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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포착한 장면의 '방해 없이 즐기자'는 68혁명을 상징하는 구호이다.
FRANCE. Paris. Rue de Vaugirard. 1968.
Wall inscription: Jouissez sans entraves ("Pleasure without limits").
ⓒ Henri Cartier-Bresson/Magnum Photos
▲ Wall inscription: Jouissez sans entraves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포착한 장면의 "방해 없이 즐기자"는 68혁명을 상징하는 구호이다. FRANCE. Paris. Rue de Vaugirard. 1968. Wall inscription: Jouissez sans entraves ("Pleasure without limits"). ⓒ Henri Cartier-Bresson/Magnum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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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역사와 현재를 산책하다

프랑스 파리는 호명 자체로도 매혹을 발산한다. 예술가들의 창의적 공간이자 철학적 사유가 삶을 지탱하며, 브랜드와 패션산업으로 자본시장의 최전선에 있다. 공화정을 잉태했던 1789년 프랑스대혁명에서 68혁명까지, 시대의 좌표마저 제시해왔다. 이렇듯 낭만과 혁명, 자본의 도시 파리를 사진으로 접할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되었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은 지난 9월 25일부터 '매그넘 인 파리'를 진행 중이다. 사진가 그룹인 매그넘 포토스(Magnum Photos)의 90년 역사에서 파리를 담아낸 작품을 엄선하여 기획한 전시이다. 이 그룹은 1947년 4월 로버트 카파, 데이비드 시무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조지 로저에 의해 설립되었다. 스페인 내전과 2차 세계대전에서 전쟁의 참상을 기록했으며 사진이 무엇을 담아야 하는지 보여준 작가들이다.
   
엘리엇 워윗Elliott Erwitt의 특별 기획된 공간에 전시된 시몬드 보부아르의 초상사진
▲ 시몬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엘리엇 워윗Elliott Erwitt의 특별 기획된 공간에 전시된 시몬드 보부아르의 초상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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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전시실은 각각의 챕터와 연대기가 조화를 이루며, 또한 시대성이 반영되면서 배치되었다. '파리, 전쟁과 가난으로 물들다'를 시작으로 '재건의 시대', '낭만과 혁명', '파리의 오늘'로 이어져간다. 플라뇌르(산책자), 파리지앵, 패션의 매혹 등을 더하여 파리의 특색을 집약했다. 일련의 키워드가 적절히 조합됨으로써 1930년 이후의 파리를 종합적으로 고찰하도록 틀을 제공해주고 있다.

'파리는 날마다 축제' 공간에서는 세계의 문화 수도로 변모를 추구했던 '그랜드 파리 프로젝트'(Grand Paris Project)' 시기이다. 이 때 건설된 루브르 박물관의 피라미드를 비롯한 기념비적인 건축, 그리고 교통, 환경, 미학의 영역까지 새로운 디자인과 위상이 구축되었다. 그리하여 과거와 현재를 융합하며 창조의 원천이자 영감을 제공하는 메카가 되었다.  
 
파리지앵 24명의 초상사진을 만나는 전시 공간
▲ 파리지앵 파리지앵 24명의 초상사진을 만나는 전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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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지앵'에서는 눈에 익은 24명의 초상사진을 만나게 된다. 피카소와 푸코, 들뢰즈, 에디트 피아프, 시몬드 보바르 등이다. 이 공간에서 마주하지 못한 달리, 마르크 샤갈, 모딜리아니, 쇼팽도 파리지앵의 대표적 인물이다. 이들 모두는 도시에서 무명의 장막을 걷어내고 예술의 새로운 흐름을 창조하면서 시대를 선도하는 거장으로 성장했다.

'플라뇌르'에서는 전시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 122컷을 영상으로 만나는데, 파리의 일상적인 현재성을 보여준다. 도시가 단순한 거주 지역으로 국한되지 않으며, 관찰의 대상임을 일깨워준다. 거리의 다양한 모습을 포괄하며 생활상을 구성하는 재즈, 혁명, 키스 등 8개의 키워드는 파리의 공간을 천천히 부유하도록 여유로움을 제공한다.
    
