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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을 향한 반걸음> 표지
 <희망을 향한 반걸음> 표지
ⓒ 비타베아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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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식견
 
한반도 평화는 남북 양자 간에 잘 합의한다고 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라는 주변 강대국들이 서로의 역할을 톱니바퀴 맞물리듯이 잘 해줘야 간신히 만들어낼 수 있는 기적 같은 일이다. - 위의 책 7쪽
1971년 박정희 대통령과 맞붙었던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3단계 통일론'과 '4대국 안전보장론' 등 한반도 비전을 제시했다. … 우선 엄혹한 냉전시대에 그런 주장을 했던 용기는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1970년대는 세계적으로도 아직 냉전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이다. … 그런데 대통령 후보로 나선 사람이 북한과의 협상을 말하고 평화를 주장했다. 더욱이 외교안보 분야의 전문가들도 깜짝 놀랄 정도의 파격적인 발상을 던졌다. … 이때 던진 선견지명은 결국 평생을 따라다녔던 이념적 음해와 '색깔론'의 도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48년 전에 꺼내든 대선공약들은 어떻게 하면 한반도 평화가 이뤄질 수 있을지 예견했던 조감도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실제로 당시 주장들이 상당 부분 실현됐다. '한반도 주변 4대 강국들이 평화를 보증한다'라는 4대국 안전보장론은 나중에 남북이 포함된 '6자회담'이 됐다. - 위의 책 39~43쪽
보수 우익 진영에서는 6․15회담이 내놓은 성과에 대해 '퍼주기' 비방을 멈추지 않았다. … 하지만 남북경협사업들은 대부분 '상호성'에 입각한 것이었다. 가장 대표적 경협사업인 개성공단의 경우를 살펴보자. 우리가 세계 어느 지역에 간다고 해도, 당시 개성공단처럼 우수한 노동인력을 그렇게 낮은 임금을 주고 고용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개성공단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사업이 중단된 2016년에도 월 15만원 수준이었다.

이미 중국의 대도시 공장노동자 평균 임금이 70~90만원, 베트남 노동자 평균 임금이 20만원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해도 엄청나게 낮은 수준이다. 게다가 완벽하게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노동자의 숙련도나 생산성 증가 속도 역시 여타 지역과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 - 위의 책 53~55쪽 

그의 혜안
 
트럼프는 사업가다. 정치인처럼 생각하는 게 아니고, 모든 사안을 사업가의 관점에서 비즈니스 프로젝트처럼 생각한다. '이 비즈니스를 내가 시도해서 성공할 수 있을까', '몇 년 만에 얼마나 이익을 볼 수 있을까', 이런 걸 계산하는 사람이다. - 위의 책 90쪽
김정은 위원장은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과 통치 스타일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김정일 위원장은 어떤 지시를 해놓고도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관료들은 적당히 시간을 보내면서 지도자가 잊어버릴 시점을 기다리면, 얼마든지 자신에게 돌아올 책임을 회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은 본인이 먼저 지시를 했든, 혹은 밑에서 건의가 올라와 결정을 했든, 한번 얘기가 나온 일은 책임을 지게 만든다고 한다. … 중국 측에서도 김정은 위원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선대의 김정일 위원장보다 신중하며, 쉽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지만 통이 크고,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다.

현재 북한의 젊은 엘리트들 상당수는 6․15 정상회담 후에 양성하기 시작한 인력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6․15 이후 북한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서 그동안 교류가 없던 해외국가들과 수교를 할 수 있게 됐고, 해외유학이 활성화될 수 있었다. 덕분에 짧은 기간이었지만 심지어 미국 유학을 간 경우도 있었다. 그때의 유학생들이 돌아와 이제 김정은 정권의 '30대 실무집단'이 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북한을 옛날의 북한으로 보면 안 된다. - 위의 책 112~114쪽
 
 
 민화협 김홍걸 상임의장이 취임사를 말하고 있다.
 민화협 김홍걸 상임의장이 취임사를 말하고 있다.
ⓒ 허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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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생가외

나는 그의 신간 <희망을 향한 반걸음>을 택배 기사로부터 전달 받은 뒤 침대에 누워 여기까지 읽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책상에 정좌했다. 그때부터는 밑줄을 쳐가면서 읽기 시작했다. 그 순간 '후생가외(後生可畏)'란 말이 번쩍 떠올랐다.

이 말은 공자가 "후배들이 두렵나니 어떻게 장래 그들이 오늘날 우리만 못할 줄로 아는가?"라는 말씀으로, 후배나 후학들이 선배나 선생보다 더 똑똑하고 현명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인류문화와 역사를 지속적으로 발전케 하는 것이다.

교사 초임 시절, 학년말 교직원 연수회 때 철학자 안병욱 숭실대 교수님이 들려주신 말씀이다.

"사람으로 가장 보람 있는 일은 산에 나무를 심는 일과 사람을 교육하는 일입니다."

