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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북산악연맹 비장애인 산악인과 추진복지재단 발달장애 청소년이 함께 걸으면서 만들어낸 땀내나는 이야기입니다. - 기자말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일을 18년간 해왔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 학생들 앞에서 틀릴까 봐 집은 물론이고 수업 직전까지 문제를 풀었다. 나의 어눌한 설명에도 알겠다고 하는 아이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따로 찾아와서 질문하는 학생들이 반가웠고, 까다로운 문제는 머리를 싸매고 같이 끙끙대며 풀었다.

그때는 뭔가가 가득 찬 보자기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빈 보자기를 들고 있다. 바늘 구멍 같은 작은 틈새로 조금씩 무엇인가가 새어나간 것 같은 기분. 억지로 짜내듯 하루하루를 살고 싶지 않았다. 잃어버린 걸 찾든 다른 걸로 채우든, 시간이 필요했다. 학원을 폐업하고 4개월째인 지금, 여전히 빈 손이다.
 
 인왕아. 내 손 잡아.(엄호섭 대원)
뒤는 내가 보고 있으니 걱정마(김준정 대원)
 인왕아. 내 손 잡아.(엄호섭 대원) 뒤는 내가 보고 있으니 걱정마(김준정 대원)
ⓒ 김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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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희망원정대' 6차 훈련은 내장산 종주다. 단풍놀이를 가는 내장산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내장산에는 8개의 봉이 말발굽 형태로 있는데 이것을 하나씩 넘는 것을 종주라고 한다.

최고봉은 신선봉(763m)이고, 오르락내리락하며 제대로 산을 타는 재미가 있을 거라고 현대장이 말했다. 지리산, 덕유산 종주를 일 년에도 몇 번씩 하는 나다. 1000고지도 안 되는 산의 종주가 얼마나 힘들랴 하는 생각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그때 봤어야 했다. 웃음 끝에 흘린 현대장의 불안의 눈빛을.

우리는 장군봉부터 서래봉까지 가는 방향이다. 처음에 장군봉과 연자봉을 오를 때만 해도 할 만했다. 얼마 안 가 오른 봉에서 탁 트인 조망을 보는 것도 좋았고, 산마루에서 맞는 바람에 온 몸 구석구석이 시원했다.

나는 살아있다. 그것도 이토록 아름다운 곳에서 말이다(좋은 건 여기까지다). 김미경 대원이 앞으로 갈 산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지만 나는 외면했다. 어차피 닥칠 고생인데, 미리 보고 싶지 않아서다. 하지만 흘끗 봐 버린 6개 봉은 신기루처럼 아득히 떨어져 있었다. 운무 때문일 거야. 불안한 마음을 다잡으며 신선봉으로 향했다.

신선봉에서 까치봉을 오를 때부터 느낌이 안 좋았다. 제일 높은 신선봉을 갔으면 이제는 능선을 타고 조망을 감상하며 갈 거라고 기대했다. 암벽등반을 왔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바윗길을 연신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했다.

발 디딜 곳을 찾으며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이 절벽만 지나면 편해지겠지'라는 생각을 했다가는 곧 두 배로 힘들어지기 때문에 모든 기대를 내려놓는 힘이 필요했다. 파우스트가 자기 안의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싸움을 벌이듯, 나도 편하기를 바라는 목소리와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한참 딴 생각에 빠져 대열을 이탈한 나를 인왕이가 부른다. "준정 누님 어디 갔지?" 스스로 대열 정비를 하고 나를 챙기는 인왕이다. 인왕이 뒤에서 나는 힘들다고 중얼거리면서 괜히 잘 가고 있는 인왕이한테 안 힘드냐고 묻기나 한다. 그러다 탄식 섞인 내 목소리가 안 들리면 인왕이가 뒤를 보고 챙기는 거다. 아무래도 내가 허당이라는 걸 들킨 것 같다. 나는 인왕이를 믿는다.
 
 서래봉가는 "빨간 계단"
 서래봉가는 "빨간 계단"
ⓒ 김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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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봉, 연지봉을 지나 망해봉 가는 길은 나의 기대를 하나씩 내려놓는 여정이었다. 이제 내 안의 목소리도 포기했는지 사라졌다. 불출봉 가는 길에 '빨간 계단'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이 계단은 코가 닿는 신기한 계단이다. 수직으로 세워져 있어서 걷다 보면 다리가 아픈 게 아니라 목이 아프다. 좁은 발판과 녹슨 철 계단은 옛 산악인들의 척박한 환경을 짐작하게 했다. 마치 시간여행자가 된 것 같다.

이제 서래봉만 남았다. 최대의 난코스를 앞두고 동욱이가 탈진 증세를 보였다. 눈이 풀린 동욱이에게 이온음료를 먹이는 현 대장에게 초조함이 느껴졌다. 체력의 극한이 왔을 때, 갑자기 돌변하는 아이들을 봐온 그다.

동욱의 이상기류를 감지한 현 대장은 동욱이가 마시는 모습도 섹시하다는 둥 내려가서 사이다를 쏘겠다는 둥 하면서 동욱이가 정신을 놓지 않도록 했다. 보이지 않는 끈이 동욱과 현 대장 사이에 있는 듯했다. 동욱이가 끈을 제발 놓지 않기를 바라는 현 대장이다. 산행 시작한 지 9시간이 넘은 상황에서 그라고 지치지 않을 리 없다.

하산하기 전 30분 동안 사고가 많이 난다고 한다. 다리도 풀린 데다 긴장을 놓기 쉽기 때문이다. 5분 가다가 쉬기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용우 작가, 미경 대원, 엄 감독, 영재 샘이 아이들 목에 손수건을 매만져주고, 신발끈을 확인해줬다. 옆에 내가 있으니 걱정 말라는 뜻이다. 완전히 방전되었다며 넋을 놓고 있다가도 그들을 보며 나도 정신을 차렸다. 인왕이 눈을 보고 지치지 않았는지 체크하고 뒤에서 인왕이가 헛디디지 않는지 보면서 가다 보니 벽련암에 도착했다.   

산행을 나온 오늘 하루만이라도 아이들의 부모들이 편했으면 좋겠다고 현 대장은 말했다. 그 부모들의 짐을 조금은 나눠진다는 생각에 기쁘다고 했다. 너무 무거운 건 혼자 짊어질 수 없다. 나 혼자였다면 10시간 동안 험한 암벽길을 끝까지 갈 수 있었을까? 포기하지 않기를 바랐다. 내가 아닌 우리가. 서로를 응원했다. 내 속에 무언가가 다시 채워지는 기분이다.
 
 그래도 (함께라서)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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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좋아하다가 <연하산방>팟캐스트를 하게 되었고, 책을 좋아하다가 글이 쓰고 싶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