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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 비단 강을 이루는 보석 같은 강마을 옥천. 경향신문 주필이었던 시인 정지용, 한겨레신문 초대 사장 송건호, 임시정부 산하 독립신문 창간인 조동호 등 언론인들의 고향의 또 다른 보석 옥천신문사에 들어섰다. 황민호 실장은 마주 앉자마자 두툼한 <옥천신문>을 펼쳐 보이면서 자랑을 시작했다. 

"매주 이렇게 나옵니다. 두 개 섹션으로 <옥천신문>은 24면, <옥천사람들>은 48면. 우선 '옥천사람들'부터 보시죠. 여기 이 면은 길가다가 만난 옥천 사람들 얘기예요. 옥천신문사에 취재기자 말고도 취재견이 있다는 거 아세요? 취재견과 같이 산책하면서 만난 옥천 사람들의 짤막한 얘기를 매주 싣는 거지요. 이건 '옥천푸드'라는 로컬푸드 코너인데 이번에는 토종 참다래 얘기네요. 이거는 '작은 학교가 참좋다'라는 코너로 50명 이하 작은 학교 이야기를 매주 다뤄요. 옥천군내에 한 10개 정도 됩니다. 그 학생 한 명 한 명 다 만난다는 생각으로 학교 소식을 계속 내보내는 거죠. 이건 '구술생애사'예요. 할머니들 얘기죠. 여든 살 넘으면 누구나 대상이 될 수 있어요. '옥천은 공사중'이라는 코너는 옥천 관내에서 진행되는 공사에 예산이 얼마나 들고, 어디서 어떻게 하는지 알려줘요. 이것도 핫 합니다. 자기 동네 공사하는 거 예산이 얼마고 공정률이 몇 프로인지 등 행정정보를 공개하는 거죠. 그건 유기동물 관련 지면이고 이건 지역화폐가 경품으로 제공되는 퀴즈입니다." 
    
 대표 지역언론 <옥천신문> 황민호 제작실장
 대표 지역언론 <옥천신문> 황민호 제작실장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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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걸 공동체 쪽 기자들이 다 쓰는 거예요? 
"그쵸. 정신없습니다(웃음). '옥천 사람들'이 공동체에 관한 걸 다룬다면 '옥천신문'은 공공성·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견제 같은 역할을 맡아요. 물론 다 옥천 얘기예요. 이 기사는 제보기사인데요. '교무실 청소를 왜 선생님이 안하고 학생들이 하느냐, 학생 인권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예요. 저희가 취재 들어가서 기사화된 후에 학교에서 바꾸기로 했대요."

- 생각보다 콘텐츠가 굉장히 많네요. '옥천사람들'이 훈훈하다면 '옥천신문'은 엄청 쎄군요? 
"옥천 인구가 약 5만 명, 2만 가구입니다. 인구가 계속 줄고 있지요. 그런데 옥천 지역신문 취재기자만 10명이에요. 총 19명이 근무하고요. 모두들 깜짝 놀라요. 옥천에 뭐 그렇게 일이 많냐고." 

- 저도 놀랐는데 신문을 보니 19명으로는 턱도 없이 부족하겠는데요? 
"제보가 무지하게 많아요. 새로운 실험도 시작했고요. 편집국을 공동체국과 탐사보도국으로 분리했어요. 제가 공동체국장을 겸하고 있는데, 공동체국은 넓고 다양하게 사람들을 만나고 탐사보도국은 깊고 예리하게 부정부패를 좀 더 캐내라는 거죠. 

사이트도 두 개 있어요. '옥천닷컴' 사이트는 무료고 '옥천신문'은 유료입니다. 옥천닷컴은 올해 런칭을 했어요. 저희가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유료를 고수하고 있어요. '옥천신문' 사이트 들어가도 회원이 아니면 기사 못 봅니다. 광고주에 의존하지 않고 신문의 건강성을 지키고 싶었어요. 저희 재정에서 구독료 비중이 거의 절반에 가깝습니다. 대부분의 신문 재정에서 80%가 광고인 걸 감안하면 굉장히 높은 거죠." 
 
 옥천신문사가 발간하는 <옥천신문>과 <옥천사람들>
 옥천신문사가 발간하는 <옥천신문>과 <옥천사람들>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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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천신문사에서 발간하는 <옥천신문>과 <옥천사람들>의 구성에 대해 설명하는 황민호 실장
 옥천신문사에서 발간하는 <옥천신문>과 <옥천사람들>의 구성에 대해 설명하는 황민호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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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요? 
"처음에는 항의나 반발이 많았습니다. '한겨레, 조선일보 다 인터넷에서 공짜로 보는데 너희(옥천신문)가 뭐라고 다 막아놓느냐'고. 그러면 저희는 '구독료가 6천 원인데 기자들하고 차 한잔한다고 생각해 주십시오. 촌지 받지 않고 일하고 싶어요.' 이렇게 설득하곤 했어요. 지금은 마땅히 돈을 내고 보는 신문, 로그인하고 들어가야 보는 신문, 이렇게들 인식을 하고 있죠. 다만 올해 무료로 제공되는 '옥천닷컴'을 오픈한 건 SNS 현상을 역행할 순 없어서예요. '옥천신문' 기사도 퍼 나를 수 있으면 좋잖아요. 그래서 유료를 고수하되 연성 기사, 행사 기사, 사람들 인터뷰나 탐방 이런 것들은 무료 사이트에서 퍼 나를 수 있도록 운영을 하는 겁니다." 
 
