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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무척 좋아하는 제자가 있다. 이 학생은 시험기간이 되면 읽던 책을 친구에게 맡겨두고 시험이 끝나기 전까지는 절대로 돌려받지 않기로 맹세한단다. 그러니까 이 학생에게는 이런 식의 강제적인 자기 구속을 하지 않으면 너무 재미나서 읽고 싶은 마음을 참기 어려운 책이 있다는 것이다. 합법적인 칼잡이 즉 셰프인 유재덕 선생의 <독서 주방>이 내게는 그런 책이다. 몇 년 전부터 신문 칼럼으로 연재된 유재덕 선생의 글을 일부러 읽지 않았더랬다. 

요리사는 어떻게 글을 쓰는지, 음식을 어떻게 글로 녹이는 궁금했지만 참았다. 이게 나만의 특기인지는 모르겠는데 지면이든 모니터이든 내가 인식하고 싶지 않은 정보는 눈에 보이지만 뇌로는 인식되지 않게 하는 재주가 있다. 항상 칼럼 제목과 필자 사진만 보고 지나쳤다. 언젠가는 책으로 나올 것이니 책으로 한꺼번에 읽고 싶었다. 

과연 몇 년을 칼럼의 한 줄도 읽지 않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첫 쪽부터 긴장감과 절제미가 넘치는 글이 이어지는데 숨을 죽여가면서 읽게 된다. 음식 재료를 맛을 보고 알아내는 과정일 뿐인데 마치 거대한 추리 소설을 읽는 듯한 스릴이 넘친다.

요리로 일가를 이룬 분인데 글 솜씨마저 이렇게 좋으니 자괴감이 생긴다. <독서 주방>을 읽다보면 역시 글쓰기는 재능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명색이 책을 7권을 낸 바 있어서 강제적인 글쓰기 훈련을 오랫동안 한 나보다 글이 훨씬 좋다. 

읽어갈수록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유재덕 선생의 글 솜씨의 원천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솟구친다.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요리사답게 식습관을 기준으로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지를 결정했다고 한다. 시장 통 유세를 다니는 영상을 찾아서 음식을 보는 시선, 그것을 집어드는 손 모양, 입에 넣어 씹고 삼킬 때의 표정 등을 평가 재료로 삼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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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방법으로 품성을 환히 볼 수 있었다는데 '거친 음식을 드시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고 품위 있던 바로 그분'에게 한 표를 행사했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유재덕 선생의 통찰력과 글쓰기에 대한 천재성을 발견하게 된다. 최대한 두리뭉실하게 표현하지만 그 정답은 누가 봐도 명확하게 알 수 있게 자신의 생각을 글로 품위 있게 풀어내는 솜씨라니.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요리사는 미슐렝의 별이 주렁주렁 달린 최고급 레스토랑의 주방장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그리고 생명의 철학을 위해 자신의 부엌에서 날마다 음식을 만드는 주부들이다!'

<독서 주방>에서 가장 감동적으로 읽은 구절이다. <독서 주방> 북콘서트에서 유재덕 세프의 딸아이가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해서 참석자들을 감동시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니까 유재덕 셰프는 성공한 전문가라기보다는 존경받는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다. 그리고 그 존경은 사회적인 성공에 기인한 것이 아니고 진심으로 가족을 아끼는 지극한 정성과 사랑덕분이라는 것을 그의 글 몇 줄만 읽어도 알겠다.

술을 마시지 않는 아내, 너무 어려서 술을 마실 수 없는 아이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혼자서 술에 취하면 안 되니까 집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구절을 읽고 내가 얼마나 내 가족에게 미개했는지 실감했다. 세상에 이토록 따뜻하고 자상한 가장이라니.

유재덕 셰프의 직업적 성공은 위대한 재능 덕분이 아니고(심지어 그는 조리가 아닌 식품공학을 전공한 이방인 이었다) 겸손하고 노력하는 마음 덕분인 것도 알겠다. <독서 주방>을 읽다보니 유재덕 셰프야말로 독서를 가장 실용적이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겠다.

주방에서 일이 꼬이거나 심지어 치매로 고생하는 어머니 때문에 슬플 때도 그가 해답을 구하고 위안을 구하는 것은 요리에 관한 책이었고 책은 그에게 해답과 위안을 주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유재덕 셰프가 나보다 훨씬 글을 잘 쓰는 이유를 알겠다. 요리를 하는 과정은 글쓰기의 그것과 닮았다. 좋은 음식 재료(글쓰기 재료)를 준비한 다음 차례를 잘 지켜서 진행을 하며 음식이 다 되면 맛을 보고(퇴고) 간을 맞추지 않는가 말이다. 요리사로서 경력이 20년이 넘었으니 겨우 10년 경력이 채 되지 않은 나보다 윗길에 있는 것은 당연하다.

유재덕 셰프가 말하길 음식은 생의 이미지 그 자체이기 때문에 돌아가신 분이 좋아하던 음식을 해놓으면 잠시나마 그 분이 본인 곁에 온다고 한다. 내 어머니는 종부로서 평생 떡을 만드셨는데 그래도 떡을 가장 좋아하셨다.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땐 이젠 떡을 내 곁에 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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