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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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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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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네 번의 봄이 지나갔습니다. 14년 동안 1, 2주마다 동광원에 갔으니 300-400번은 간 것 같습니다. 사진을 찍었습니다. 찍고 또 찍었습니다. 갈 때마다 매번 새로웠습니다. 해마다 흙집은 나이 들었고 가마솥은 일손을 놨습니다. 밭벼는 줄어들었고 산에서 내려오는 고라니는 늘어났습니다. 동광원에 계시는 분들의 모습도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지난 3일 서울 중구 필동의 갤러리 '꽃피다'에 걸린 작가 소개의 글은 위와 같이 시작했다. 첫 문단을 읽은 뒤, 옆에 서 있는 작가 얼굴을 다시 봤다. 나는 그를 정부 출현 연구소에서 일하는 공학박사로만 알았다. 매일 숫자와 데이터에 파묻혀 살 것만 같은 그가 사진전을 연 것이 놀라웠고, 그의 발길을 끊임없이 동광원으로 이끈 14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도 궁금했다.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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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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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공간에 오롯이 전시된 그의 따뜻한 사진을 둘러보면서 궁금증은 차츰 풀렸다. 우선 동광원은 벽제에 있는 기독교수도회 동광원의 벽제분원이다. 맨발의 성자로 불리는 이현필 선생을 따르는 신자들이 세운 수도회이며, 벽제 동광원은 1957년부터 독신 여신도들이 모여 기도하면서 살아가는 자급자족의 곳이다. 노동과 수도의 공간인 셈이다.

김원 작가는 2014년 한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동광원과의 인연을 이렇게 밝혔다.

"처음에는 그분들이 생활하시는 것에 대한 존경심으로 조심스럽게 다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분들의 애정에 더 자주 가게 된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 직장인인 나에게 동광원은 흔히 말하는 '힐링' 그 이상의 장소이다. 때 묻지 않은 자연이 주는 편안함은 지친 육신의 쉼터이고, 그 속에서 평생을 정결하게 살아오신 분들의 넘치는 사랑은 도시를 탈출하여 또 다른 이상향으로 가는 문이다."

김 작가는 "'늙은이들 사진 찍어 뭐 하냐'고 손사래 치시며 '꽃이나 찍으라' 하셨지만 한 해 동안 찍은 사진책을 보고 소녀처럼 웃으셨다"고 밝혔다. 김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아래 사진은 '늙은 소녀들'이 매년 사진첩에 담긴 기도와 같은 삶을 보면서 주름진 얼굴에 띄운 해맑은 미소이다.
 
김원 작가의 사진첩을 보며 즐거워 하는 '늙은 소녀들'.
 김원 작가의 사진첩을 보며 즐거워 하는 "늙은 소녀들".
ⓒ 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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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작가는 지난해에 열권이 넘는 사진집을 모아 '피안의 사계'(눈빛)라는 사진집도 발간했다.

갤러리 '꽃피다'에 전시된 액자 속 사진에 정갈함과 따스함이 배어 있는 것은 독신 여신도들이 삶이 그러했고, 피사체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사진을 찍은 게 아니라 '사랑을 찍은 것'이라고 술회했다.

"세월이 흐르며 알게 됐습니다. 그곳에 가는 이유는 사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분들은 내 삶의 에너지였고 카메라에 담은 사진은 그분들의 사랑이었습니다. 가지 않을 수 없었고 찍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진은 더 이상 사진이 아니었습니다. 그분들 사랑으로 인해 동광원은 늘 봄이었습니다. 2019년 가을, 동광원은 여전히 봄입니다."
 
김원 작가의 사진.
 김원 작가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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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벽제 동광원에는 세 명의 여신도들이 살고 있다. 2년 전 박공순 원장은 87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20대에 이곳에 들어와서 평생 동안 동광원을 맨 손으로 일구신 분인데, 마지막 가는 길에 이곳에서 한 달 반 동안 곡기를 끊고 단식을 하면서 사람들과 작별을 했다.

작가는 "2년 전 여름, 곡기를 끊으시고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가셨다"면서 "모든 기력을 잃으신 후에도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 손짓하던 모습만 사진으로 남았다"면서 소개의 글에 다음과 같이 밝혔다.
 
원장님
 원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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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원장님 사진을 전시합니다. 살아계셨으면 '늙은이 사진 뭐 볼 게 있냐'고 하시겠지만 내게는 최고의 사진입니다. 원장님을 사진으로 기억하는 일이 내가 받은 사랑과 에너지를 갚는 길입니다. 지금은 계시지 않는 원장님과 동광원 식구들에게 전시를 바칩니다.

나는 동광원의 사진사입니다."

 
원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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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0월 11일까지 갤러리 '꽃피다'에 가시면 노동이고, 기도였던 어느 독신 여신도들의 소박하고 정갈한 삶을 만날 수 있다. 지난 14년 동안 기꺼이 '사진사'를 자임하게 했던 공학박사 김원 작가의 카메라에 담은 소박하지만 위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갤러리 '꽃피다'의 주소는 서울 중구 퇴계로 36가길 50이다. 관람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이다. 일요일은 휴관한다.
 
김원 작가
 김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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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원, #동광원, #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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