- 실례지만 재정 규모가 어떻게 되는지 알려줄 수 있나요?

"1년에 한 6~7억 원 정도. 한 달에 5~6천만 원 정도요. 빠듯하죠. 인구가 줄어드는데 구독자가 늘어나길 기대할 수만은 없어서 후원구독자를 모집하고 있어요. 원래 구독료가 만 원인데 3만 원, 5만 원 내는 독자인 셈이죠. 전국에서 봐요. 박원순 시장도 보고요. 출자 공모도 하고 있습니다. 옥천 출향인들 커뮤니티를 형성하는데 '옥천신문'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나 생각하고 있고요."
  
- 올해 30년 됐다고 그러셨는데 창간한 취지는 뭐예요?

"1987년 이후에 지방자치제가 재개되잖아요.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그때는 더더욱 옥천소식은 텔레비전을 틀어도 안 나왔어요. 안 나오니까 우리도 신문하나 만들자 그랬던 거죠. 1988년에 홍성신문을 창간한 이후 전국에서 지역신문이 들불처럼 막 생겨났어요. '옥천신문'도 1년 후인 1989년도에 오한흥 초대 대표가 국민주 방식으로 만든 겁니다. 1988년도에 한겨레신문이 국민주로 만들어졌잖아요, 옥천 출신인 송건호 선생님이 초대대표였고요.

그즈음 한겨레신문 옥천지국장을 하던 오한흥 대표가 한겨레를 모태로 해서 222명에 5천만 원이 채 안 되는 돈으로 창간한 겁니다. 9월 30일이었어요. 저는 옥천의 역사가 '옥천신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생각해요. 매주 주민 자신들의 역사가 신문으로 나오고 기록으로 남는 거죠. 창간 당시 '옥천신문'을 보면 그 시대 옥천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 지역신문으로 성공한 사례가 광역보다는 '홍성신문'이나 '옥천신문'같이 기초단위에 많은 거 같은데 왜 그런 걸까요?

"그게 되게 중요한 부분인데요, 풀뿌리 자치가 되려면 밀착성이 중요하거든요. 시군단위 같은 경우 한 다리 건너 한 집 건너 서로 다 알거든요. 이런 관계가 형성되는 곳에서 성공하는 거죠. 조선일보 안 보고 연합뉴스 몰라도, '옥천신문' 구독하는 집이 많습니다. 요즘 시대에 누가 종이신문을 돈 내고 보나요? 내가 아는 사람이 나오고 내가 필요한 정보가 있으니까 보는 거죠. 3500명이란 숫자는 옥천 2만 가구면 거의 20%에 육박하는 숫자예요. 어떤 분은 빨간 줄을 치면서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봐요. 돌려가면서 보고 아파트에서는 훔쳐 가는 사람도 많아요. 보고 싶고 궁금한 거죠.

'단독' '특종' 엄청나게 강조하잖아요?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어요. 기사 하나하나가 단독이고 다 특종인걸요. 제보 전화가 많이 와요. 제보가 아니어도 모르는 거 있으면 '옥천신문'에 전화해요. 할아버지가 텔레비전에서 축구보다가 페널티킥이 뭐냐고 전화하고요, 고추 농사 잘 지었으니 취재해 달라고 전화해요. 그게 뭐가 뉴스가 됩니까? 근데 우리는 가서 취재해요. 그럼 기사 보고 거기 어디냐고 묻는 전화가 와요. 고추 좀 사겠다고. 특별한 사람들만이 뉴스에 나오는 게 아니라 누구나 나올 수 있고 또 누구나가 특별해지고. 평범함 속에 있는 비범함을 신문이 발견해 주는 거죠.

저는 이런 게 중앙언론과는 다른 커뮤니티 저널리즘이라고 생각해요. 풀뿌리 청년언론학교도 10월부터 시작했어요. 매월 모집해요. 수강료 30만 원, 숙식 제공이지만  지역 청년들은 무료예요. 한 5명 정도만 모집해서 여기서 커뮤니티 저널리즘을 경험하게 하는 프로그램이에요." 

