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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빛이 하늘에 반사되는 아름다운 가을은 맥주의 계절이다. 냉장 시설이 발명되기 이전 유럽에서는 새로 만든 맥주를 보관할 통을 준비하기 위해 남은 맥주를 함께 모여 마셨고 갓 수확한 햇곡식으로 다음해 마실 맥주를 만들곤 했다. 특히 독일은 맥주축제라는 형태로 지역 공동체가 풍요로운 가을을 축복하고 아직 남아 있는 따스한 햇살을 함께 즐겼다. 마치 우리나라의 김장처럼 그들은 맥주축제를 기점으로 추운 겨울을 맞이했던 것이다. 
 
뮌헨 마리안 광장(platz)
▲ 뮌헨 마리안 광장 뮌헨 마리안 광장(platz)
ⓒ 윤한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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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의 나라인 독일에서 특별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지역은 바이에른(Bayern)주다. 사실 바이에른은 16세기까지만 해도 맥주품질이 안 좋은 지역이었다. 1516년 바이에른 공작인 빌헬름 4세(Wilhelm IV)에 의해 만들어진 '맥주순수령'은 질 낮은 맥주와 용량을 속이는 행위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17세기 초까지 바이에른 영주는 당시 훌륭한 맥주를 생산하던 니더작센(Niedersachsen)주의 아인벡(Einbeck)에서 맥주를 수입해서 먹곤 했다.

바이에른 주에서 좋은 맥주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빌헬름 5세(Wilheml V)부터였다. 바이에른의 다른 어떤 영주보다 맥주를 좋아했던 그는 아인벡에서 맥주를 더 이상 수입하지 않고 좋은 품질의 맥주를 직접 양조하기로 결심한다. 1589년 뮌헨(München)에 호프브로이하우스(Hofbräuhaus)를 건설한 후, 아인벡에서 스카우트 한 최고의 브루어를 통해 품질을 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주정부가 직접 맥주산업에 투자를 한 셈이다. 

그의 아들 막시밀리언 I세(Maximilian I) 또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맥주를 좋아했다. 호프브로이하우스에서 독점 생산한 밀맥주(Weissbier)를 판매한 수익금으로 30년 전쟁을 버텼으며 이후 신성로마제국의 선제후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뮌헨은 맥주순수령(Reinheitsgebot)을 공포한 빌헬름 4세와 그의 자손들인 빌헬름 5세와 막시밀리언 1세를 기점으로 독일 맥주의 중심으로 떠오른다. 이후 19세기 2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라거 맥주의 급성장은 뮌헨을 독일 맥주를 대표하는 자부심으로 만들었다.

수많은 맥줏집과 소규모 맥주 양조장이 있는 뮌헨. 본격적인 겨울이 오기 전, 늦가을 햇살과 맥주를 즐길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진정한 맥주문화를 즐길 수 있는 뮌헨에서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을 소개한다. 

호프브로이하우스 암 플라츨(Hofbräuhaus am Platzl)
Platzl 9, 80331 München, 독일
 
호프브로이하우스 정문
▲ 호프브로이하우스 암 플라츨 호프브로이하우스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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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뮌헨 주정부의 소유인 호프브로이하우스는 한때 한국 대학가 앞에 있는 맥줏집의 단골 이름이었다. 뮌헨의 중심인 마리안 광장을 얼마 안 지나 볼 수 있는 호프브로이하우스는 관광객들에게 한 번은 가봐야 할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1589년 영주인 빌헬름 5세에 의해 세워진 것을 상징하듯 왕관이 그려진 로고가 붙어 있는 아치형 입구가 우리를 맞이한다. 들어가면 이미 전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이 길고 넓은 테이블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을 것이다.
 
호프브로이하우스 내부
▲ 호프브로이하우스  호프브로이하우스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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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서 마셔야 할 맥주는 고민할 것도 없이 헬레스(Helles)다. 손잡이가 달린 1리터 용량(mass)의 유리잔에 담겨 나오는 이 황금색의 라거(lager)는 없던 갈증도 만든다. 살짝 단맛, 낮은 쓴맛 그리고 노블홉(noble hop)의 건초와 같은 향이 나는 이 청량한 맥주는 우리의 갈증을 말끔하게 사라지게 할 것이다.

