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 포스터.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 포스터. ⓒ JTBC

 
JTBC 월화 드라마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에는 명문가 청년인 마훈(김민재 분)이 동료들과 함께 운영하는 '결혼 전문업체' 꽃파당이 등장한다.
 
꽃파당은 결혼정보업체 같은 표현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기업체다. 중매를 서줄 뿐 아니라, 돈만 주면 그 이전 단계도 도와준다. 우연을 가장한 인연도 만들어준다. 극중에서 한번은 이런 일도 기획했다. 길을 걷는 여성을 향해 대형 물통이 거친 속도로 굴러가도록 한 뒤, 의뢰인 남성을 투입시켜 여성을 구해주도록 하는 일이다. 이 일을 계기로 여성은 은인에게 호감을 느꼈다. 꽃처럼 잘생긴 매파들인 꽃파당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일을 벌여 상당한 수익을 거둬들인다.
 
꽃파당의 사업 종목은 그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혼례식 당일에 예복도 빌려주고 장소도 빌려준다. 꽤 근사한 한옥 정원에서 식을 거행하게 해주므로, 초갓집에 사는 사람도 혼례식만큼은 근사하게 치를 수 있도록 해준다. 그에 더해 신부 화장까지도 책임져준다. 한 커플만 성사시켜도 꽤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구조로 사업이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드라마는 '퓨전 사극'이다. 스토리뿐 아니라 문화적 배경까지 실제 역사와 별로 관계가 없다. 저런 일이 실제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 없었다고 결론 내리고 드라마에 집중해도 될 정도다.
 
그러나 한 가지 만큼은 사실이다. 등장인물들이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 꽃파당에 목을 매는 것처럼, 옛날에는 중매 없이 결혼을 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드라마에 나타나는 중매의 그 같은 규범력만큼은 실제 역사와 잘 부합한다.
 
중매가 필수였다는 점은 고대 중국의 사례에서도 잘 드러난다. 매(媒)·매작(媒妁)·행매(行媒) 등으로 불린 중매업자들은 진시황의 진나라(기원전 221~206) 이전부터 돈벌이를 목적으로 결혼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들의 활약상은 <시경>, <주례>, <맹자>, <관자>, <전국책> 같은 고전 문헌들에 등장한다. 일례로, <시경> 남산 편에는 "아내를 얻으려면 어찌해야 하나? 중매가 없으면 안 되네"라는 구절이 있다.
 
훗날 고구려를 침략하게 될 627년 당시의 당나라 태종(당태종)이 발포한 혼빙조서에도 중매인의 직무가 거론됐다. 또 당나라 법전인 <당률>을 해설한 <당률소의>에도 "시집가거나 아내를 얻을 때는 중매인이 있어야 한다"거나 "혼인할 때는 반드시 중매인을 세운다"는 등등의 규정이 나온다.
  
 꽃파당 경영자 마훈(김민재 분).

꽃파당 경영자 마훈(김민재 분). ⓒ JTBC

 
이렇게 중매가 법적으로 강제됐기 때문에, 동거를 했던 사람들도 결혼식을 올릴 때만큼은 중매인을 세워야 했다. 당나라 소설 <이왜전>에 등장하는 이왜(李娃)라는 여성도 그랬다. 그는 수년간 동거했던 남자와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중매인을 내세워야 했다. 중매인이 수고해준 뒤에야 그들은 국가권력이 승인해주는 법적 부부가 될 수 있었다.
 
잠시 뒤 소개할 두 문헌에서도 나타나는 것처럼, 동일한 양상이 옛날 한국에서도 나타났다. 결혼식 이전의 '이왜'처럼 자유연애를 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매를 거쳐 이성을 만나고 결혼했다.
 
