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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모습.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모습.
ⓒ 5.18기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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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8일 오전, 광주도 어느 해 못지않게 화창한 봄날이었다.

진록의 가로수는 더욱 싱싱하고 공기는 맑았다. 공수부대 저승사자들만 아니었으면 학생들은 캠퍼스에서 책을 읽거나 산책을, 또는 시국토론으로 청춘의 열정을 쏟았을 것이다.

 얼마나 명랑한가
 자연의 빛
 해는 반짝이고
 들은 웃는다.

 꽃과 꽃들
 가지에 피어나고
 무수한 노랫소리
 나무 그늘에 가득 찼다.

 용솟음 쳐 오르는
 기쁨, 이 환희
 오오 땀이여 태양이여
 행복이여 희망이여
 …….

 그대 명랑히 축복한다
 생명이 뛰는 들을 —
 꽃이 그득 핀
 충만된 5월을—
 얼마나 명랑한가.

- J. W. 괴테,

5월!
오월은 푸른 하늘만 우러러보아도 가슴이 울렁거리는 희망의 계절이다. 오월은 피어나는 장미꽃만 바라보아도 이성이 왈칵 그리워지는 사랑의 계절이기도 하다.

바다같이 넓고 푸른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구성진 홍어리 타령이 들려올 것만 같고 신록으로 성장한 대지에도 고요히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아득한 숲 속에서 아름다운 희망의 노래가 들려 올 듯도 싶다.

하늘에 환희가 넘치고 땅에는 푸른 정기가 새로운 오월! 오월에 부르는 노래는 그것이 아무리 슬픈 노래라도 사랑의 노래와 희망의 노래가 아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월에 꾸는 꿈은 그것이 아무리 고달픈 꿈이라도 사랑의 꿈이 아니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정비석, 「청춘산맥」.

5월은 두견을 울게 하고 꾀꼬리를 미치게 하는 재앙 달. 더러는 사람으로 하여금 과한 탈선도 하게 하지 않는가. - 김영랑, 「두견과 종다리」.

1961년 5ㆍ17쿠데타로부터 한국사회의 5월은 만물이 용솟음치는 생명의 계절을 빼앗기고, 죽임과 반역의 절기로 바뀌었다. 여기에 1980년 5ㆍ18 광주 학살이 덧칠되면서 더욱 고착화되었다.

5월 18일 오전 9시를 전후해 광주시내 요소요소에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 무렵, 전남대학교 정문앞엔 학생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은 "휴교령이 내리더라도 10시에 학교 앞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기억하고 사태추이를 알아보기 위해 평일이나 다름없이 등교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학교정문 앞에는 이미 공수특전단이 완전무장한 모습으로 학생들의 출입을 저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오늘은 학교에 들어갈 수 없으니 각자 집으로 돌아가라"고 종용했다. 학생들은 학교 문앞을 삼삼오오 서성이며 쉽사리 귀가하려 들지 않았다. 30여 분이 지나자 학생들의 숫자는 1백여 명으로 불어났다.

학생들은 동료들의 수가 불어나자, "점차 겁이 없어지고", 공수부대원들은 긴장된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책임자급으로 보이는 공수부대원이 직접 학교정문 다리 앞까지 나와서 메가폰으로 귀가를 종용했다.

그러나 50여 명의 학생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리난간에 걸터앉아 '정의가', '투사의 노래' 등을 합창하며 "계엄군 물러가라" "〇〇〇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10시를 전후해서 학생들의 숫자가 2~3백 명선으로 불어나자, 대치중이던 공수부대 책임자는 메가폰을 통해 "지금 즉시 해산하지 않으면 무력으로 해산시키겠다"고 위협적인 경고를 발했다. (주석 3)

 
 시민들과 대치중인 진압군
 시민들과 대치중인 진압군
ⓒ 5.18기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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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사의 최대 비극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계엄군 물러가라"고 외친 학생들도,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이 동원된 군인들도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었다.

학생들은 의분에서, 군인들은 명령에 따라 대치하게 되었다. 권력욕의 광기에 찬 전두환과 그 일당이 군인들에게 특수임무를 맡기면서 반동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〇〇〇 물러가라"의 '〇〇〇'은 전두환이다.


주석
3> 윤재걸, 『작전명령 - 화려한 휴가 - 광주민중항쟁의 기록』, 90~91쪽, 실천문학사, 1988,(이후 『화려한 휴가』 표기)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5ㆍ18광주혈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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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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