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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작가회의에서는 '2019 대전방문의 해'를 기념하여 연속기고를 시작합니다. 대전의 볼거리와 즐길거리, 추억담을 독자들과 나누고 대전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편집자말]
이러면
안 되는데
- 김상배 '낮술' 전문


아주 짧은, 심지어 일본의 하이쿠보다 더 짧은 시, '낮술'로 유명한 김상배 시인은 내 친구다. 엄격하게 따지면, 처음에는 애들 엄마의 친구였다. 그러다가 내 친구가 됐다. 이런 경우가 또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아직까지 내 친구로 친하게 잘 지내고 있다.

얼마나 친하게 지냈느냐 하면, 평생 김상배가 살았던 집을 거의 다 가봤다. 대부분 애들 엄마와 함께 갔지만 나 혼자서도 갔다. 상배의 고향 대구에 있는 집부터 시작해서, 상배의 신혼집이 있던 당진 신평, 그리고 최근에 잤던 세종의 아파트까지. 신평 신혼집에서 잘 때는 상배 부인이 시집올 때 해온 이불에 오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15년 전 강희철이 죽었다는 소식도 계룡 살던 상배네 집에서 자고 일어나서 들었다. 젊은 시절 난 상배에게 이런 시를 쓰기도 했다.

우리가 얘기했던 문학을, 우리가 취한 모습으로 격렬하게 다투었던 시를 나는 너만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덕숭산 바람 소리에도 나는 시를 쓸 수 있고, 너의 모습 다 떠나 버리고 최후의 무엇만이 남은 것처럼 보여 연민의 마음 갖게 하는 네 취한 모습으로도 시를 쓸 수 있다. 덕숭산 골짜기에서 바람이 내려온다. 길을 따라 덕숭산 여승방으로 바람이 올라간다. 여인숙 쪽마루에 누워 내 온 몸뚱어리로 받던 아, 좋은 햇살 그것으로도 시를 쓸 수 있다. 이 세상 시 아닌 것 무엇이냐. 덕숭산 막걸리에 취하여 넌 비틀거리고 배부른 네 아내 부축받으며 내려오는 신새벽으로도 시를 쓸 수 있다. 나는 아직까지 그 무엇으로도 시를 쓸 수 있으므로 하여 나는 너만큼 시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 졸시 '덕숭산 바람 소리 – 상배에게', 중에서


왜 이런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느냐 하면 애들 엄마와 상배를 비롯한 친구들이 다녔던 대전의 대학이 생각나서였다. 나는 그들이 모여 대학 얘기를 할 때마다 약간의 소외감을 느꼈는데 그래서 아예 나도 그 대학에 다니기로 결심했다.

그때는 이미 대천에서 선생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이 다녔던 대학을 다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방학 때만 다녀도 되는 계절제 교육대학원에 입학하는 일이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비로소 친구들이 말하는 대학교수들이나 교내의 특정한 장소, 또는 대전 시내의 이곳저곳 술집과 음식점에 대해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비록 방학 때뿐이기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나도 대전에서 몇 년은 살았던 셈이다.

1990년쯤에 만들어진 둔산도 이미 신도시라 부르기 민망하고, 노은에 도안까지 대전의 경계가 넓어졌지만 40년 전에는 대전하면, 대전역을 중심으로 해서 도청까지 뻗은 길을 대전 시내라 불렀다.

거기에는 성심당을 비롯한 온갖 빵집과 두부두루치기를 잘하는 술집, 칼국수를 잘하는 식당, 그리고 다방들이 모여 있었다. 지금이야 당연히 없어졌겠지만, 지하에 있던 '영상'이라는 다방, 엘피판이 벽 가득 꽂혀 있었던 게 생각나고, 고전음악을 틀어주던 '브람스'인가 하는, 그 당시로서는 초현대식 커피숍도 생각난다. 목척교인가 자다리인가 하는 찻집에 가서는 다음과 같은 시를 쓰기도 했다.

