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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교육은 '뜨거운 감자'다. 교육은 계급 격차와 불평등의 구조화, 학벌 중심의 서열화 등 사회적 모순이 집약된 분야이다. 또한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타고 바벨탑 꼭대기에 오르려는 인간의 왜곡된 욕망이 만들어 낸 끝없는 블랙홀이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감을 잡기 힘들 정도로 엉켜버린 실타래와 같은 대한민국 교육에 과연 '희망'은 있는 것일까.

교육, 희망의 이름으로 '마을'을 호출하다

2016년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한 '일자리의 미래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7세 아이들의 65%는 지금은 없는 직업을 가질 것"이라고 한다. 평생직업의 개념이 점차 사라져감에 따라 아이들은 하나의 직업 대신 '일'을 바꿔가며 환경 변화를 주도적으로 헤쳐나가야 한다.

현 학교교육체제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담아내기에 역부족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통칭되는 미래 사회는 표준화, 획일화, 입시위주 경쟁을 특징으로 하는 교육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한다.

2007년 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 유종일입니다'에 출현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한국이 과거 산업시대의 교육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은 크나큰 장애물이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감옥에 돈을 쏟아붓는 격"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지금과는 다른 교육이라야 다른 미래를 열 수 있다'는 자성어린 성찰이 '마을'을 호출했다. 전국적으로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은 공교육 문제를 더 이상 학교만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현실의 반증이다.

'삶과 배움의 불일치'라는 교육의 근본적 한계는 마을을 배움터로 삼아 마을과 관계를 맺으면서 학습하고 성장한다면 극복할 수 있다. 마을교육공동체는 정책과 제도의 산물이 아니라 교육 현장에서부터 촉발된 새로운 교육 운동이자 풀뿌리 운동이다.

마을교육공동체를 위한 풀뿌리 실천의 확산

마을교육공동체 운동은 각기 다른 현실과 처지에 놓인 다양한 현장들에서 다양한 교육 현안들을 마을 내 소통과 연대, 협동의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교육협동조합, 마을학교,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활동, 농산어촌 작은학교살리기 운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더 많은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사는 영광군 묘량면에는 폐교 직전까지 몰렸다가 기사회생한 '작은 학교'가 있다. 효율성을 앞세운 농산어촌 통폐합 방침에 반대하고 시골 마을의 작은 학교를 살리기 위해 학부모들과 지역주민들이 힘을 모았다.

농촌 시골마을에 학교마저 사라진다면 결국 마을공동체마저 소멸하고 말 것이라는 절박한 인식이 자발적인 실천으로 이어진 것이다. 결국 통폐합 방침은 철회되었고 현재 이 학교는 학부모와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마을교육공동체의 거점이자, 지역사회의 백년대계를 좌우할 마을공동체의 심장이 되었다.

학부모와 지역주민들은 작은학교살리기를 넘어 지역사회 전체를 배움터로 변모시켜 마을이 아이를 함께 키우는 문화와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5년째 운영하고 있는 '마을학교'는 마을을 거점으로 다양한 교육활동의 기회를 확대하고 학교와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데다 갈수록 고령화, 과소화 되고 있는 마을의 현실에서 마을교육공동체 운동은 어려움의 연속이다. 지속적인 인구유출과 신규 인구유입이 없는 상태가 지속된다면 마을의 존폐를 걱정해야 할 시점이 곧 도래할 것이다. 마을의 흥망성쇄는 정확하게 마을교육공동체 운동의 흥망성쇄와 일치할 것이다. 마을이 살면 교육도 살 것이요, 마을이 죽으면 마을교육공동체도 사라진다.

마을교육공동체를 추진하는 지역들의 실정은 각이하겠으나, 저마다 크고 작은 고난을 겪으면서 하루 하루 전진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처럼....

풀뿌리 실천의 확산, 즉 양적 확대는 반드시 질적인 비약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산발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다양한 실천활동들을 뒷받침할 철학과 이론의 정립이 중요하다. 실천 없는 이론은 망상이고, 이론 없는 실천은 추진력을 잃기 쉽다. 운동의 진화를 위해 이론과 실천의 결합은 필수적이다.

생태적 마을교육공동체 운동의 진화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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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교육공동체 생태적 의미와 실천> 표지 .
ⓒ 살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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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쯤이면 마을교육공동체 운동을 한번 갈무리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던 차에 너무나 반가운 책을 만났다. 오랫동안 마을교육공동체를 연구해 온 한국외국어대 김용련 교수의 <마을교육공동체 생태적 의미와 실천>이다.

이 책은 마을교육공동체운동이 직면한 여러 실천적 문제들에 이론적 해답을 제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서 있는 현장에서 이 운동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에 대해서도 깊은 영감을 준다. 꼭 필요한 시기에 교육현장의 다양한 문제들을 풀어나가는데 안성맞춤인 책이다.
 