'매그넘 인 파리' 전시는 파리와 교토에서 2014년과 2017년에 전시하였다. 서울은 3번째이며, 생존 작가인 엘리엇 어윗의 작품을 특별 기획하였다. 그의 작품은 웃음과 인간적인 면모가 강하다고 평가를 받는다. 특히 개(dog)의 모습을 촬영한 대다수의 작품은 정식화된 포커스에서 비껴났고, 이런 낯설게 하기는 동일한 작품 안에서도 저마다의 해석이 다양해진다.

'살롱 드 파리'(Salon De Paris)에는 1800년대의 고서 및 지도와 일러스트, 소품이 마련되어 있다. 각층의 문화인을 비롯해 다채로운 군상이 모여 작품을 공유하고 토의하던,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상하게 된다. 파리의 영광과 근대 수도의 위상을 소소하게나마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제3전시실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을 위해 헌정된 공간이다. 길거리 벽에 페인트로 쓰인 글귀(Jouissez Sans Entraves 방해 없이 즐기자)가 담긴 작품은 68혁명의 핵심 구호를 포착한 것이다. 그는 결정적인 순간을 담아 '사진을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은 사진가'라는 평을 받았다. 로버트 카파와 더불어 포토저널리즘과 르포르타주를 직업이자 작가의 시대정신으로 각인시켰다. 노동자와 가난을 담은 그의 작품은 흑백의 향연과 어우러지며 잔잔한 울림을 전달한다.
 
파리의 패션 산업과 유행을 전반적으로 관람할 수 있는 공간, 붉은색 보드가 매혹을 더한다.
▲ 파리, 패션의 매혹 파리의 패션 산업과 유행을 전반적으로 관람할 수 있는 공간, 붉은색 보드가 매혹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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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 포착한 역사와 시대성에 공감되도록 우리에게 통찰을 요구한다. 사진이 비록 찰나일지언정 부동의 영원성으로 각인되는 연유이다. 그러나 화려하고 환상적인 도시가 키워낸 어둡고 버려진 부위는 엄연히 존재한다. 이는 시대에 대한 배신감을 키운다. 동시대의 뒤편으로 내몰린 층위를 포용하는 것은 사회적 소명이다. 바깥의 풍경을 무엇으로 어떻게 채울지, 여전히 제기되는 과제이다.

이번 서울 전시는 파리의 패션 문화를 추가적으로 기획한 것이다. 파리의 패션산업은 이미지의 과잉 소비를 촉진하며 위풍당당함에 포커스가 집중된다. 이전 전시에서 포용하지 못한 난민, 성소수자와 최하위층을 담은 작품을 발굴했다면 유의미하지 않았을까. 특히 난민 문제는 제국주의 역사와도 무관치 않으며, 다른 여타의 이슈와 갈등 또한 우리의 유산이다.
 
전시실 입구를 수놓은, 매그넘 포토스 40명 멤버의 초상사진
▲ 제1전시실 프롤로그 전시실 입구를 수놓은, 매그넘 포토스 40명 멤버의 초상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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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임의의 타자와 사물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시대를 반영하게 되었고 예술매체로 발전해왔다. 인류사의 숱한 상처까지 아우르며 동시대인이 거부할 수 없는 근원의 동의성을 제공하고 있다. 전시는 죽음의 사선을 넘나들었던 매그넘 포토스의 예술적 성과와 경지를 체험하도록 한다. 거창하지 않더라도 시대의 플라뇌르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매그넘 포토스의 아카이브는 https://pro.magnumphotos.com을 통해, 이번 전시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주옥같은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2020년 2월 9일까지이다.

태그:#매그넘 인 파리, #매그넘 포토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엘리엇 어윗, #플라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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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응의 질서를 의문하며, 딜레탕트Dilettante로 시대를 산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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