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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북산악연맹 비장애인 산악인과 추진복지재단 발달장애 청소년이 함께 걸으면서 만들어낸 땀내나는 이야기입니다. - 기자말

네팔로 떠나기 17일 전인 9월 21일, 출정식이 있었다. 이날도 우리는 새벽 5시에 만나서 모악산 9차 훈련을 하고 하산했다. 하산 후에는 리허설 및 행사 준비를 했다. 출정식은 오후 2시에 있었다.  

출정식은 군인이 싸움터에 나가기 전에 하는 건데 산에 가기 전에도 하나보다. 나에게는 '출정식'이라는 이름도 생소했지만, 단체에서 하는 일이다 보니 대외적인 형식도 중요한 것 같았다. 출정식에는 인왕, 동욱, 형규 부모님이 오셨고 추진복지재단 교사 다섯 분과 전라북도 산악연맹 상임고문 여러분이 참석했다.

'ㄷ'자 모양의 회의테이블이 있는 전라북도산악연맹 대회의실에서 출정식을 가졌다. 나는 마침 정중앙에 앉게 되어서 양쪽을 관망하는 것 같았다. 왼쪽에는 김성수회장과 연맹 고문들이 자리했고, 오른쪽 편에 인왕, 동욱, 형규와 부모님들이 있었다.
 
 원정대 대원과 인왕, 형규, 동욱 부모님, 추진 복지재단 선생님들 모두 실컷 울었습니다!
 원정대 대원과 인왕, 형규, 동욱 부모님, 추진 복지재단 선생님들 모두 실컷 울었습니다!
ⓒ 김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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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회장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출정식이 시작되었고 현 대장의 훈련보고, 조창신 대장의 원정 일정 보고가 이어졌다. 다음은 선배 산악인이라 할 수 있는 상임 고문들의 격려와 덕담을 듣는 시간이었다. 하나같이 좋은 이야기였지만 '장애인에게 나눔, 봉사를 실현하는' 부분이 거듭 반복되자 왠지 미안하고 불편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이 자리에 인왕이나 인왕 어머니 입장으로 참석했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들은 그동안 이런 자리를 몇 번을 경험했을까? 그래서 익숙할까? 장애인과 장애를 가진 부모라는 것이 자신의 전부인 양 바라보는 시선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진 않았을까? 지금 이 자리를 어떤 무게로 버티고 있는지, 과연 괜찮은 걸까?

인왕이 어머니가 말 할 순서가 되었다.

"20대 초반에 인왕이를 낳았어요. 나도 너무 어려서 애가 애를 키우는 것 같았어요. 학교를 보냈는데 왕따를 당하는 거예요. 학교로 달려가서 누구든 내 아들을 괴롭히는 사람과 싸웠어요. 사나운 엄마라고 소문이 났지만 상관없었어요. 사람들은 내 자식이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편해 했어요. 아무 피해도 주지 않는데도요. 내 아들도 배울 만큼 배웠지만, 사회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았어요. 그러다 2년 전, 추진복지재단에서 인왕이를 받아주었죠. 또 산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너무 좋아하고 밝아졌는데 이번에 이런 기회까지 생겨서 너무 감사합니다."

여기저기에서 눈물을 닦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복잡한 감정이었다. 저 얘기 속에 나오는 장애인은 내 짝꿍이다. 과일보다 고기를 좋아하고, 공기밥을 세 그릇씩 먹는 사람. 속눈썹이 길어서 아이라인 한 것 같은 눈을 가졌고, 귀가 큰 사람. 재미없는 농담을 들어도 상대가 무안할까 봐 큰 소리로 웃는 척하는 사람. 산행이 힘들어질 때, 동욱이 형과 형규형을 부르며 괜찮냐고 하는 사람. 정작 자신이 힘들어서 얼굴이 굳었는데도 끝까지 안 힘들다고 하는 사람이 인왕이다.
 
