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섶다리 근처 아름답고 눈부신 메밀꽃이 피어있는 꽃밭이 눈에 들어왔다. 멋진 카페까지 있어서 포토 뷰가 정말로 좋았다.
▲ 봉평면 메밀꽃밭 섶다리 근처 아름답고 눈부신 메밀꽃이 피어있는 꽃밭이 눈에 들어왔다. 멋진 카페까지 있어서 포토 뷰가 정말로 좋았다.
ⓒ 박태상

관련사진보기

 
시원하게 개울물이 흘러 내려가는 섶다리를 건너 메밀꽃밭으로 다가섰다. 누런 황토로 덮여있는 섶다리는 가늘고 길며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길이어서 일렬종대의 행군 군인처럼 걸어 올라갔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을 따라서 가면, 바로 하얀 메밀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사람들을 반긴다. 커피 향기가 퍼져나가는 듯한 아담한 카페도 있어 시원하게 탁 트인 꽃밭이 사진에 담기에 안성맟춤이었다.

이러한 아름다운 풍광에는 지도교수의 외침도 영향을 못 미쳤다. 모두들 삼삼오오 모여서 셔터 누르기에 바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건지 아니면 꽃이 사람보다 아름다운 것인지 혼란스럽다. 이럴 때 카페에서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틀어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시골 개울가에 놓여 있던 돌다리보다 규모가 좀 더 큰 바위 위에 흙을 덮어 만든 다리라서 정감이 느껴졌다.
▲ 섶다리 옛날 시골 개울가에 놓여 있던 돌다리보다 규모가 좀 더 큰 바위 위에 흙을 덮어 만든 다리라서 정감이 느껴졌다.
ⓒ 박태상

관련사진보기

"길은 지금 산허리에 걸려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슴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작품의 운치에 젖어 걷기 위해서는 한밤중 달빛에 취한 채 산길 옆 메밀꽃밭을 걸어 넘어가는 코스가 멋질 것 같은데, 버스 3대의 대부대를 이끌고 1박 2일 코스로 봉평장에서 대화장까지의 18km의 먼 거리의 산길을 등산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다들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다행스럽게도 달빛이 아니라 햇빛이 비춰주는 하얀 메밀꽃도 감성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뒤흔든다.
 
또 다른 곳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메밀꽃인데, 1 ~ 2주일 전에 봉평에 다녀온 여행객들의 블로그 사진에는 메밀꽃이 절반도 안 피어있었는데, 1주일 사이에 용케도 꽃이 만개하였다. 제주도의 4월 유채꽃밭에 뒤지지 않는 풍광이다.
▲ 아름다운 메밀꽃밭2 또 다른 곳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메밀꽃인데, 1 ~ 2주일 전에 봉평에 다녀온 여행객들의 블로그 사진에는 메밀꽃이 절반도 안 피어있었는데, 1주일 사이에 용케도 꽃이 만개하였다. 제주도의 4월 유채꽃밭에 뒤지지 않는 풍광이다.
ⓒ 박태상

관련사진보기

  
유명한 물레방아터에서 조금만 더 가면 '해바라기밭'이 나온다. 순간 소피아 로렌 주연의 <해바라기>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달리는 기차에 카메라를 얹어놓고 빠른 속도로 러시아의 대평원의 노란 해바라기를 비쳐주는 감독의 카메라 워크실력이 돗보이는 시네마다.

메밀꽃밭에 이어서 두 번째로 일행들을 해바라기꽃밭 옆으로 풀어놓았다. 해바라기는 '키다리 아저씨'처럼 키는 컸지만, 땡볕에 지쳤는지 고개를 숙이고 있다. 대학원생들이 해바라기 꽃을 손으로 잡아 세우고는 그 옆에서 단아한 포즈로 사진을 찍는다.
 
문학관 앞 둔덕에서 바라본 효석문화마을의 풍광은 어느 농촌풍경처럼 한가롭지만, 하얀 메밀꽃이 봉평면 전체에 흐드러지게 피어있어 느끼게 되는 감성이 새롭기만 하다.
▲ 이효석문학관 앞 전망대 문학관 앞 둔덕에서 바라본 효석문화마을의 풍광은 어느 농촌풍경처럼 한가롭지만, 하얀 메밀꽃이 봉평면 전체에 흐드러지게 피어있어 느끼게 되는 감성이 새롭기만 하다.
ⓒ 박태상

관련사진보기

 
이효석문학관과 생가 및 무덤은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입장료를 내고 고개 길을 올라가면 전망대가 나온다. 섶다리를 비롯해서 가산공원과 봉평면 메밀꽃밭이 파노라마처럼 한 눈에 들어 온다. 이효석문학관은 이효석의 전기적 생애를 먼저 소개한 후 효석의 작품들과 당시의 잡지들이 일목요연하게 진열되어 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효석의 창작공간이 당시의 증언에 맞춰서 재현되어 있다.
 
