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애드 아스트라> 포스터.

영화 <애드 아스트라>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칸영화제 단골 손님 제임스 그레이 감독은 지난 2013년 <이민자>로 칸에 귀환했을 때, <씨네 21>과의 인터뷰에서 SF 영화를 구상하고 있다며 "우주에서 진행되는 매우 리얼한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말했다. (2013년 6월 11일 <씨네 21> "집단에 소속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애드 아스트라>는 그의 구상을 영화로 옮긴 결과다. 2013년 <그래비티> 이후 개봉한 SF 우주 영화들은 거시적이고 광활한 서사 대신 미시적이고 협소한 여정을 보여준다. <애드 아스트라> 역시 SF 우주 영화 장르의 현재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아버지 찾아 떠나는 머나먼 길

미군 소속 우주비행사 소령 로이 맥브라이드(브래드 피트 분)는 우주 안테나에서 작업을 수행하다 예측할 수 없는 이상 현상 때문에 지구로 추락해 죽다 살아난다. 우주사령부는 로이를 불러 1급 기밀사항을 전하며 임무를 맡긴다.

로이의 아버지 클리포드는 수십 년 전 지적 생명체를 찾는 '리마 프로젝트' 수행 차 해왕성으로 떠났다가 실종됐다. 우주 사령부는 그에게 "클리포드가 살아 있을지 모른다"며 "지구와 우주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 이상현상 '써지'가 클리포드의 실험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한다.

로이의 임무는 다음과 같다. 달을 거쳐 화성으로 가 해왕성에 있는 아버지와 교신하고,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낸다. 또 '써지' 현상을 배후에서 조종하지 않게 아버지를 설득해야 한다. 로이는 역사상 모든 우주비행사들 중 가장 멀리 향했던 위대한 클리포드 맥브라이드를 아버지로 두고, 당연히 그를 영웅으로 생각하며 우주비행사의 꿈을 이뤘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아버지를 찾고 싶은 것인지 여기를 벗어나고 싶은 것인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고 느낀다.

아버지와의 교신 중 개인 감정을 드러낸 로이는 미션에서 빠지게 되고, 망연자실 한다. 이후 화성의 책임자 중 한 명이 전해주는 리마 프로젝트와 클리포드에 관한 또 다른 1급 기밀사항을 전해들은 그는 해왕성으로 향한다. 해왕성행 로켓에서 뜻하지 않게 큰 문제에 봉착하지만, 아버지를 직접 대면해야 한다는 목표 하나로 홀로 머나먼 길을 떠난다. 로이는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까? 클리포드와 리마 프로젝트의 알려지지 않은 이면엔 어떤 게 도사리고 있을까? 우주는 써지에서 벗어나 위기를 타개할 수 있을까?

경이로운 일상으로의 초대
 
 영화 <애드 아스트라> 스틸 컷

영화 <애드 아스트라> 스틸 컷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영화 <애드 아스트라>는 우리를 경이로운 일상으로 초대한다. SF우주영화 하면 떠올릴 스펙터클하고 장엄한 우주서사가 아닌, 일상적이고 지루하다고 생각할 정도의 일상적인 우주를 보여준다. 근미래의 우리가 우주를 익숙하게 느끼는 모습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여 지금의 우리로선 경이롭기만 한 우주가 극중에서는 대수롭지 않다. 

로이의 직업 특성상 그리고 성격 특성상 더욱 그렇게 보일지 모르겠다. 그는 우주비행사로서 항상 심박수 80 이하의 차분함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인간과 문명을 향한 환멸의 자세를 취한다. 차분함을 유지해 비로소 벗어날 때 안도감을 느끼는 아이러니. 그의 눈에 비치는 우주적 일상이 곧 관객인 우리가 보게 되는 일상적 우주인 만큼, 환멸로 가득찬 황량한 그곳이 경이롭게만 보일 리 만무하다. 

다르게 말하면 제임스 그레이 감독이 6년 전 자신감을 비추고 바람을 한껏 고무시킨 '리얼한 우주'가 <애드 아스트라>를 통해 눈 앞에 나타난 것일 테다. 미래지향적 최첨단 계획도시 같은 우주가 아닌 지금 우리가 두 발 붙이고 사는 지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우주, 그게 바로 지금의 우린 경이롭지만 미래의 그들에겐 진짜 우주 모습이다. 

영화가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보여주는 건 아니다. 그런 모습을 보여줄 만큼 거시적이지 않고 정치적이지 않다. 영화는 로이라는 한 개인의 내면과 여정에 집중하고 있지만, 그를 둘러싼 외면은 그렇지 않다. 다만 로이의 여정에 필수불가격적으로 수반되는 죽음들에서 디스토피아적 미래의 단면을 목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면으로의 여정
 
 영화 <애드 아스트라> 스틸컷

영화 <애드 아스트라> 스틸컷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극중 로이의 내면과 여정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다. 제임스 그레이 감독은 로이가 임무를 맡아 지구에서 달로, 달에서 화성으로, 화성에서 해왕성으로 떠나는 여정을 로이가 내면의 심연으로 들어가는 여정과 동일시한 것으로 보인다. 그곳에 이성의 끈을 놓고 괴물이 되어버린 최고이자 최전방의 문명인이었던 우주비행사 과학자 아버지가 있다. 

로이 또한 아버지처럼 인간과 문명에 등을 돌려버린 채 살아온 지난 날이 존재한다. 그는 아버지를 만나며 그 실체에 도달하고 선택해야 한다. 아버지와 함께 과학이 알아내지 못한 것을 찾아 헤맬 것인가, 지구로 돌아와 현실에 두 발 붙이고 이전과는 다르게 살아갈 것인가. SF 우주 영화들의 대부분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처럼 이 영화 또한 그럴 가능성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영화에 담긴 철학적 명제와는 결이 상당히 다른 메시지를 전형적인 기승전결로 전달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한편 영화의 철학적 명제는 조지프 콘래드 소설 <어둠의 심연>과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영화 <지옥의 묵시록>이 떠오르는 게 자연스럽다. 서구 문명이 야만스럽다고 단정한 원시적 자연으로 향한 서구인과 그곳에 사는 원시인들의 모습이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준 작품들 말이다. 이 작품들이 서구문명과 제국주의 나아가 민족차별주의의 야만성을 고발하고자 했다면 <애드 아스트라>는 '문명'에 집중한다.

물론 <애드 아스트라>는 이러한 철학적인 내용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다. 스펙터클하곤 거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따분하지 않은 액션과 긴장감 조성하는 시퀀스가 꾸준히 이어진다. 브래드 피트 30여 년 연기 경력 최초의 SF라는 점은 그 자체로 흥미요소다. 진중하기만 한 그의 모습이 오랜만이다.

로이의 여정은 일방통행이지만 그의 여정을 다각도로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는 건 철학적이다 못해 문학적이다. <애드 아스트라>는 통찰력 충만한 '인문학' 영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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