 월급이 전화요금과 집세 등으로 미리 다 빠져나갔던 겁니다. 신혼 초에 아내에게 얼마나 미안했던지... 그 뒤부터 절약하며 살았더니 경제적으로 쪼들리지는 않았습니다."

인사이동에 따른 잦은 이사로 인해 가족과 별거하는 경우도 많다. 한 곳에 정주하지 못하기에 이런저런 애로도 생긴다. 그는 "군 생활하면서 20여차례 이사를 했는데, 내 주민등록 초본은 3장이나 된다"면서 "첫째 딸의 경우 초등학교 매 학년 때마다 전학을 했기에 6개의 학교를 다녔는데도, 너무 훌륭하게 잘 커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의 큰 딸은 이제 결혼을 해서 대전에서 한 중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지만, 지금도 두 아들은 대학을 다니고 있다. 그가 손을 놓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이날 구직 서류를 제출한 곳은 얼마 전에 사무직으로 원서를 집어넣었다가 탈락한 곳이었다. 이번에 그는 이 회사의 버스 승무직으로 다시 도전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점점 늘어날 제대군인] 사회는 이들의 공헌 인정하지만... 일자리를 찾아 헤매다
  
일자리를 잡으려고 고군분투하는 그와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될 제대군인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65만 명의 병력을 2022년까지 52만2000 명으로 감축한다. 기술집약형의 첨단 군사력 구조로 전환하면서 병력구조를 병 위주에서 간부 위주로 정예화하고 간부 비중을 늘리지만, 제대군인 수는 늘어나고 그만큼 일자리를 찾는 헤매는 제대군인도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예비역 소령의 사례처럼 일자리를 구하는 게 녹록치는 않다. 국가보훈처가 2018년 9월에 조사한 제대군인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에 따르면 긍정과 부정 평가가 혼재했다. 국민들은 제대군인의 절제된 자기관리와 뛰어난 기획능력, 리더쉽과 강한 책임감, 안전의식 및 보안의식 등을 긍정적인 요소로 평가했지만, 전문성과 사회적응력, 글로벌 마인드 등은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중장기 제대군인이 국가유지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55.4%가 '기여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제대군인의 잦은 근무지 변경, 전방 근무 등으로 인하여 전역 후 취업 및 사회진출 과정에서 겪는 애로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계신가에 대한 질문에 '알고 있다'는 응답은 29.8%에 그쳤다.

군복무 당시 공헌에 대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61.2%가 '긍정한다'고 답변했고, 제대군인 취‧창업 지원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54.5%였지만, 지원정책에 대한 관심을 묻는 질문에는 50.6%가 '관심이 없다'고 답변했다.

중장기 제대군인이 전역 이후 생활유지와 재취업에서 겪을 어려움의 수준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느냐의 질문에 '다소 어려울 것이다'는 답변이 44.4%, '일반적인 이직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는 대답도 35.0%로 나타났다.

하지만 일반 회사를 다니다가 그만둔 사람들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사회 경력이 인정되고 이직을 위한 기간을 확보할 수 있다. 또 주변으로부터 이직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구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제대군인은 이직 기간도 부족하고, 정보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 가장 많은 돈이 지출되어야 할 시기인 30대 초반에서 50대 초반에 전역하는 제대군인들의 구직 상황이 열악한 데에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을 하고 있다. 사회안전망인 고용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실업 급여를 보장받는 일반근로자와 비교할 때 국가적 지원도 빈약한 게 현실이다.

[어떤 아빠] 군대에서는 '노인양반', 사회에서는 '청년'
 
이효백 예비역 소령
 이효백 예비역 소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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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이효백 예비역 소령과 함께 근로복지공단 대전병원에 가서 건강검진 결과지를 받았다. 그는 "특이소견이 없다"면서 활짝 웃었다. 다음으로 간 곳은 한 버스회사 차고지였다. 건강검진 결과지 등 13개의 서류가 든 봉투를 버스회사에 제출한 뒤 한 카페에 마주 앉았다.

"예전에 아들에게는 기회가 된다면 군인이 되어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죠. 자긍심도 있습니다. 그런데 경찰을 하라고 할 걸 그랬나?(웃음) 약간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군에서 25년 정도 생활했으면 전투력도 왕성하고 리더십과 조직력도 탄탄한 시기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군에서는 '노인 양반'입니다. 바깥으로 나왔더니 왕성하게 일할 '청년'이더군요. 하-하-"

그는 "제대군인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니지만, 막상 직장을 구할 때 보면 부담스러워하는 부분도 있다"면서 "법과 약속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군인의 습성이 고지식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게 장점일 수 있고 개인에 대한 관리 능력과 리더십, 책임감과 열정, 뛰어난 위기대응 능력 등을 사회적으로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며칠 전에 국립대에 다니는 막내아들이 제게 와서 묻더라고요. '아빠, 요즘 출근 안하지?' 그래서 '왜 우리 아들이 기특하게 그걸 묻냐'고 대꾸를 했습니다. 아들은 '다 참고할 게 있어서 그렇다'고 말하더라고요. 몇 시간 흐른 뒤 아들이 아내에게 '노트북을 사야 한다'고 부탁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예전 같으면 나에게 할 말이었죠. 녀석도, 눈치는 있어서..."

그는 "기자님하고 헤어지면 곧바로 마트에 가서 아들의 노트북을 사준다"면서 "돈은 어머님이 내시고 저는 심부름만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태그:#제대군인, #이효백, #계급정년, #에비역,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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