이효석은 평양 숭실학교 영문과 교수가 됨으로써 모처럼 가난에서 벗어나서 경제적 여유를 맞게 된다. 축음기로 클래식 음악의 정취에 빠져들고, 피아노 연주도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 이효석의 서재 이효석은 평양 숭실학교 영문과 교수가 됨으로써 모처럼 가난에서 벗어나서 경제적 여유를 맞게 된다. 축음기로 클래식 음악의 정취에 빠져들고, 피아노 연주도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 박태상

관련사진보기

   
이효석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말부터 30년대 초까지는 경향성과 어바니즘, 그리고 이국 취향의 양상을 보인다. 하지만 1933년작 '돈'이후부터는 '산', '들' 등에서 소위 에로티시즘 문학을 창작한다. 장편소설 <화분>(1939)에 와서는 성을 퇴폐적으로 그리면서도 동시에 성의 노예가 되는 인간의 내면을 악마적으로 묘사하며 그로테스크한 장면들을 연출한다.

이러한 이효석의 에로티시즘 문학에 대해 당대의 평론가 백철은 "생명의 동력"으로 파악했고, 김남천은 <화분>에 대해 "작중인물 전부의 사회성을 박탈함으로써 새로운 성모랄의 탄생을 시도"했다고 평가했다.
 
작가 효석이 서재 책상에 앉아 원고지에 집필하는 모습이 담겨있어 지성미가 물씬 풍겨나온다.
▲ 문학관 앞의 가산 동상 작가 효석이 서재 책상에 앉아 원고지에 집필하는 모습이 담겨있어 지성미가 물씬 풍겨나온다.
ⓒ 박태상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최근의 소장학자의 연구에서는 '돈', '개살구', 장편 <화분> 등에서 욕망이 타자와의 다양한 관계, (왜곡될수 있는) 기억,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관습 등과 같은 맥락들을 통해 구성되는 것임으로 보여주며, 성적인 관계가 이루어지는 장면의 대부분의 경우, '푸른집'과 같은 사적인 공간인 폐쇄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즉, 이효석이 그리는 욕망은 서사를 가득 채우는 다양한 사회적이고 인습적인 맥락들, 금기·퇴학·계급·이념과 같은 맥락들에 의해 구성되고 작동한다고 결론짓는다.
 
일부 생가에 남아있던 시인, 대학원생들과 함께 사진을 촬영했다. 모두들 문화탐방에 흡족했는지, 표정들이 해맑고 밝다.
▲ ‘이효석의 생가’ 앞에서 일부 생가에 남아있던 시인, 대학원생들과 함께 사진을 촬영했다. 모두들 문화탐방에 흡족했는지, 표정들이 해맑고 밝다.
ⓒ 박태상

관련사진보기

 
이효석문학관을 나오니, 태풍 15호 링링의 영향으로 약간의 빗방울이 떨어졌다. 잔디밭을 향해 또 다른 전망대 쪽으로 다가서면, 지성미를 갖춘 채 책상에 앉아서 창작하고 있는 '효석의 동상'이 방문객들을 환영한다. 

버스 쪽으로 내려가버리지 않은 절반쯤의 사람들을 모아 단체 사진을 찍고 생가로 내려왔다. 세 대의 버스에 분승해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모두들 화사한 얼굴로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메밀전병과 다양한 산채 나물, 된장국을 밑반찬으로 하여 삼겹살과 돼지갈비를 숫불에 구워 '식욕'이라는 또 다른 욕망을 채워나갔다. 참가자들은 이미 메밀꽃에 젖어 '자연성'을 흡입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불과 3780여 명의 주민이 사는 봉평면에 이효석문화제로 인해 일년에 약 2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한류를 비롯한 문화마인드가 중요하다.


태그:#아름다운 메밀꽃, #평창 이효석문화제, #평창군 봉평면, #이효석문학관
댓글1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