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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모습. 시내 주요 지역마다 공수부대 병력이 투입되어 시민들을 향한 무자비한 진압이 시작되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모습. 시내 주요 지역마다 공수부대 병력이 투입되어 시민들을 향한 무자비한 진압이 시작되었다
▲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모습. 시내 주요 지역마다 공수부대 병력이 투입되어 시민들을 향한 무자비한 진압이 시작되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모습. 시내 주요 지역마다 공수부대 병력이 투입되어 시민들을 향한 무자비한 진압이 시작되었다
ⓒ 5.18기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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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가 쿠데타 음모를 꾸미면서 가장 우려했던 지역은 서울과 전남 광주였다.

서울은 대학이 밀집되고 반유신저항운동의 진원지가 되고, 광주는 학생운동의 전통과 함께 반유신에 이어 10ㆍ26 이후에도 학생ㆍ노동자ㆍ농민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신군부는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5월 17일 24시) 이전에 이미 전국에 충정부대를 극비리에 급파하여 주요 대학을 점령토록 하였다. 특히 광주에는 충정부대에서도 정예라는 7공수여단을 투입했다.
 
5월 17일 24 : 00 현재 충정부대 대학점령 현황 (주석 8)


1공수여단 4개대대 연세대, 서강대, 홍익대
5공수여단 4개대대 고려대                                   
11공수여단 3개대대 동국대                                  
13공수여단 2개대대 성균관대                                
보병20사단 3개대대 국민대, 산업대, 경희대, 한양대, 외대
=> 수경사 사령부 작전통제하에 임무 수행

9공수여단 3개대대 서울대, 중앙대, 숭전대                
=> 수도군단 작전통제

3공수여단 5개대대 육군 중앙 기동 예비부대로 거여동 주둔          
=> 육군본부 작전통제      
                 
7공수여단 4개대대 광주〈전남대, 조선대〉, 전주(전북대), 대전(충남대) 
해병1사단 2개연대 대구(경북대), 부산(부산대, 경남대)   
=> 2군 사령부 작전통제

반란세력은 광주가 호락호락하게 신군부에 복속하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또한 그리되기를 기대(?)하면서 음모를 진행했다.

5ㆍ18반란사건에 대한 재판과정에서 전두환 등은 구차하게 변명하기를, 광주민주화운동은 시위와 진압이 예상외로 악화되어 발생한 것일 뿐, 미리 강경진압을 공모ㆍ계획한 일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재판과정을 통하여, 전두환 신군부는 5월초, 시국수습 방안을 모색할 당시부터 이미 국민들이 크게 반발, 저항할 것을 예상하고 이에 대비하여 '강력한 탄압'의 방법으로 시위진압을 하도록 평소에 훈련된 공수부대를 투입할 것을 계획하였고,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기 전에 미리 전국의 대학과 주요 보안목표에 계엄군을 투입하였음이 밝혀졌다.

17일 밤에 이미 특전사 7공수여단 소속 장교 94명, 사병 680명이 M16 소총 등을 휴대하고 전남대학교와 조선대학교를 점거, 당시 학교 잔류 학생들에 대한 구타행위를 자행하였다.

더구나 지역정서상 커다란 반발이 예상되는 김대중을 계엄확대와 동시에 체포한 것 등에 비추어볼 때, 이들은 처음부터 광주시민들의 저항이 있을 것을 충분히 예상하고, 계엄군의 조기투입과 강경진압을 획책하였음이 명백한 것이다. (주석 9)

  
내란음모 재판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군사재판때의 문익환, 김대중.
▲ 내란음모 재판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군사재판때의 문익환, 김대중.
ⓒ 사단법인 통일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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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는 광주의 저항을 내다보고 음모를 꾸몄다. 호남출신의 유망한 정치인 김대중을 17일 저녁에 전격 구속한 것도 화약고에 불을 던진 격이었다. 이 또한 사태를 키우려는 음모의 소산이다. 광주를 희생양으로 삼아 정권을 찬탈하려는 천인공노할 음모는 전두환과 5ㆍ17수뇌 그룹의 작품이다.

계엄령 선포 후, 세상은 쥐죽은듯 조용해졌지만 광주에서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었다. 신군부는 특전사 소속 7여단과 11여단 병력을 광주로 내려보냈다. 이른바 '충정훈련'으로 이미 '인간폭탄'이 돼 있는 병력이었다.

5월 17일 오후 광주 상무대 전투교육사령부에선 공수부대병력 1천여 명이 작전개시 준비를 마치고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전명령은 '화려한 휴가'였다. 그러나 그 '휴가'는 차마 필설로 다하기 힘든 '인간사냥'을 위한 것이었다. (주석 10)


주석
8> 육군본부, 「작전상황일지」, 요약.
9> 김정남, 「광주민주화운동의 전야:전두환 군부와 남도의 저항」, 『생활성서』, 2002년 10월호, 46쪽.
10> 강준만, 『한국현대사 산책 -1980년대 편 1권』, 120쪽, 인물과 사상, 2003.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5ㆍ18광주혈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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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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