중매 없이 결혼하면 지역 사회에 붙어 있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중매인의 중개로 결혼하는 것은 지역민의 보증을 받고 사회에 정착한다는 의미를 띠었다. 이런 관습을 통해 지방 지배층은 개인의 일탈을 막고 향촌에 대한 통제력을 높일 수 있었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썸이나 연애 초기에, 좋아하는 상대방과 자신의 관계만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옛날 사람들은 이 단계에서부터 중매인을 의식해야 했다.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일과 더불어, 그 마음을 얻은 뒤 어떤 중매인을 세울 것인가도 함께 고민해야 했다.
 
물론 썸이나 연애를 거치지 않고 중매인이 소개해주는 파트너와 결혼하는 경우에는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남들과 달리 썸이나 연애를 시작한 사람들은 어느 시점에서 중매인을 개입시킬 것인가를 꼭 염두에 둬야 했다.
 
중매제도가 가하는 무게감이 그 정도였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도 적지 않았다. 세종시대의 천재적인 집현전 학사로 유명한 정인지(1396~1478년)한테도 그런 에피소드가 있었다. 이 이야기는 광해군의 측근인 어우당 유몽인이 정리한 <어우야담>에 실려 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하동부원군 정인지는 어렸을 적에 엄친을 여의었다. 그래서 홀로 된 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았다. 학문적 성취가 빨랐으며, 용모는 옥과 같았다."
 
이런 정인지를 마음에 둔 여성이 있었다. 담장을 사이에 둔 옆집 명문가 처녀였다. 이 여성은 담장을 넘어오는 정인지의 글 읽는 소리에 매료됐다. 그래서 담장 너머로 몰래 훔쳐봤다. 그랬더니, 목소리뿐만 아니라 외형마저 남다른 청년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정상적인 중매제도로는 연결되기 힘들었다. 양쪽 다 사대부이기는 했지만,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의 격차가 현저했다. 여성은 고관대작의 딸이었지만, 정인지는 아버지를 일찍 여읜 가난한 청년이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힘들다고 판단했는지, 여성은 비정상적인 길을 찾는다. <어우야담>은 이렇게 말한다.
 
"(정인지가) 늘 바깥채에 거처하면서 밤늦도록 책을 읽었는데, 담장을 사이에 둔 이웃집에 처녀 하나가 있었다. 용모가 빼어나게 아름다웠으며,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한 명문거족의 딸이었다. 처녀가 틈새로 훔쳐보니, 미소년 하나가 낭랑한 목소리로 글을 읽고 있었다. 마음으로 사모하여 담장을 넘어가 그를 가까이하고자 했다."
 
몰래 훔쳐보던 명문가 여성이 결국 담장을 넘었던 것이다. 이 상황은 책 읽던 정인지를 당황케 만들었다. 그는 정색을 하며 거절을 표시했다. 상황이 갑작스럽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자기 집과 이웃집의 지위 격차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매몰차게 거절했던 것이다.
  
 꽃파당이 제공하는 신부 화장 서비스.

꽃파당이 제공하는 신부 화장 서비스. ⓒ JTBC

 
그러자 여성은 도리어 소리를 지르려 했다. 낯선 여성과 남성이 밤늦게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 여성이 고함을 치면, 지금이나 그때나 남자가 불리할 수밖에 없다. 여성의 주거침입이 아니라 정인지의 행동이 도리어 문제 될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됐던 것이다.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정인지는 여성의 입부터 막았다. 그런 뒤 달래기 시작했다. 천재답다고 해야 할지, 그는 자기 시대의 관습을 활용해 여성을 진정시켰다. 자기 시대 사람들이 신뢰하는 중매제도를 암시하면서 상대방을 안심시킨 것이다. 일단, 그는 자기 처지부터 설명했다.
 
"아가씨는 고관 집 따님이고, 저는 아직 아내가 없습니다. 집이 가난하고 어머니가 홀로 계시기 때문에, 혼처를 구해도 응하는 사람이 없네요. 장가들어 좋은 아내를 얻고 싶어도, 아가씨 같은 사람을 구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이렇게 자신과 상대방의 격차를 인식시킨 뒤, 그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중매제도를 이용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상대방에게 전달했다. 그는 중매란 말을 입에 담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이 그 말을 떠올릴 수 있도록 이야기를 전개했다.
 