- 여기 와서 배우면 기존에 알던 것과 다른 언론을 느끼고 배우게 되는 건 분명한 거 같아요. 뉴스나 취재에 대해서도 이제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될 거 같고요. 
"언론인이 아니더라도 자치나 분권 전문가, 시민활동가, 지역농업 종사자, 이런 분들이 여기에 오면 5만 명이 사는 군 단위가 어떤 메커니즘으로 움직이는지 볼 수 있어요. 특히 지역신문은 풀뿌리민주주의의 초석이라고 부를 만하다고 봐요. 의회 방청석에 가보면 '옥천신문' 기자가 한 명 앉아 있어요. 그 한 명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아무도 없으면 자기들끼리 농담 따먹기도 하지만 그럴 수 없거든요. 옥천군 예산이 1년에 5천억 원입니다. 적지 않은 예산이에요." 

- 어리석은 질문이긴 한데 '옥천신문'과 '옥천사람들' 중 어떤 게 더 인기 있나요?   
"'옥천신문'이 옥천 주민들을 우울하게 한다고 공무원들이 얘기해요(웃음). 군수가 저한테 금요일만 되면 배가 아프대요. 신문이 금요일 아침에 나오고 신문에서 실명으로 비판하니까 아프긴 하겠죠. 금요일 아침이면 욕하는 전화가 굉장히 많이 와요."

- 독자들이 '옥천신문'이 외로운 길을 가고 있다는 걸 인정해주나요? 지역사회에서 '옥천신문'의 까칠한 기사에 노출된 이들이 갈수록 늘어날 텐데. 
"어느 날 호프집 갔는데, 옆 테이블 사람이 친구에게 '야 너 그러면 옥천신문에 나와'라고 얘기하더라고요. 주민들도 이 신문이 사적인 감정으로 비판하는 게 아니란 걸 알아요. 처음엔 욕도 하고 그랬지만 화가 풀어지면 미안하다고 전화가 와요. 놀라운 경험이죠. 옥천의 보물이라고 얘기하시는 분도 계세요. 그런 말들이 힘이 되죠. 그래서 하는 겁니다." 
 
 <옥천신문> 황민호 제작실장
 <옥천신문> 황민호 제작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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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 종이신문인 '옥천신문'은 뉴미디어 시대를 어떻게 맞이하고 있나요?
"신문만 고집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옥천신문'은 종이신문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발행할 겁니다. 하나는 있어야 하잖아요." 
 
- 여전히 지역에서는 종이신문을 많이 보죠?

"그럼요. 옥천닷컴이란 사이트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지만 종이신문에 안 나오냐고 물어보세요. 그래서 옥천닷컴에 낸 기사를 늦더라도 종이신문에 내곤 해요. 하지만 '원 소스-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는 필요하고, 신문도 변화해야 해요. 저희도 '옥천유튜브'라는 방송을 하려고요. 콘텐츠는 무궁무진하니까. '옥천신문'에 투자하고 싶은 사람 있으면 그분들과 제대로 된 커뮤니티 저널리즘 만들고 싶어요. 마을 방송, 라디오도 있었으면 좋겠고." 
 
- 마지막으로 옥천의 언론인으로서 활동한 지난 20년은 실장님께 어떤 의미였나요? 

"좋았죠. 2002년 입사하고 10년간. 그러면서도 너무 힘들었어요. 마감을 거의 다음 날 12시, 1시까지 하고, 맨날 항의 듣고...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만뒀지요. 그래도 지역에 남아있고 싶었어요. 그냥 남아서 놀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농민회 회원 한 분의 제안으로 로컬푸드 영농조합인 '옥천살림'의 급식 배달을 시작했어요. 작은 학교에는 두부 한 모도 배달하고, 노인정에 밑반찬도 배달도 하고. 그때 느낀 게 많았어요. 옥천에 대해 웬만큼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다녀보니까 안 가본 곳이 너무 많고 모르는 것도 많더라고요. 기자 타이틀 떼고 트럭 기사로 사람들을 대면하니까 다른 게 보이고요.

그때 깨달았어요. 아, 내가 도는 곳만 돌았구나, 만나는 사람만 만났구나! 다시 돌아온 것도 그 때문이에요. 글도 못 쓰고 말하지도 못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의 글이 되고 말이 될 수 없을까. 요즘도 저는 기자들 상대로 강의 같은 거 할 때 "당신이 한 달에 만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거 같습니까? 한 번 이름을 적어보세요."하고 얘기해요. 만나는 사람들 이름을 적어보면, 그게 그 사람의 정체예요. 많은 경우 똑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지요. 편하니까. 나랑 생계 걱정이 다른 사람들을 만날 일이 별로 없어요." 

돌아오는 길에 금강변에 들러 장애인보조활동을 겸하신다는 후덕한 인상의 아주머니가 내오는 도리뱅뱅이와 올갱이 수제비를 들었다. 금빛으로 뉘엿해진 햇살을 받은 비단 강물이 부드러운 바람을 맞아 반짝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태호 님은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입니다. 사진 촬영은 이한나 참여연대 미디어홍보팀 간사, 녹취는 조연우 자원활동가가 진행했습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2019년 10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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