이 곳에서 배를 채울 필요는 없다. 굵은 소금이 박혀 있는 프레츨 하나면 된다. 이미 관광지가 된 이 곳에서 오랜 시간을 머물지 않아도 좋다. 뮌헨 맥주의 중심이라는 역사적 의미만 살짝 베어물고 자리를 일어나자. 만약 호프브로이하우스의 오랜 팬이라면 팬숍에서 작은 맥주잔 정도는 구매해도 좋다.

아잉거 암 플라츨(Ayinger am Platzl)
Platzl 1A, 80331 München, 독일
 
뮌헨 아잉거
▲ 아잉거 암 플라츨 뮌헨 아잉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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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으로 북적이는 호프브로이하우스를 나오면 정면에 상대적으로 소박하게 보이는 입구를 볼 수 있다. 바로 아잉거(Ayinger)이다. 1877년 뮌헨에서 약 25km 떨어진 아잉(Aying)에서 시작된 이 브루어리는 멋진 도펠복(doppelbock)인 셀레브레이터(Celebrator)를 만들고 있는 곳이다.

아잉거 암 플라츨은 시끌벅적한 호프브로이하우스에서 살짝 나간 정신을 돌려놓기에 아주 적당한 곳이다. 독일 전통적인 인테리어와 어우러진 4인용 테이블뿐만 아니라 원하면 혼자 앉아서 맥주를 즐길 수 있는 작은 테이블도 마련되어 있다. 혼자 책을 보거나 친구들끼리 소소하게 둘러앉아 아잉거의 다양한 맥주와 음식을 즐기는 현지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아잉거 맥주들
▲ 아잉거 맥주 아잉거 맥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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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서는 아잉거 '켈러비어'(Kellerbier)를 강력 추천한다. 켈러비어는 지하 셀러(keller)에서 필터팅없이 만든 독일 전통 라거로 고풍스런 도자기 잔으로 마실 수 있다. 특히 이 곳의 슈니첼은 켈러비어와 최고의 궁합을 선사할 것이다. 켈러비어가 부족하다면 도수가 높은 라거인 도펠복을 주문해 보자. 건자두, 옅은 캬라멜 향과 스멀스멀 올라오는 알코올의 온기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다른 곳에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기운을 북돋아 줄 것이다. 맥주 천국인 뮌헨에서 아직 가볼 곳은 많다. 라거를 마셨으니 이제 뮌헨의 자랑 바이스비어(weissbier), 밀맥주를 마시러 갈 시간이다.

슈나이더바이세 브로이하우스(Schneider weisse bräuhaus)
Tal 7, 80331 München, 독일
 
뮌헨 슈나이더바이세 브로이하우스 외관
▲ 슈나이더바이세 브로이하우스 뮌헨 슈나이더바이세 브로이하우스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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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까지만 해도 뮌헨 전통 밀맥주인 바이스비어(weissbier)는 바이에른 공국에서 양조 독점권을 가지고 있었다. 16세기 알브레이트 4세가 데겐베르그 가문이 가지고 있던 밀맥주 독점권을 되찾은 후 그 아들인 빌헬름 5세와 손자 막시밀리언 I세는 밀맥주를 독점적으로 생산, 판매하여 30년 전쟁을 버텼다. 이런 밀맥주의 힘으로 바이에른은 신성로마제국의 새로운 강자로 발돋움하게 된다.

하지만 19세기 라거의 열풍 속에 밀맥주의 인기는 추락했고 거의 사라질 뻔 했다. 아무도 밀맥주를 양조하지 않으려던 1872년, 게오르그 슈나이더는 슈나이더 바이세를 설립하고 밀맥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슈나이더 바이세는 현대적인 바이스비어의 계보를 시작한 브루어리라고 할 수 있다. 마리안 광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슈나이더 바이세 브로이하우스는 최고의 바이스비어를 마실 수 있는 멋진 장소이다.
 