"제가 만약 어머니께 말씀드리고 친척들과 의논한다면, 어머니도 틀림없이 기뻐하며 허락해주실 겁니다. 그런 연후에 백년의 기쁨을 도모해도 될 겁니다."
 
양가 부모가 동의하더라도, 중매는 꼭 거쳐야 했다. 조선 후기에 안석경이 쓴 <삽교만록>에 따르면, 유명한 개혁가인 조광조(1482~1519년)는 양가 아버지들을 통해 들어온 어느 여성의 청혼을 '정식 중매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단칼에 거절했다. 여성의 아버지가 조광조의 아버지에게 부탁하고 조광조의 아버지가 조광조에게 여성의 마음을 전달했지만, 조광조는 제3자의 중매가 결여됐다는 절차상 하자를 부각시켜 거절했다.
 
정인지의 시대는 조광조의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두 시대 다 중매가 꼭 필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와 친척들의 동의를 구해보겠다'는 정인지의 말은, 상대방 여성의 입장에서는 '그런 동의를 구한 뒤, 조만간 중매 절차를 진행하겠구나'라는 의미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부모와 친척이 동의하면, 이들이 지역사회에서 중매인을 물색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여성이 그런 믿음을 갖도록 한 뒤 정인지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만약 순간의 정욕을 이기지 못한다면, 아가씨는 몸을 그르친 처녀가 될 것이고 제 마음 또한 편하지 않을 겁니다. 아가씨가 다른 사람한테 시집간다 해도 (오늘 밤 일이) 평생의 한으로 남을 겁니다. 그러니 잠간 인내하는 것만 못한 겁니다. 내일 부모님께 고하고 양가 혼사를 이루도록 합시다."
 
상대방 여성의 사회적 명예까지 거론하면서 정식 절차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정인지의 '구구한' 설명을 듣고 여성은 마음이 놓였다. 이 남자가 절차를 진행하겠구나 하는 확신을 받은 것이다. "처녀가 매우 기뻐하며, 약속을 하고 돌아갔다"고 <어우야담>은 말한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정인지는 중매인을 세우는 단계로 나아가기는커녕 그 전 단계인 어머니의 동의조차 구하지 않았다. 정인지가 약속을 깰 거라는 복선은, 자기 집과 여자 집의 격차를 강조할 때 이미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다음날 정인지는 어머니께 사실을 알리면서 '집을 팔고 떠나자'고 제안했다. <어우야담>은 이렇게 말한다. '하동'은 정인지를 지칭한다.
 
"하동은 이튿날 어머니께 알리고 다른 집으로 옮겨가고, 마침내 그 집을 판 뒤 인연을 끊었다."
 
어머니가 정인지의 말을 따라 준 것을 보면, 어머니가 보기에도 그 결혼이 불가능해 보였던 것이다. 처녀가 하고 싶어 한다 해도, 처녀의 부모가 동의해주지 않을 거란 판단이 들었던 모양이다.
 
정인지의 행동은 처녀의 신상에 중대 영향을 주었다. 정인지의 약속을 철석 같이 믿고 그날 밤 담장을 넘어 '철수'해준 그 여성은 옆 집이 이사갔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처녀는 마음에 상처를 입고 죽었다"고 <어우야담>은 말한다.
 
정인지가 밤늦게 갑작스레 직면한 여성의 구애를 뿌리치고자 어머니와 친척의 동의를 거론하고 중매인의 등장까지 암시하면서 여성을 돌려보낸 이 이야기는 결국 여성의 비극적 최후로 끝나고 말았다.

이렇게, 갑작스런 구애를 거절하는 명분으로도 활용될 정도로, 중매제도는 옛 사람들의 의식을 강력히 지배했다.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은 이런 문화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퓨전 사극이다.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 중매제도 정인지 조광조 중매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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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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