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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족스러움이 그 손가락에, 귀에 걸린 입가에서 언뜻 보였다.
▲ 공간을 안내해 주는 이도선 센터장에게 노인 회원 하나가 엄지를 치켜든다.  만족스러움이 그 손가락에, 귀에 걸린 입가에서 언뜻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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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서울 사근동노인복지센터장실은 원래 자원봉사자 휴식공간으로 계획된 곳이었다. 센터장실은 직원들 사무공간으로 내주었다. 직원들 사무공간이 들어설 방은 옆 방과 텄다. 그곳에 만든 것이 '고고장'이었다. 그렇다. 남녀가 함께 디스코춤을 출 수 있는 넓은 공간. 고고장은 언제든 바깥에서 신고온 신발을 그대로 신고 들어가도 되도록 했다. 견고한 바닥을 깔아 누구든, 언제든 춤을 출 수 있도록 한 것. 물론 그 안에서 춤을 추는 건 '노인들'이다.

고고장 밖으로는 탁구장과 당구장이 있다. 당구장엔 '큐대를 창처럼' 세운 여자 어르신들이 남자 어르신들과 나란히 앉았다. 제 순서를 기다리는 노인들의 모습은 자연스럽고 편안한다. 그 반대편엔 탁구장이다. 세 개의 탁구대가 가득 찼다. 컴퓨터실이 들어설 계획이었던 복합강의실에선 악보수업이 한창이다. 우쿨렐레를 배우는 스무 분 가까운 노인들이다. 하모니카도 장구도 여기서 배운다. 할머니 예닐곱은 큰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담소중이다. 공간 곳곳에 노란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 젊은이들은 오히려 한가해보였다. 지난 9월 24일 사근동을 찾았다.
 
그가 있는 센터장실은 본래 자원봉사자 휴게실 자리였다. 자리를 내주고 그가 구상한 곳은 '콜라텍'. 노인들은 그곳 고고장서 '막춤'을 춘다.
▲ 이도선 사근동노인복시센터장 그가 있는 센터장실은 본래 자원봉사자 휴게실 자리였다. 자리를 내주고 그가 구상한 곳은 "콜라텍". 노인들은 그곳 고고장서 "막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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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에 사근동 주민센터 복합청사는 완공됐는데, 설계된 대로 만들어진 빈 공간이었어요. 거길 우리가 70%쯤 바꾸고 시작한 거예요. 흰 도화지에 새로 기획을 다 넣었던 거죠. 여기는 동국대행정대학원 졸업생들이 만든 (사)동행연우회가 성동구로부터 위탁을 받은 거예요.  여기 사근동은 원룸촌이 발달해 어르신도 적지, 교통도 외졌지, 마장동엔 노인종합복지관이 있어요. 그러니까 누가 오실까 걱정이 많았어요. 구조변경이 쉽지 않은데, 성동구청이 우리말을 귀를 기울여줬어요. 설득도 많이 했죠."

탁구장을 넣은 건, 노인들에게 전신운동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당구장은 색안경을 끼고 볼만도 한데, 사교를 하기에도 좋고 노인들에게도 무리 없는 운동이란 판단이었다. 칸이 막혀있던 방을 터서 햇살이 들어오는 넓은 공간을 마련했다. 컴퓨터실은 없앴다. 가까운 곳에서 컴퓨터를 배울 수 있으니까. 혹시 요구가 있으면 차로 모시려는 계획을 세운 뒤, 복합 강의가 가능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아마 우리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노인복지시설일 겁니다. 청춘클럽에 참여하신 후에는 일어나고 앉으실 때 '아이구' 소리가 없어요."
 
이곳 강당은 커튼을 치면 디스코텍, 콜라텍으로 변한다. 청춘클럽 회원들은 예술단을 운영하고, 가면무도회를 연다. 가수 강루희가 개장때부터 함께 해주었다.
▲ 청춘클럽 어르신 회원들이 연습을 하고 있다. 이곳 강당은 커튼을 치면 디스코텍, 콜라텍으로 변한다. 청춘클럽 회원들은 예술단을 운영하고, 가면무도회를 연다. 가수 강루희가 개장때부터 함께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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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선 사근노인복지센터장이 자부의 말을 건냈다. 그런 효과를 확인한 건 KBS의 생로병사팀. 지난 5월 이곳의 청춘클럽 가면무도회흘 영국 BBC 방송에서 취재해 갔고, 중국 베어비인터넷 방송서도 실시간 중계를 했다. 지금도 여러 자치 단체가 이곳으로 벤치마킹을 위한 견학을 온다. 노인들이 직접 예술단을 운영하고, 콜라텍을 여는 일은 쉽게 보기 힘든 광경일 것이다. 지하엔 목욕탕이, 지상4층 데이케어센터엔 찜질방도 있다. 

