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몇 달 전 낯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청도군 치매안심센터입니다. 조정수 어르신 아드님 되시죠? 저번에 아버님이 이곳에서 치매검사를 받으시고 병원 CT까지 찍어봤는데 치매 초기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아니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인터넷 검색창에 수많은 치매 관련 단어를 입력했다. 지역 보건소에서 진행하는 치매 관련 특강을 들었다. 치매 관련 특강을 듣고 집에 온 날, 나는 아내 앞에서 펑펑 울고 말았다.

얼마 전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갔다. 신경내과 의사가 갑자기 휴진을 하는 바람에 제대로 상담을 하지 못했다. 병원 접수대 앞에서 아버지는 왜 미리 연락을 하지 않았냐고 간호사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셨다.

"호야! 내 치매 아이다. 아무렇지도 않다. 내가 치매가 아니라고 하는데 의사 저것들이 뭘 안다고 치매라고 카노? 걱정하지 마라. 니는 아무 걱정하지 마라. 내가 다 알아서 안다. 나는 치매 아이다. 절대로 치매 아이다. 니는 아무 걱정하지 마라."

저런 모습도 치매 증상의 한 가지일까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치매는 내가 나를 어떻게 통제하지 못하는 병이라고 한다. 아버지는 아들인 나에게 간절히 호소하듯 말했다. 당신은 치매가 아니라고. 절대로 당신은 치매가 아니라고. 당신은 치매 같은 병에 걸릴 사람이 아니라고… 아버지는 무서웠을 것이다. 그리고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75년을 살아온 당신 존엄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본능처럼 당신은 치매가 아니란 말을 하고 또 했다.

공교롭게도 아버지 4남매 가운데 일본에서 태어난 고모와 아버지는 아직 살아 있으나 고향에서 태어난 삼촌 두 명은 먼저 세상을 떠났다. 7년 전 큰삼촌이 일하던 공장에서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그때부터 아버지는 잠을 이루지 못해 수면제의 힘을 빌려 잠을 청한다.

수면제도 내성이 생긴다고 했던가? 약 성분은 점점 강해져 담당 신경정신과 의사는 현재 가장 강한 성분의 수면제를 사용한다고 했다. 최근 들어 아버지는 했던 말을 반복하고 휴대폰의 문자메시지 확인하는 방법을 자주 잊어버렸다.
 
<기억의병>김진국 지음
▲ 기억의 병 책 <기억의병>김진국 지음
ⓒ 조명호

관련사진보기

 
<기억의 병>이라는 책을 읽고 아버지가 생각나서 많이 울었다. 책을 쓴 이가 같은 지역에 있는 의사 선생이라 내용 중에 나오는 사투리 대화가 마치 아버지 말 같아서 가슴이 찡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작가의 말처럼 빠르게 변하는 세상은 우리 아버지 세대가 전혀 경험해보지 않았던 낯선 세계이며 낯선 문화이다.

아버지는 일제 강점, 한국전쟁에 이어 30년간의 독재정권을 거치는 동안 유소년기와 청장년기를 거친 세대이다. 열심히 농사를 짓고 돈을 벌고 가족들을 먹여 살리면서도 아버지 당신에 대한 정체성을 가져본 적이 없고 살아오면서 한 번도 '나'를 내세운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아들인 나에게 따뜻한 말을 한 적이 거의 없다. 어릴 적에 내가 아버지에게 말을 놓은 적도 없다. 당연히 스킨십이란 것은 있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항상 무표정이었고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아니 감정을 숨기고 있었다는 말이 맞겠다. 딱 한 번 아버지의 감정을 본 적이 있다. 내가 군대 가기 전 훈련소 연병장에서 아버지는 황소 같은 눈망울에 눈물을 그렁그렁하며 잘 갔다 오라고 옷소매로 눈물을 닦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최근에는 나에게 하는 말이 많아졌다. 휴대폰이 잘 안 된다, 농민신문이 안 오는데 농협에 전화를 좀 걸어봐라, 병원 가야 하는데 언제 같이 갈 수 있느냐, 배가 아픈데 약을 좀 사와라, 이번 주말에는 읍내 찜닭 하는 식당에 같이 가자… 엄마에게 하는 잔소리도 많아졌다. 얼마 전 추석 때 음식할 때도 사사건건 잔소리를 했다. 아마도 당신의 존재의 의미를 알리기 위해 그렇게 잔소리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버지는 치매라는 병을 인정하지 않지만 아버지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은 치매를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치매가 더 진행되지는 않아 보인다. 엄마가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고 있지만, 엄마도 점점 지쳐가는 모습을 보여 안타깝다.

개인적으로 요양병원은 죽음이란 종착역의 마지막 정류장이라고 생각한다. 요양병원이라는 단어를 외면하고 싶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나를 슬프게 한다.
 
아버지는 다리에 깁스를 하고서라도 기어코 감나무밭에 나와서 감을 따신다. 병원에 누워계신 것은 죽기보다 싫으시다면서...
▲ 감을 수확하시는 아버지 아버지는 다리에 깁스를 하고서라도 기어코 감나무밭에 나와서 감을 따신다. 병원에 누워계신 것은 죽기보다 싫으시다면서...
ⓒ 조명호

관련사진보기

 
한 달 전 아버지는 복숭아밭에서 경운기를 운전하다 발목이 부러졌다. 대구 큰 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입원을 했다. 아버지는 병원에 있는 동안 수시로 나에게 퇴원하게 해달라고 말했다.

아버지가 주치의에게 며칠간 사정을 해서 퇴원을 허락받던 날, 병원에 가보니 아버지는 새벽부터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가 입던 환자복은 쓰레기통에 던져져 있었다. 아버지는 말했다.

"아이고, 속이 시원하데이! 아무 이상도 없는데 더 입원해서 뭐 할끼고? 나는 병원이 죽기보다 싫데이."

45년생, 조정수. 이미 허리는 구부정하며 몸무게는 60kg 아래로 떨어진 지 오래다. 지난 주말 전어 한 접시를 사 갔더니 맛있게 드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지내다 아름답게 병원이 아닌 집에서 아버지와 이별하고 싶다. 20년만 더 아버지와 가을 전어를 함께 먹고 싶다고 생각하면 나의 욕심일까?

태그:#기억의병, #치매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살아가는 이야기에 행복과 미소가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대구에 사는 시민기자입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