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메기> 스틸컷

영화 <메기>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 CGV 아트하우스

 
<메기>는 믿음에 관한 영화다. 점점 사람을 믿지 못해 관계를 망치거나, 직장을 잃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예전에는 문을 잠그고 다니지 않아도 도둑맞을 걱정이 없었다. 동네 어느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만큼 믿고 의지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그리고 정보사회로 넘어오면서 관계의 단절은 고립을 불렀다. 사람 말을 쉽게 믿지 못하고, 해를 입을까 끊임없이 의심하기 바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용은 세계인과 친구가 될 수 있지만 당장 밥 한 끼 먹자고 할만한 친구를 꼽기 어렵게 되었다. 현대인의 관계는 풍요 속의 빈곤이다.

각자의 의심이 만든 거대한 싱크홀
 
 영화 <메기> 스틸컷

영화 <메기>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 CGV 아트하우스

 
영화는 마리아 사랑병원의 방사선과에서 일어난 19금 엑스레이 사진으로 시작된다. 민망한 사진은 혹시나 하는 의심으로 불어나 불신을 만들어냈다. 윤영(이주영)은 사진의 주인공이 자신과 남자친구 성원(구교환)이라고 믿는다. 윤영뿐만이 아니었다. 다음날 부원장과 사직서를 내러 온 윤영 빼고 출근하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방사선과에서 무슨 일들을 했던 걸까? 의혹은 커져만 간다.

부원장(문소리)은 직원들의 단체 결근이 단순히 넘어갈 일이 아니라 말한다. 어린 시절 에피소드를 말하며 신념은 자주 바뀐다는 회의적인 말을 꺼낸다.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발버둥 쳐도 안 믿는 건 안 믿는 거라고. 불신이 큰 부원장과 윤영은 직접 믿음 교육을 떠난다. 몸소 눈으로 확인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다소 절박한 심정이다.
윤영은 요즘 고민에 빠졌다. 최근 성원의 전 여자친구가 찾아와 그동안 폭력에 시달렸다 고백했기 때문이다. 장난 같은 성원의 동작 하나하나를 유심히 관찰하게 된다. 내가 만나왔던 남자친구가 맞을까? 자꾸만 의심이 든다.

성원도 고민이 많다. 싱크홀을 메우러 다니다가 윤영이 사준 반지를 잃어버린 것이다. 분명히 이쯤에서 잃어버린 것 같은데.. 같은 자리를 몇 번씩 찾아봐도 소용없는 헛수고였다. 그래서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동료의 발가락 사이, 반짝이는 반지를 보지 않았을 때까지는. 이때부터 동료 사이 의심은 커진다. 관계라는 도로에 미세한 균열이 만들어지고 있다.

독특함으로 중무장한 올해의 독립영화
 
 영화 <메기> 스틸컷

영화 <메기>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 CGV 아트하우스

 
영화 <메기>는 믿음을 잃어가고 있는 사람(윤영), 믿음이 없는 사람(부원장), 믿을 수 없는 사람(성원)을 다루고 있다. 중심 서사가 약해 장면과 장면을 무심히 잘라 이어 붙인 듯한 조각보 같다. 어쩌면 단점이 장점이 되는 순간일 수 있다. 에피소드 각각을 떼어 내 또 하나의 단편을 만들어도 어색함 없는 독립성이 강하다. 장편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단편영화 같은 신선함, 허를 찌르는 특별함을 느낄 수 있다.

청년을 키워드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열네 번째 인권 영화 프로젝트로 <메기>가 만들어졌다. 이옥섭 감독은 최근 여성 감독 약진 대열에 합류했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4관왕을 수상한 그는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로 중무장하고 한국 영화 진부함에 방점을 찍는다. 미스터리한 분위기는 한국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란 명칭이 잘 어울린다.

주인공이자 관찰자인 메기의 목소리 연기는 천우희다. 지구의 지각변동을 예민하게 감지하는 특성으로 제3의 화자가 되어 인간에 대해 논한다. 고양이 눈으로 본 인간 세상을 다룬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떠오른다. 지진을 예감한 메기의 점프는 윤영과 성원의 조각난 믿음 앞에서 또 한 번 날아올랐다. 윤영의 선택을 촉구하는 쐐기 박기인 것일까. 믿느냐 안 믿느냐는 각자의 선택이다.

전반적으로 청년 문제와 믿음이 무너지는 과정을 경쾌하게 다루고 있는 영화다. 오래된 필름 같은 화면 질감에 눈에 띄는 비비드 컬러, 미스터리한 음악이 인상적이다. 정부의 골칫거리인 싱크홀이 도시에 나타날수록 청년 일자리도 늘어난다. 아이러니하게도 성원을 춤추게 하지만 윤영은 이러저리 갈피를 잡지 못한다. 도심 속 싱크홀처럼 윤영의 마음은 뻥뻥 뚫려있다.
 
 영화 <메기> 스틸컷

영화 <메기>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 CGV 아트하우스

 
사상 유례가 없는 취업난에 허덕이는 청년, 시간이 정지한 것 같은 병원의 부조리함, 평화시위가 한창인 재개발 현장, 가까운 사람조차 믿을 수 없는 불신, 연인 사이에 일어나는 데이트 폭력과 도를 넘은 불법 촬영까지. 다양한 사회문제까지 유쾌하게 녹여냈다.

사실은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다. 언제나 연관된 사람들을 통해 왜곡되고 편집된다. 어쩌면 가짜 뉴스가 만들어지는 과정도 믿지 못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하나로 규합되지 않는 산만함, 무어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불안함은 마음을 조장한다.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해야 할 일은 더 구덩이를 파는 게 아니라. 그곳에서 빨리 빠져나오는 일이다.

자신의 신념이 흔들리고 있다면 당장 믿음 교육이 필요하다. 영화를 본 후 관객 각자의 믿음 교육이 필요한 부분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폭소할 수 있는 웃음보다 낄낄거리다가 뒤통수가 뜨끔하는 블랙코미디의 진수를 영화 <메기>에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기사는 장혜령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메기 이주영 구교환 문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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