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빠라~밤빠 밤~밤빠라~밤빠 밤~"

지하철이 역내로 진입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곧이어 동인천행 급행열차가 미끄러지듯 스르르 멈춰 선다. 출입문이 열리기 무섭게 줄을 서서 기다리던 승객들이 우르르 승차한다. 하지만 반도 타기도 전에 여기저기에서 '그만 타세요? '밀지 마세요?'라는 볼멘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역에 도착하기 전 지하철 객실은 승객들로 이미 초만원 상태다. 아무리 용을 써 밀어 넣어 보려 해도 그 많은 승객들을 태우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미처 타지 못한 승객들이 무리하게 타보려는 데서 나온 신음에 가까운 소리들이다.

이렇듯 퇴근길 지하철은 시루에 콩나물 들어서듯 승객들로 차곡차곡 쌓여만 간다. 빽빽이 들어찬 객실 '옴짝달싹' 못하는 승객들은 그저 열차의 움직임에 따라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승객 개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관성의 법칙만 적용되는 곤혹스러움을 견디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누군가를 밀 수도 있고 밀릴 수도 있다. 누군가의 어깨를 칠 수 있고 치일 수도 있으며, 누군가의 신발도 밟을 수 있고 밟힐 수도 있다. 간혹 승객들끼리 밀고, 치고, 밟는 문제로 '옥신각신' 언성을 높이기도 하는 게 퇴근길 지하철의 군상이기도 하다.

이런 퇴근길 지하철의 일상은 지난주 금요일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 날 나는 남들보다 조금 서둘러 뛴 덕분인지 열차에 간신히 몸을 싣는 행운을 얻기는 했다. 하지만 내 몸은 객실 출입구에서 그리 멀리 가지 못하고 꼼짝없이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의지와 상관없이 거의 떠밀려 짐짝 취급이 되다시피 한 내 몸의 자세가 올바를 수 없었다. 어정쩡한 몸을 곧추 세우기 위해서라도 어디 움직일 틈이라도 없는지 살폈다. 그런데 바로 뒤편에 배낭가방(백팩)을 메고 있는 승객의 등과 내 등이 맞대고 있는 상황임을 감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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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역 지하상가의 가방 가계 백팩 등 각종 종류의 가방들, 어떤 손님들이 무엇을 담기 위해 사갈까?
ⓒ 신부범	관련사진보기

 
그 가방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도드라져 나온 부분은 열차가 출발하고 멈춰 설 때마다, 승객들이 승하차를 위해 이동할 때마다, 나의 등을 톡~톡~건드리는 불편함을 주었다. 그런 횟수가 늘어날 때마다 나의 참을성에도 임계점을 넘어 폭발점에 다다랐다.

승객들로 발 디딜 틈도 없는 퇴근길, 빵빵이 가득 찬 것도 모자라 불거져 나온 배낭가방을 메고 지하철을 타다니, '도대체 생각이 있는 사람이야 없는 사람이야?' 나의 '부아 게이지'는 달아오른 객실 분위기만큼이나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그 승객에게  '다짜고짜' 퉁명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아저씨 그 가방 안에 도대체 뭐가 들어 있기에 내 등을 툭~툭~ 건드리고 그래요?"
"죄송합니다. 건축용 타일을 붙일 때 쓰이는 도구인데 선반에 올려놓기도 마땅치 않고 불편을 드렸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유행 따라 멋을 부리자고, 등 뒤로 걸쳐 멜 수 있어 편해서, 양손이 자유로워 스마트폰 사용이 용이하다고 멘 가방도 아니고 일할 때 쓰는 연장이 들어 있다는데 먹고살기 위한 생계용 가방이라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을 그에게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복잡한 지하철, 그저 나에게 불편함을 준다는 이유만으로 곱지 않는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던 그동안의 자기중심적인 시각과 단편적인 사고가 얼마나 편협했는지 깨닫기도 했다. 그래서 그 이후 지하철 배낭가방을 무턱대고 미워하지만은 않기로도 했다.

지하철의 어느 노동자가 멘 배낭가방에는 삶에 대한 희망이, 어느 학생이 멘 가방에는 미래에 대한 꿈이, 어떤 아주머니가 멘 배낭가방에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을지 모를 일인 것을... 10여 년 전 당신보다 큰 배낭가방에 터질 듯 농산물을 가득 담아 두 어깨에 짊어지고 저 멀리 전라남도에서 인천의 아들 곁으로 달려오셨던 우리 엄마와 같은 가방일지 모르는 것을... 어떻게 미워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