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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검찰총장이 25일 오전 인천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열린 마약류퇴치국제협력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 이희훈 | 관련사진보기 |
"승진인사, 서울중앙지검 검사장 윤석열 현 대전고검 검사."
2017년 5월 19일 오전, 윤영찬 당시 국민소통수석이 발표를 마치자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실에서 "아"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윤석열, 그는 2013년 국가정보원 대선개입사건 수사로 좌천된 뒤 한직을 전전하다 국정농단 특별검사팀 수사팀장으로 복권한 인물이었다. 게다가 윤 지검장은 전임보다 다섯 기수보다 낮았다. 상명하복 문화가 강한 검찰에선 매우 이례적 인사였고, 그 자체가 파격이었다.
파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 6월 17일 문재인 대통령은 윤 지검장을 신임 검찰총장 후보로 지명했다. 1988년 검찰총장 임기제 실시 후 최초로 고검장을 거치지 않은, 또 다시 전임보다 다섯 기수 낮은 인사였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지명 이유로 "후보자는 국정농단과 적폐청산 수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검찰 내부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두터운 신망을 받아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약 3개월 만에 상황이 급변했다.
변심인가 악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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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의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
ⓒ 청와대 제공 | 관련사진보기 |
9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은 법무부 업무보고 후 윤석열 검찰총장을 콕 집어 '지시'했다.
"검찰총장에게도 지시합니다.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검찰 내부의 젊은 검사들, 여성 검사들, 형사부와 공판부 검사들 등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권력기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 제시해 주길 바랍니다."
문 대통령은 또 "모든 공권력은 국민 앞에 겸손해야 한다, 특히 권력기관일수록 더 강한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직접 검찰을 향해 목소리를 낸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27일 문 대통령은 조국 장관 관련 수사를 언급하며 "검찰이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고 전 검찰력을 기울이다시피 엄정하게 수사하고 있는 데도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현실에 검찰은 성찰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1차 경고였다. 다음날(28일) 서울시 서초구 대검찰청 일대는 검찰개혁을 외치는 시민들로 채워졌다.
그리고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한층 더 강경해졌다. 하루 전 윤석열 총장은 "검찰 개혁을 위한 국민의 뜻과 국회의 결정을 검찰은 충실히 받들고 그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고, 인사청문회에서부터 이러한 입장을 수 차례 명확히 밝혀왔고 변함이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완고한 태도를 보였다.
적폐청산 대 검찰개혁
'적폐 청산' 기조 아래 긴밀하게 협조해온 청와대와 검찰이었다. 그러나 '조국 대전'의 한가운데에서 둘은 계속 부딪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그 수위가 높아져간다.
한 관계자는 "국정농단, 사법농단 수사 등을 하면서 (정부가) 검찰 특수수사에 너무 (힘을) 몰아줘버렸다, (조국 장관 관련 수사가 진행 중인) 지금 그들의 힘을 빼려고 하니까 (상황이) 이상해졌다"며 답답해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아무리 경고해도 검찰은 꿈쩍 안 할 거다, (수사권과 기소권이라는) 엄청난 무기가 있기 때문"이라고 전망했다. 검찰을 제어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들이다.
하지만 그는 "검찰이 전투에선 이겨도, 전쟁에선 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지난 한 달 동안 70여 곳 이상 조 장관 관련 압수수색을 진행한 검찰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오마이뉴스>가 지난 24일 리얼미터에 의뢰한 여론조사에서 성인 501명 가운데 49.1%가 검찰의 조 장관 관련 수사가 '과도하다'고 응답했다(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p). 42.7%는 '적절하다'고 답했지만 여론이 검찰에게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모양새다(관련 기사 :
검찰의 '조국 가족' 수사, "과도하다" 49.1%>"적절하다" 42.7%).
제동장치 없어... 충돌만 거듭
그렇다고 검찰도 멈출 수 없다. 촛불집회 후에도 수사팀은 변함없이 조 장관 부인 정경심 동양대학교 교수의 조사를 준비 중이다. 사모펀드 문제로 얽힌 조 장관 5촌 조카 조범동씨 사전구속 만료가 10월 3일까지라 정 교수는 그 전에 검찰에 출석할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도 당장 묘수가 없다. 수사에 개입하는 것은 금기다. 두 번에 걸쳐 나온 대통령의 메시지도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30일 문 대통령 역시 이 점을 고려한 듯 조 장관의 검찰개혁안을 두고 "당장 추진하면 진행 중인 검찰 수사를 위축시킨다는 오해가 있을 수 있다, 장관과 관련된 수사가 종료되는 대로 내용을 확정하고 시행할 수 있도록 준비해달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 총장에게 임명장을 건네며 "민주적 통제를 받고 국민들을 주인으로 받드는 검찰이 돼달라"고 당부했다. 또 "여러모로 국민들 기대가 아주 높다, 저도 기대를 많이 한다"고 했다. 윤 총장은 "저희(검찰)는 본질에 더 충실하고, 헌법과 국민들을 생각하는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해나가겠다"고 화답했다.
두 달 전 함께 웃던 그들은 지금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청와대와 검찰, 검찰과 청와대의 연이은 충돌을 많은 이들이 불안, 초조, 긴장 상태로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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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현관 앞에서 취재진이 대기하고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의 부인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는 이번 주 초반 검찰에 출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2019.9.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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