슈나이더바이세 맥주와 음식
▲ 슈나이더바이세 맥주 슈나이더바이세 맥주와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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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전통적인 테이블 장식이 있는 곳에 앉아 우선 오리지널 밀맥주인 마인 오리지널 탭7(Mein Original Tap 7)으로 시작해보자. 짙고 불투명한 황금컬러와 잔을 넘칠 듯이 풍성한 거품은 향긋한 바나나향과 함께 바이에른 밀맥주의 정수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 곳에서 반드시 마셔봐야 할 맥주는 따로 있다. 바이젠복(weizenbock)인 운저 아벤티누스 탭6(Unser Aventinus Tap6)이다. 8.2%의 알코올을 가지고 있는 이 강력한 밀맥주는 건자두, 블랙베리, 블루베리 그리고 효모에서 나오는 옅은 수지(resin)와 같은 향을 가지고 있으며 묵직한 바디감과 함께 온 몸에 새로운 온기를 불어넣어 준다.

이 맥주와 먹어야 할 음식은 두말할 나위 없이 탭6를 이용한 소스로 만든 요리이다. 소스가 밴 육질과 함께 마시는 탭6는 최고의 궁합을 보여준다. 여행으로 지쳐 있는 몸과 마음이 이 곳에서 회복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직 지치기에는 이르다. 저멀리 애타게 우리를 기다리는 맥주가 아직 남아 있다. 이제 맥주와 음식을 어느 정도 먹었으니 조금 걸어보자.

파울라너 브로이하우스(Paulaner bräuhaus)
Kapuzinerpl. 5, 80337 München, 독일
 
파울라너 브로이하우스 외관
▲ 파울라너 브로이하우스 파울라너 브로이하우스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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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라너는 마리안 광장 주위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로고이다. 하지만 광장 근처에 있는 파울라너 로고에 현혹되지 말자. 우리는 남쪽으로 간다. 마리안 광장에서 약 25분 정도 카푸치노플라츠(Kapuziner platz)로 걸어가면 북적북적함과는 거리가 먼 한적한 주택가를 볼 수 있다.

만약 걷기 싫다면 U-Bahn을 타고 괴테플라츠(Goethe platz) 역에서 내리면 된다. 멀지 않은 큰 사거리에 웅장하게 서 있는 건물 하나가 여러분을 맞이할 것이다. 바로 소규모로 양조되는 파울라너 맥주를 마실 수 있는 파울라너 브로이하우스다. 이 곳은 뮌헨의 맥줏집과는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파울라너 브로이하우스 내부 양조장
▲ 파울라너 브로이하우스 내부 파울라너 브로이하우스 내부 양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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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년 시작된 파울라너의 시그니처 맥주를 마실 수도 있지만, 그보다 이 곳에서 실험적으로 만드는 파울라너 IPA를 추천한다. 공식적인 라인업이 아닌 파울라너 IPA는 항상 마실 수 있는 맥주는 아니다. 만약 이 곳을 방문했을 때 IPA가 보인다면 당신은 행운아인 셈이다. 브라트우어스트(bratwrust)는 반드시 먹어봐야 할 요리. 호밀 빵과 파울라너가 들어간 소시지 그리고 발효한 양배추로 만든 사우어크라우트는 맥주와 환상적인 궁합을 이룬다. 다른 맥주를 마시기 위해 이 곳을 떠나는 것이 아쉽다면 맥주를 테이크아웃할 수 있는 그라울러가 준비되어 있다. 황금빛 당화조 앞에 있는 그라울러로 이 곳에서만 마실 수 있는 맥주를 포장해서 가자. 물론 출국하기 전에 다 마셔야 한다는 조건이 있긴 하지만. 

아우구스티너 브로이스투벤(Augustiner Bräustuben)
Landsberger Str. 19, 80339 München, 독일
 
아우구스티너 내부
▲ 아우구스티너  아우구스티너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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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8년 시작된 기원을 갖고 있는 아우구스티너는 뮌헨의 가장 오래된 가족 양조장이다. 뮌헨에 왔으면 반드시 마셔봐야 할 맥주로 시내 중심에만 2군데의 아우구스티너 펍이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아우구스티너 맥주를 마시기 위해서는 마리안 광장을 벗어나 뮌헨 중앙역 반대로 가야 한다.