 형규가 아빠의 이야기 끝에, 사랑한다며 하트를 그리고 있다
 형규가 아빠의 이야기 끝에, 사랑한다며 하트를 그리고 있다
ⓒ 김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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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 사람을 안다. 그렇게도 괜찮다고 하는 건, 자신이 괜찮아야만 하는 사람 때문인지 모른다. 그 사람이 나 때문에 힘든 것이 싫으니까. 엄마가 우는 건 싫으니까. 인왕이가 그동안 보내왔을 시간, 그 속에 나의 무관심과 배타적인 시선도 있었기에 면목이 없었다. 인왕 어머니는 '하고 싶은 이야기'인지 '듣고 싶은 이야기'인지 모를 말을 쏟아냈다.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은 사람은 약하지 않았다. 

사회를 맡은 조창신 대장은 동욱 어머니를 소개하며 동욱이가 작년에는 엄마와 포옹도 안 했는데 지금은 엄마뿐 아니라 현 대장과 자신을 잘 안아준다는 말을 했다. 동욱 엄마가 말했다.

"어렸을 때, 동욱이가 밖에 나가서 아무나 안을까 봐 집에서도 못 안게 했어요."

그녀로 하여금 자식이 하는 애정 표현까지 막게 한 건 무엇이었을까? 타인의 차가운 시선 앞에서 약해진 그녀는 아들과 포옹조차 나눌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형규 아버지는 "먹고 사느라 아들한테 못해줘서 너무 미안하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형규는 책상에 엎드려 울었고, 동욱은 우는 모습을 안 보여주려고 화장실로 갔다. 인왕이는 엄마가 말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조용히 눈물을 떨궜다. 
 
 나(김준정 대원). 같은 부모로서 느끼는 죄책감, 미안함으로 눈물을 흘리다
 나(김준정 대원). 같은 부모로서 느끼는 죄책감, 미안함으로 눈물을 흘리다
ⓒ 김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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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우는 모습을 보고 있는 지금, 말은 더 이상 필요 없었다. 다른 쪽에 앉아 있는 우리지만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형규 아버지와 동욱 어머니가 긴 시간을 외로움과 싸우며 부모로서 지켜내야 했던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헛헛해졌다. 우리도 부모이기에 그들의 아픔이 전해졌다.

나는 남편과 별거를 하고 있는 상황을 딸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살다가 내 잘못이 아니어도 무언가 잃어버릴 수 있다는 걸 그냥 받아들여 주면 안 될까? 살면서 아픈 사람 보면 나만큼 아팠겠구나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면 좋겠다."

그 말이 떠올랐다. 아무 두서도 없이. 바람 부는 벌판에 혼자 서서 걸어나가야 하는 나와 내 손을 잡은 딸아이에게 나도 힘드니까 너는 네 발로 걸어나가라고 한 이야기였다.

아이를 생각하니 감정은 걷잡을 수 없었고, 급기야 나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나도 살아야겠는데 자식 없이는 살 수 없고, 자식이 아픈 게 죽기보다 싫은데 이런 결정을 하는 내가 너무 미웠던 순간.

멘토, 멘티라는 말도 싫고, 형식적인 것은 질색이었다. 하지만 이런 자리가 있어서 만나게 되었다. 그때의 나의 감정과 말이다. 인왕, 동욱, 형규 부모님들은 얼마나 많은 터널을 헤치고 여기까지 왔을까?

어쩌다 희망원정대 대원이 되었다. 열 번을 상상하는 것보다 한 번이라도 함께 경험하는 것이 낫다. 이해는 그만큼 어려운 것이니까. '출정식'을 준비한 김성수 회장에게도 고마운 마음이다. 우리가 떠나는 곳은 네팔보다 다른 세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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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좋아하다가 <연하산방>팟캐스트를 하게 되었고, 책을 좋아하다가 글이 쓰고 싶어졌습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