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나는 이 학교가 부끄럽다."

연세대학교 한 학생이 9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일부다. 그는 "간만에 (학교가) 제대로 된 일 좀 하나 했더니 이 정도 뚝심도 없어서 어떻게 운영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그가 학교를 강도 높게 지적한 이유는 학교 측이 인권강의를 필수 과목으로 전환하겠다던 기존의 약속을 철회했기 때문이다.

도마에 오른 과목은 '연세정신과 인권'이다. 1학점짜리 온라인 강의로 총 15명의 교수가 역사, 젠더, 사회정의, 장애, 난민 등의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지난 8월 6일 연세대는 보도자료를 통해 "2020년부터 학부 신입생 전원에게 '연세 정신과 인권'이라는 온라인 필수 과목을 이수하게 하겠다"고 했다.

당시 손영종 연세대 교무처장은 <연세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학부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체계적 커리큘럼의 온라인 인권 강좌를 개설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며 해당 강의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해당 논의는 류석춘 교수 논란이 일었던 지난 19일 중단됐다. 학교는 입장문을 통해 "2020학년도부터 이 교과목을 선택 교양 교과목으로 운영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학교는 왜 스스로 입장을 번복한 걸까?

"약 한 달 전, 일부 보수·개신교 단체가 학교 정문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연세정신과 인권' 강좌를 비판하며 몇 차례 관련 시위를 이어갔다. 학교에도 수차례 민원을 넣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학교가 인권강좌를 필수과목에서 철회한 시기를 고려했을 때 외부의 압력이 주된 요인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연세대학교 여성주의자 재학생 네트워크 의장 A씨의 주장이다. A씨가 언급한 것은 '연세대를 사랑하는 국민모임'이 주도한 집회다. 이들 단체는 지난 8월 13일 연세대 정문 앞에서 "연세대 건학이념을 무시하는 젠더 인권교육 필수화 웬말이냐"며 "무분별한 인권교육이 바른 성문화를 무너뜨리고 동성애 옹호를 조장한다"고 해당 인권 수업을 비판했다. 이날 집회에는 홍문종 우리공화당 의원도 참석했다.

단체는 8월 17일에 연 2차 집회에서도 "강제의무 인권교육 즉각 철회, 강제의무 젠더 인권교육 즉각 취소, 감상적 난민포용 교육 즉각 중단, 건학정신과 기독교 정신 절대 사수, 성경에 기반한 올바른 인권교육 실시의 5개항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류석춘 성희롱 발언... 학내 인권교육이 필요한 이유"

재학생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해당 과목을 이수하는 재학생 B(23)씨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극우 단체들은 강의 내용이 공개되기도 전에 강의 목차만 보고 비판하고 있다"며 "목차에 기재된 젠더, 난민이라는 글만 보고 주장하는 건데 정작 강의 내용을 보면 사회적으로 물의가 될 만한 내용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연세정신과 인권' 강좌의 주차별 주제를 보면, 보수단체가 문제 삼는 젠더와 난민 주제 외에도 공동체, 환경과 생명, 의료, 디지털미디어 및 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커리큘럼이 언급돼 있다.

앞서 발언한 A씨는 "저희 학교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류석춘 교수의 성희롱적 발언이 대학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사회축소판인 대학에서 인권교육을 한다는 건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말했다.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강의 시간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매춘여성에 비교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연세대 사회학과 전공과목 '발전사회학' 강의 녹음본에 따르면 류 교수는 학생들과 일제강점기 관련 강의 내용을 논의하는 중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여성으로 지칭했다.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강의 시간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매춘여성에 비교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연세대 사회학과 전공과목 "발전사회학" 강의 녹음본에 따르면 류 교수는 학생들과 일제강점기 관련 강의 내용을 논의하는 중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여성으로 지칭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이어 "학교가 먼저 인권교육을 하겠다고 했을 때 매우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며 "만일 학교가 외부의 압력 때문에 필수 교육을 철회한 게 맞다면 어떤 학생들이 학교의 교육철학을 믿고 교육과정을 따라가겠나"라고 지적했다.

학교 측의 결정 이후 학내 단체들의 성명도 잇따랐다. 연세대학교 여성주의자 네트워크는 22일 '외부세력 압박에 인권강의 졸업 필수 취소하고 인권도 건학이념도 저버린 연세대학교 당국을 규탄한다'고 성명을 냈다.
 
 연세대학교가 인권 강의 필수 이수를 철회한 후, 학생들은 이를 규탄하는 항의 서명을 진행하고 있다.
 연세대학교가 인권 강의 필수 이수를 철회한 후, 학생들은 이를 규탄하는 항의 서명을 진행하고 있다.

관련사진보기

 
연세대학교 중앙 교지 연세편집위원회도 성명을 통해 "연세대학교는 자신의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책무를 다하고 있는가"라며 비판했다. 연세대학교 장애인권동아리 게르니카는 "선택적 '연세정신'을 규탄한다"며 "연세대학교의 행보는 날이 갈수록 실망스럽다"고 했다. 연세대학교 장애인권위원회도 "인권 교육의 의무화는 최소한의 조치였다"며 "인권과 관련된 진지한 논의도 없이 인권을 선택으로 만든 연세대학교를 규탄한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학교 측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인권강의와 관련해) 학내 학보에서 한 차례 언급했다"며 "이때 언급한 것으로 입장을 대신한다"고 답했다. 학교 측은 지난 22일, 학내 학보 <연세춘추>에 "인권강의를 두고 다양한 의견이 오가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며 "외부의 반대 목소리 때문에 학사제도를 변경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답했다. 이어 "학운위 검토 결과 선택교양으로 운영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며 "중간고사나 학기 말 수강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댓글3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