그때 그 말 탓인지 나는 줄곧 교단을 지키다가 교육 현장에서 물러났다. 이즈음 나는 나무로 치면 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조락(凋落)의 계절'이다. 지난 삶을 돌이켜보면 온통 후회스럽다. 하지만 그래도 33년 간 교사생활을 한 것 만은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1979년 3월, 김홍걸 학생은 고교 신입생으로 그때까지도 그는 어린 학생이었다. 10대의 그는 나이답지 않게 도무지 말이 없었다. 그 까닭 중의 하나는 별난 아버지를 두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때 그의 아버지 김대중은 유력 대권 주자의 한 사람으로 세상에 풍미했다. 하지만 그 이듬해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는 내란음모에 연루돼 사형수로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는 늘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그는 문학, 역사, 철학, 그리고 독서에 골똘한 문사철 학생이었다. 어느 날 그는 나에게 자기가 쓴 시 두 편을 슬며시 건네주었다. 그의 시에는 깊은 오뇌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때 사형수였던 그의 아버지는 대통령이 되었다. 그 무렵 나는 교단에서 물러난 뒤 강원도 산골에서 얼치기 농사꾼, 나무꾼으로 지내고 있었다.

그런 중 어느 날 어질고 과묵했던 그가 뜻밖에도 호사가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게 무척 안타까워 그에게 다음과 같은 요지의 편지를 썼다. 

"나는 자네가 이 땅의 시인으로나, 아니면 통일꾼으로, 남북을 오가면서 통일을 앞당기는 그런 일을 드러나지 않게 하거나, 현대사 특히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는 그런 학자로 이 나라, 이 겨레를 위해 봉사하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네."

그날부터 또 많은 세월이 지난 2017년 12월, 그가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가는 통일운동꾼으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 상임의장에 취임한다고 했다. 나는 그날 취임식장에 초대받은 바, 건배사로 "나라와 겨레를 위해 큰 통일꾼이 되라"는 말을 그에게 건넨 적이 있었다.

다시 그의 책속으로 들어가 본다.

평화통일로 가는 길
우리가 분명히 일아야 하는 건,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는 한반도 평화가 올 수 없다는 사실이다. 실체 인정은 쌍방적이다. 우리가 북을 인정해주는 일방적 행위가 아니라, 북도 우리의 체제를 인정해주고 적화통일을 포기한다는 공식적인 선언이 필요하다. 한쪽이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흡수하는 그런 통일은 없다는 선언을 해야 평화가 올 수 있다. …

'종전선언' 역시 마찬가지다.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지 않으면 전쟁을 끝낸다는 선언이 성립하기 어렵다. 6․25 이후 지속된 '내전'을 종식시키고 서로의 체제를 인정한 상태에서 다음 단계로 나가자는 게 종전선언이다. …

한반도 평화는 단순히 우리가 전쟁의 위협에서 해방된다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 민족이 세계적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는 것이다. 남북이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크게 발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 위의 책 134~137쪽    
 한반도 신경제지도
 한반도 신경제지도
ⓒ 김홍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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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신경제지도
 
한반도 신경제지도는 우리의 지정학적 한계를 극복하고 대륙과 해양으로 뻗어가는 인프라 기반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큰 틀에서 남북이 공유하고 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H라인의 왼쪽 축선인 '환서해 경제벨트'는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뻗어나간다. H라인의 오른쪽 축선인 '환동해 경제벨트'는 부산에서 금강산을 거쳐 나선까지 연결, 러시아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다. 에너지나 자원개발, 관광개발 등이 기본 목표가 될 것이다.

H라인의 허리역할을 하는 DMZ(비무장지대)는 '접경지역 평화벨트'가 된다. DMZ는 엄청난 자연의 보고로 이미 정평이 난 곳이다. - 위의 책 181~183쪽 
 
나는 그의 책 <희망을 향한 반걸음>을 여기까지 읽다가 '유레카!'을 외친 아르키메데스처럼 무릎을 치며 감동했다. 그새 그의 식견과 안목이 이렇게 넓고도 깊으며 크게 성장할 줄이야. 

'왕대밭에서 왕대난다'고 한다. 한 인물은 어느 날 하루아침에 불쑥 솟아나지 않는다. 오랜 인고와 내공의 시간을 거쳐 비로소 한 인물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의 저서에는 그런 인고와 내공의 피와 땀, 그리고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나는 앞으로 그가 우리 겨레의 숙원을 해결해 줄 통일꾼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하여 때가 되면 북의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서울, 평양, 판문점 등지에서 한반도 지도를 펼치고 평화통일의 큰 밑그림을 그릴 그런 날이 오리라 기대해 본다.

그리하여 양자는 선대가 마련해 놓은 6․15 선언 평화의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덮어 '평화통일의 집'을 준공하기를 나는 겨레의 한 사람으로 축원하고 기도한다. 아마도 이는 8천만 겨레의 염원일 것이다.

그의 단아하고 반듯한, 묵직한 마지막 말을 들으며 뿌듯한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이제 나는 민화협의 대표로서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한민족의 공존과 평화를 위해 반걸음 나아가려 한다. 비록 반걸음이지라도. 그 반걸음이 희망을 향한 커다란 발걸음이 되기를… .   - 위의 책 263쪽 '에필로그'에서


[관련기사]
홍걸군, 그 시절 자네는 문학청년이었지(http://bit.ly/1dMhyp)

김홍걸 의장, 명심하시게... 자네 아버지의 인내를(http://omn.kr/p5h9)

덧붙이는 글 | * <희망을 향한 반걸음> 출판기념회 *
일시 ; 2019년 10월 17일 오후 4시
장소; 연세대학교 공학원 대강당
문의; 02-761-1213 (민화협 사무처)


희망을 향한 반걸음 - 한민족의 공존과 한반도 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길

김홍걸 (지은이), 비타베아타(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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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