"마을을 기반으로 하는 교육공동체의 목표는 학생들에게 그 지역의 다양한 내용을 실천적 방법으로 학습시키고, 그들의 학습역량과 정의적 발달을 도모하여, 그 결과가 다시 지역사회로 환원되는 선순환적 구조의 지역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에 있다. 이 때 학습의 결과가 지역사회로 환원된다는 의미는 그 지역사회의 교육받은 아이들이 지역의 발전을 위한 주인의식을 발휘하는 주민으로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마을교육공동체의 궁극적인 목표는 지역의 아이들을 그 지역의 민주적인 시민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78쪽)

저자는 마을교육공동체 운동의 '생태적' 접근과 실천을 강조한다. 유기적, 전일적 관점에서 생명체들의 상호의존성을 중시하는 생태주의적 관점은 '공동체'의 개념을 정의하는데 유용하다. 개인들의 단순한 조합이 아니라 구성원들간의 유기적인 상호작용이 이루어질 때 '생태적 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다.

저자는 "학교나 지역사회가 하나의 교육생태계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고 삶과 배움이 일치하는 네트워크 구조 속에서 사회적, 교육적 변화에 스스로 적응하는 자생력을 가지며 배움의 결과가 개인의 발전과 함께 모두가 성장하는 공진화로 나타나야 한다"고(85쪽) 설명한다.

개인들의 유기적인 연계망, 상호작용을 통한 주체적 학습과정의 구성, 배움의 결과에 입각한 공진화 과정이 결합할 때 마을교육공동체를 이뤄나갈 수 있다.

마을이 살아야 교육도 산다

마을교육공동체를 구성하려면 마을이 아이들의 배움터가 되어야 한다. 마을의 교육자원과 인프라를 발굴해야 한다. 마을교육공동체는 마을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 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학습과 성장의 결과가 다시 지역으로 환원되는 선순환적 구조의 지역공동체를 지향한다. 마을에서 자라나며 배운 아이들이 그 마을의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고 정주할 때 마을공동체와 교육공동체는 상생하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해 나갈 수 있다.

삶의 총체성 측면에서 본다면 '교육'은 삶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다. 마을 안에서 인간다운 삶의 질을 향상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제, 노동, 교육, 문화, 의료, 복지 등의 측면에서 복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저자도 "마을교육공동체는 교육운동으로 시작했지만 그 귀결점은 교육과 지역의 상생을 도모하는 지역사회 운동이 될 것"(149쪽)이라고 본다.

따라서 일반자치와 교육자치의 협력만으로는 안 된다. 지역의 교육력을 강화하고 지역발전의 선순환적 토대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주민자치'가 결합해야 한다.
 
"지역과 주민공동체의 생태적 건강함 없이 아이들이 올바르게 성장하기를 바라는 것은 모순이다. 모두가 함께 하는 교육, 지역을 위한 교육, 공동체를 위한 교육을 통해서 아이들도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앞으로의 실천이 학교와 아이들에게만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역량을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것으로 전환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지역공동체의 유기적 상생을 위한 명료한 비전과 목표가 수립되어야 한다." (155쪽)

이 대목은 우리 지역의 고민과 정확히 일치한다. 현 단계에서 우리 지역의 마을교육공동체의 도약을 위한 과제는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학교교육과정과 연계한 마을교육과정 수립은 가능할 것인가? 둘째, 전 세대를 아우르는 마을의 평생학습체계로써의 마을교육공동체의 확장은 가능할 것인가? 셋째, 마을교육공동체 운동은 인구절벽과 지방소멸의 위기를 넘어서 마을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이 세 가지 과제는 각각 구체적인 방법론을 세우는 것과 동시에 각 과제들을 유기적으로 연관시킴으로써 지역사회 백년대계를 구상해야 한다.

마을공동체 운동은 마치 결승선이 없는 마라톤과 비슷한 것 같다. 열심히 꽤 많이 달려왔다고 생각했는데 결승선은 다시 저만치 멀어져 있다. '끝이 없다'는 것은 그 운동 자체가 곧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삶을 공동체적 방식으로 재구성하는데는 한계도 결승점도 없다. 풀뿌리 운동의 숙명이다.

대안이란 상황과 조건에 따라 다르게 제시될 수 있는 것이므로 본디 '과정의 언어'이다. 과정의 언어는 곧 '현장의 언어'이기도 하다. <마을교육공동체 생태적 의미와 실천>이라는 책을 통해 마을교육의 현장에서 우리의 실천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저자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실립니다.


마을교육 공동체 : 생태적 의미와 실천

김용련 (지은이), 살림터(2019)


태그:#마을교육공동체, #혁신학교, #혁신교육지구, #마을공동체, #지역교육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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