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뚤어진 집> 포스터

<비뚤어진 집> 포스터 ⓒ (주)팝엔터테인먼트

 
2003년 완공된 폴란드 소폿에 위치한 '비뚤어진 집'은 구부러진 선과 부풀어 오른 듯한 지붕, 찌그러진 문과 창문으로 구성되어 마치 초현실주의 회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역동적인 움직임이 정지된 상태로 멈춰버린 형태의 이 건물의 모습은 아가사 크리스티 작가의 명작 <비뚤어진 집>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등과 함께 그녀의 대표적인 명작으로 뽑히는 이 작품은 본인이 직접 걸작으로 칭한 작품이기도 하다. 

아가사 크리스티는 이 작품에 대해 "한 가문을 파헤치는 일이 흥미롭게 느껴진다"고 언급한 적 있다. 한 집에 사는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인 이들이 각자의 기형적인 욕망을 표출하는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비뚤어진 집'을 보는 듯하다.

고전 명작들이 대부호의 가문을 다루는 방법은 위선을 조명하고 그것을 해부하는 식이다. 막강한 부와 권력 때문에 행복해 보이지만 이들의 내면에 감춰진 욕망과 위선을 드러내는 것. 질스 파겟 브레너 감독이 연출한 영화 <비뚤어진 집> 역시 그런 식이다. 

사립 탐정 찰스는 한때 카이로에서 핑크빛 로맨스를 펼쳤으나 이뤄지지 못한 소피아와 다시 만나게 된다. 대부호 애리스티드 레오니디스의 손녀인 그녀는 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망이 사고가 아닌 타살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찰스에게 사건을 의뢰하게 되고 찰스는 한 가문의 일에 끼어드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기지만 소피아의 부탁이라는 점 때문에 레오니디스의 대저택을 향한다. 그곳에서 그는 기이한 레오니디스 가족을 만나게 된다.   
 
 <비뚤어진 집> 스틸컷

<비뚤어진 집> 스틸컷 ⓒ (주)팝엔터테인먼트

 
겉으로는 완벽하고 우아해 보이지만 한 명, 한 명 대화를 나누고 진실을 알게 될수록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살인 동기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제한된 공간에 인물들을 용의자로 몰아넣고 서서히 미스터리를 밝혀나가는 이 영화는 고전 추리 소설의 장점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그 장점은 크게 세 가지로 뽑을 수 있다.  첫 번째는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인물들 사이의 관계이다. 한정된 용의자를 바탕으로 사건을 진행하는 구성을 택할 경우 모든 용의자를 범인으로 의심할 수 있는 장치가 중요하다. 범인으로 몰릴 가능성이 높은 한 명을 확실히 설정해 시선을 끈 뒤 진범을 밝힐 때 그 알리바이의 해체와 살해 동기가 객관적으로 설득력을 지녀야 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작품은 쉴 틈 없는 대화 속에 각 인물들이 지닌 뒤틀린 욕망을 담아둔다. 욕망들은 대부호 애리스티드 레오니디스를 향한 것으로 그들 구성원 모두가 겉으로는 대부호의 돈과 명예 속에서 안락한 생활을 보내는 거 같지만 그 안에는 탐욕과 복수 같은 감정이 담겨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관객이 구성원 모두에게 의심을 품게 만들면서 흥미로운 추리게임에 빠져들게 만든다.
 
 <비뚤어진 집> 스틸컷

<비뚤어진 집> 스틸컷 ⓒ (주)팝엔터테인먼트

   
두 번째는 고딕 풍 배경이 주는 고전적이면서 몽환적인 느낌이다. 감독 질스 파겟 브레너와 촬영감독 세바스찬 윈테로는 이런 느낌을 살리기 위해 독일 표현주의 영화들에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들 촬영기법과 미장센은 공간을 통해 인물들의 내면을 드러낸다. 제한된 공간에서 연극형식으로 펼쳐지는 작품인 만큼 대사 외에도 인물들의 성격이나 욕망을 드러내는 소재가 필요했고 공간은 이 역할을 탁월하게 수행해낸다.  

특히 인상적인 건 대저택이라는 공간 자체가 마치 살아있는 캐릭터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호화롭고 웅장해 보이지만 그 안에 시체처럼 죽어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대조하며 이들의 비뚤어진 욕망을 집이란 공간에 투영시킨다. 여기에 미스터리한 저택 안의 구조물들을 찰스가 마주하는 장면들을 통해 마치 1인칭 미스터리 추리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도 준다.   

세 번째는 감정을 격화시키는 구성이다. 추리소설 구성은 이성과 감성의 적절한 배합이 이뤄질 때 큰 힘을 지닌다. 철저하고 빈틈없는 구성은 두뇌싸움을 유도하고 끔찍하고도 슬픈, 어떨 때는 강한 감정이입을 유도하는 살인 동기는 감정적인 격화를 가져온다. 작품은 찰스를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영화는 각 인물들이 지닌 감정을 세세하게 묘사해낸다.   
 
 <비뚤어진 집> 스틸컷

<비뚤어진 집> 스틸컷 ⓒ (주)팝엔터테인먼트

 
대부호의 첫째 아들 로저가 아버지에게 느꼈을 좌절감이나 둘째 아들 필립과 아내 마그다가 당한 무시, 두 번째 부인 브렌다가 가족들 안에서 받는 압박과 의심은 감정적인 이입을 이끌어 내며 재미를 준다. 특히 찰스가 소피아를 사랑하고 있다는 점과 가족 구성원 중에서도 믿음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는 점은 배신과 믿음의 붕괴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관객의 감정을 격화시킨다.  

<비뚤어진 집>은 고전 추리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환영할 영화라 할 수 있다. 원작이 지닌 이야기의 힘에 현대 관객들에게 재미를 주기 위한 섬세한 장치들이 갖춰져 있다. 특히 집이라는 공간을 중점으로 사건의 용의자들이 지닌 뒤틀린 욕망을 생동감 넘치게 담아냈다. 이는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에 감정적으로 빠져드는 재미를 동시에 선사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비뚤어진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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