비 오는 날이었다.
찻집 뿌연 창 건너로
사람들이 우산을 받고
바쁘게 걸어간다.
찻집 뿌연 창 너머로
마음처럼 가늘게 비가 뿌리고
내키지 않는 커피
냄새 맡으며
가슴 벅차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한,
어렵게 만나
어렵게 사랑하려 하는데
어처구니없게도,
설령 통속적으로
그것이 우리의 세월이라면,
나는 하나도 짜증나지 않는다.
우울한 목척교 찻집에서.
- 졸시, '자다리 찻집에서' 중에서


대전은 대천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대도시였다.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지만 80년대 말만 해도 대천은 학력고사 시험장이 아니었다. 학력고사를 보려면 전세버스를 빌려 대전까지 가야 했다. 아이들은 여관에서 일박을 한 후 다음날 시험을 봐야 했다. 그날은 함께 근무하다가 대전으로 떠난 선생들이 모두 여관으로 모이는 날이었다. 학생들이 대학시험을 보러 대전에 온 건지, 오랜만에 만나는 선생들의 만남의 축제인지 모를, 아주 기이하고도 이상하고도 애매한 풍경들이었다.

대전은 내게 인천 가기 전에 들렀다 가는 곳이기도 했다. 결혼 전, 대천에서 함께 근무하던 우리는 주말이면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애들 엄마는 대전으로, 나는 인천으로 가야 했는데, 나는 일부러 대전으로 빙 돌아서 갔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짓이었지만, 이해가 전혀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대전은 대전이 아니라 애들 엄마가 사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마음속에 두고 있는 이와 함께 있는 시간을 연장할 수 있는 일이라면 대전 아니라 부산이라도 들렀다가 갔을 것이다.

대전의 처가는 용두동에 있는 소위 '이층 양옥'이었는데, 지금은 재개발로 없어진 호수돈여고 맞은편 동네다. 약간 언덕에 있던 이층집이라 서대전사거리까지 내려다보이기도 했다. 해 질 무렵, 노을 물든 2층 거실에 앉아 내려다보는 서대전사거리 풍경은 제법 볼만했다. 해직교사 시절 장인이 그 집에서 돌아가셨고, 집에서 상을 치렀다. 90년 초반만 해도 상을 집에서 치렀다. 장모님은 서대전 사거리, 충대 병원 맞은편에 있는 아파트에 살다가 돌아가셨다. 두 분 모두 돌아가시니 이제 대전에 갈 일이 많지 않다. 시집 안 간 처제가 혼자 살고 있는 도안 신도시에만 가끔씩 간다.

이제 내게 대전은 모두 지나간 것들뿐이다. 지금도 가끔 대전에 내려가지만, 도안에서는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어느 비 내리는 날 홀로 영등포역에서, KTX 말고, 무궁화호를 천천히 흔들리며 타고 가서, 대전역에 내리고 싶다. 대전역에 내려 도청까지 한번 천천히 걸어보고 싶다.

1953년에 형성됐다는 중부권 최대 전통시장, 중앙시장 골목으로 들어가 개천식당에 가서 두부두루치기를 안주로 대전 막걸리 한잔 하고 싶다. 아니면 태화장이나 중국성에 들어가 잡채를 안주로 고량주를 한잔 하고 싶다. 아니면 광천식당, 진로집도 좋겠다. 지나간 것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만. 나의 청춘을 포함하여…….
 
 대전중앙시장
 대전중앙시장
ⓒ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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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수
1985년 《시와의식》 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서산 가는 길』, 『처음처럼』, 『이미혜』, 『군자산의 약속』, 『시간은 사랑이 지나가게 만든다더니』, 『인천에 살기 위하여』, 『천국의 하루』, 시전집으로 『신현수 시집(1985-2004)』 (상,하), 시선집으로 『나는 좌파가 아니다』 등이 있으며, 저서로 『선생님과 함께 읽는 한용운』, 『시로 만나는 한국현대사』, 『시로 쓰는 한국근대사. 1』, 『시로 쓰는 한국근대사. 2』 등이 있다. 현재 (사)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 (사)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 라오스 방갈로초등학교를 돕는 모임 명예대표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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