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 포스터.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 포스터. ⓒ 씨네소파

 
도시 외곽의 공장에서 일하는 혜정(한해인)은 3명이 방 한 칸씩 사용하는 '홈 쉐어'를 한다. 어느날 민성(이승찬)에게 고백을 받지만 그는 연애나 결혼엔 관심이 없다. 일만 해도 피곤하고 혼자가 편하다.

10월 10일 잠에 들었다가 깨어 보니 유령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후 그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기 시작한다. 10월 11일이 되어야 하는데, 10월 9일이 되는 식이다. 그렇게 추석 당일인 10월 4일까지 역행한다.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에서 유령이 된 혜정의 시간은 하루하루 거꾸로 흘러, 밤의 문의 끝에서 마침내 효연(전소니)을 만난다.

유령이 된 그는 당황해 어쩔 줄을 몰라 하지만, 점점 거꾸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진실을 찾아간다. 자신이 유령이 된 이유, 즉 삶과 죽음 사이에서 헤매게 된 경위를 훑는다. 그에 얽혀 있는 사람들의 사연도 알게 된다. 그러면서 혜정은 자신의 삶을 반추하게 된다.

한편 혜정과 하우스 쉐어를 하는 사람은 지연(이자민)과 그 동생 효연이다. 효연도 혜정처럼 가난하지만, 효연은 혜정과 달리 욕망이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사채업자 광식(이근후)에게 많은 사채 빚을 졌다. 효연은 어느날 우연히 혜정에게 상당한 돈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런가 하면, 동네에 어슬렁거리며 아빠를 찾는 소녀 수양(감소현)도 극의 중요한 인물이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 아이는 폐가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어느날 사고를 당한다. 

미스터리 판타지 드라마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는 미스터리 판타지 드라마 장르를 표방한다. 생전에는 있는 듯 없는 듯 유령처럼 지냈던 혜정이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되고, 유령이 돼 자신과 효연과 수양의 일을 목격한다. 살아 있을 때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들에 유령이 되어 관심을 두게 되는 것이다. 

유령이 된 혜정이 거꾸로 시간을 거스르는 이유는 영화의 처음과 끝의 내레이션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내일이 없는 유령은 사라지지 않기 위해 왔던 길을 반대로 걷는다. 잠들어 있던 모든 어제의 밤을 지켜본 후에야 걸음을 멈출 수 있다. 멈춰선 끝에 유령은 문 하나를 만난다. 언제든 열 수 있었지만 열지 못했던 밤의 문을."

내일이 없는 유령, 생각해 보면 실제로 유령에게 내일은 없을 것이지만 영화 속 유령처럼 살아온 혜정에게도 내일이 없다. 그 끝에 다다른 유령이 만난 밤의 문은, 혜정에게 자기밖의 세상이다. 아무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았던 혜정이 관심을 두게 되는 세상. 

그 세상에는 살아생전 바로 옆에 있었고 조금만 관심을 두었다면 누군가를 죽이지 않아도 되었고 또 죽지 않았을지 모를 효연과 수양이 있다. 혜정은 각박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의 현실에서 벗어나 유령이 되어서야 비로소 인간다운 행동을 한다. 이 아이러니가 우리에게 던지는 바는 비인간화되어 가는 인간에의 안타까움이다. 혜정을 보고 있노라면 그 메시지는 확실히 전해진다. 

비안간화되어 가는 인간, 그리고 환경

영화는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변하게 하는 환경도 비춘다. 재개발 지역에 살면서 빚더미에 앉은 가족을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점도 짚는다. 효연은 잘못한 게 없다. '500만 원'이 없어서 사채를 썼고 오랫동안 갚지 못해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을 뿐이다. 

그런가 하면, 수양은 순수하고 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개체다. 세상 때가 묻지 않은 어린이들은 인간 아닌 동식물들의 말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영화에서 수양은 유령이 된 혜정의 이야기를 듣고 볼 수도 있다. 이는 한편 혜정이 살아생전 수양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지만 수양은 혜정의 말을 들어주는, 혼자가 아니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밤의 문이 열린다>는 미스터리 판타지 장르의 속성을 띄면서도, 먹먹한 여운이 오래토록 남는 드라마로도 손색이 없다. 

영화는 마지막 즈음 처음으로 돌아가 다르게 진행되는 혜정과 민성의 대화를 통해 궁극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들의 대화에서 피어난 조그마한 희망의 불씨를 살려 널리 퍼뜨릴 수 있으면 좋겠다.

한국 독립영화 소빅뱅 틈바구니에서

지난 8월 한국 독립영화들이 연이어 좋은 성적을 냈는데, 이 틈바구니에서 <밤의 문이 열린다>는 개봉했다. 지난해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장편 관객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유은정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작품에서 혜정과 효연의 두 주연 캐릭터를 맡은 한해인 배우와 전소니 배우가 눈길을 끈다. 

한해인은 데뷔한 지 얼마되지 않는 배우로 주로 단편영화에 출연하다가 이 영화를 계기로 장편에 진출했다. 안정적인 연기, 열정적인 출연으로 앞으로가 기대된다. 전소니는 메이저 영화 단역으로 출발해 메이저 영화 주연까지 꿰찬 배우이다. <아저씨> 이정범 감독의 <악질경찰>이 그 작품인데, 작년 독립영화계를 수놓은 작품인 <죄 많은 소녀> 주연으로도 얼굴을 비춘 적이 있는 전소니 배우의 인상적인 연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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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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