"노인복지 공간이 행사가 있을 때는 시끌벅적하고 반짝반짝 합니다. 그런데 행사가 끝나면 적막하고 썰렁해요. 어떻게 하면 늘 활기가 넘치고, 사람이 드나들게 할까 그걸 고민했어요. 그런데 처음 오픈하니까, 어르신들이 서로 다투세요. 공감하고 배려하는 부분이 안 되고. 해서 위층에 어르신들을 모시고 갔어요."

사근노인복지센터 위층엔 데이케어센터가 있다. 치매노인들을 위한 주간보호 시설. 그곳에서 이 센터장은 말했다.

"여기에 계신 분들 중엔 국제변호사도 있고, 재력가도 있다. 차상위계층도 물론 계신다. 그런데 이곳서 가장 소중한 게 무엇이겠는가? 바로 사람의 온기다. 사람 냄새를 맡으며, 서로 함께 하는 일이야 말로 행복한 삶이다."  

물론 그가 말만으로 설득한 것은 아니었다. 인간은 환경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 공간도 노인들에게 가장 안정을 줄 수 있는 곳으로 꾸미기 위해 노력했다. 데이케어센터 한 켠에는 옛날 물건들을 전시했다. 추억을 되씹으면 절로 행복한 기분이 된다. 치매 노인들은 최근을 쉽게 잊지만, 더 과거의 것에는 반응한다. 녹색식물로, 커다란 어항으로, 고풍스럽고 단아한 돌들이나 나무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는 이유다. 이 센터장도 집에서 보물을 가져오거나 폐목 등을 주워 환경개선에 보탰다. 

이 센터장은 동국대 박사과정에서 다문화를 공부했다. 어느 논문이든 춤의 효능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팔바지, 청바지 입고, 도끼빗 뒷주머니에 꽂고, 뽀마드 기름을 바르고, 춤을 배우는 데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맘껏 몸을 흔들 수 있다면 마음도 몸도 풀린다는 걸 그는 알았다. 콜라텍을 만들자고 제안한 이유였다.

 
초급부터 고급까지 과정이 있다. 여성 어르신들도 똑같이 당구를 친다. 사교를 하고, 적당한 운동을 하기에 그만이다. 벽면 대기회원 명단엔 길게 이름을 올려져있다.
▲ 사근동노인복지센터 안의 당구장 초급부터 고급까지 과정이 있다. 여성 어르신들도 똑같이 당구를 친다. 사교를 하고, 적당한 운동을 하기에 그만이다. 벽면 대기회원 명단엔 길게 이름을 올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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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센터장은 평생을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했다. 해외사정에도 이론에도 밝았다. 그가 본 유럽은 가족 단위로 버스킹을 할만큼 단단하게 예술이 생활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건 우리와는 다른 문화였다. 어릴 적에는 큰 돈을 들이고, 힘을 들여 피아노를 배우고 악기를 하면서도 나이가 들면 그 모든 걸 다 내려놓는 한국사회. 특히나 남자들은 술마시고, 축구하고, 산타는 거 말고는 예술문화 활동이 부족했다. 그게 인간관계의 단절을, 사회생활의 결핍을 가져온 것이다. 소통을 만드는 문화, 이를 가능하게 하는 예술. 이 모든 것이 가능한 환경. 그가 이곳 노인복지센터 안에 만들려고 했던 생태계다. 

"내가 늙은 다음을 생각하는 거죠! 우리가 좋은 본을 만들어두지 않으면, 우리가 활기없이 갇힌 수용자가 되는 거잖아요. 저녁놀처럼 아름답게 지는 것. 그게 내가 꾸는 꿈입니다."


 

태그:#사근동노인복지센터, #사근동, #이도선센터장, #데이케어센터, #노인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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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흙길을 걷는다. 글자 없는 책을 읽고, 모양 없는 형상을 보는 꿈을 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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