뮌헨 중앙역에서 약 25분 정도 걸어 아주 한적한 비탈길로 들어서면 유유히 빛을 내고 있는 아우구스티너 로고를 볼 수 있다. 이 곳은 아우구스티너 뮌헨 양조장이 있는 곳으로 비어홀을 운영하고 있다. 앞서 다양한 맥주를 마셔봤으니 조금 다른 맥주로 마무리하는 것은 어떨까?
 
에델스토프 라거
▲ 에델스토프 라거 에델스토프 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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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델스토프(edelstoff)는 아우구스티너 맥주 중 프리미엄 맥주로 헬레스보다 조금 더 단맛이 있고 알코올이 높다. 에델스토프와 함께 먹어야 할 음식은 다름 아닌 슈바인학세. 앞서 많이 먹어서 배가 부르다고? 이런 분들을 위해 여기서는 1/2 크기의 슈바인학세를 판매하고 있다.

눈 앞에 있는 슈바인학세를 보면 없었던 식욕이 살아나고 꽉 차 있던 위도 어느덧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슈바인학세의 조금 기름지고 퍽퍽한 육질은 에델스토프로 인해 부드럽게 녹아내린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맥주의 기적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다. 

캄바 탭하우스(Camba Tap-House)
Rosenheimer Str. 108, 81669 München, 독일
 
탭하우스 내부
▲ 캄바 탭하우스 탭하우스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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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은 맥주의 전통을 대표하는 곳이지만, 새로운 맥주 트렌드 역시 품고 있다. 전통적인 맥주들이 즐비한 뮌헨에서 크래프트 맥주를 즐기는 경험은 색다른 기분을 선사한다. 뮌헨 중앙역에서 U-bahn을 타고 오스트반호프(Ostbahnhof)에서 내리면 대표적인 독일 크래프트 브루어리인 캄바(Camba)가 운영하는 탭하우스에 갈 수 있다. 이제 배도 부르니 음식은 필요없다. 유럽의 다양한 크래프트 맥주 한 잔이면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도 준비되어 있다.
 
탭하우스 내부
▲ 뮌헨 탭하우스 탭하우스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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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이 곳에서 현지 맥주사랑꾼들(beee lovers)과 만나는 경험은 뮌헨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꿔놓을 것이다. 마지막은 알코올 도수가 꽤 높은 캄바 임페리얼 스타우트(Camba Imperial stout)로 마무리할 것을 추천한다. 다크 초콜릿, 옅은 바닐라의 풍미와 묵직한 바디감은 하루를 행복하게 만드는 디저트와 같다. 

뮌헨의 문화와 자부심, 맥주

맥주의 도시 뮌헨은 독일을 대표하는 문화의 중심지이다. 맥주는 뮌헨이라는 도시가 켜켜이 유지하고 지켜가고 있는 문화의 흔적이다. 수많은 관광객들은 이 흔적을 경험하고 즐기기 위해 이 곳에 온다. 뮌헨에서 맥주는 단순한 술이 아니다. 맥주는 그들의 자랑이며 자부심이다.

10월 가을 하늘 아래서 마시는 한 잔의 맥주는 그들의 정신과 문화를 경험하는 것이다. 다양한 역사를 갖고 있는 맥주 집을 경험하는 것은 마치 우리나라의 노포를 경험하는 즐거움과 같다. 독일의 겨울은 혹독하다. 오래 전 독일인들이 겨울을 맞이 하기 전, 맥주를 마시며 가을을 즐긴 것처럼 우리도 맥주와 함께 이 순간을 즐겨보면 어떨까? 아름다운 계절이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

덧붙이는 글 | (사)한국맥주문화협회 홈페이지에 중복게재됩니다.


태그:#독일, #뮌헨, #맥주, #맥줏집, #독일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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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정동에서 작은 맥주 양조장을 운영하며 맥주를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맥주가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신념 아래 (사)한국맥주문화협회를 만들어 '맥주는 문화'라는 명제를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beergle@naver.com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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