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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원 후추첨'의 역사적 배경 – 신자유주의 학교선택제에서 출발

강원도교육청이 평준화 지역에서 평준화를 사실상 해체시킬 수 있는 '선지원 후추첨'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전교조 강원지부나 평등교육실현학부모연대 등 시민단체의 철회요구에도 불구하고 시행을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 기사 <'갑툭튀' 강원도교육청의 평준화 일반고 배정방식 변경>에서 공청회 한 번 하지 않고 정책을 확정하는 등 정책 추진의 비민주성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이미 많은 지역에서 선지원 후추첨을 실시하고 있는데, 이들 지역이 특정학교 쏠림현상으로 인한 학교 간 서열화, 성적 상위 학생 유치를 위한 학교 간 경쟁 과열, 여전한 원거리 통학 등 많은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진보교육감 지역을 중심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권 강화를 축소하고 교육기회 균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 방향 선회를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오랫동안 시행한 선지원 제도의 틀을 건드리지는 못해 생각만큼 충분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강원도에서도 이러한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조속히 선지원 후추첨제 도입, 학교선택제 도입을 철회되어야 한다.

'선지원 후추첨'의 본질은 무엇일까? 선지원 후추첨으로 바꾸려는 이유의 방점은 '후추첨'이 아닌 '선지원'에 있다. 선지원 후추첨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선지원' 100%? 아니다. 교육청 의도와 상관없이, 학교 선택을 가장 강조하는 끝에는 평준화 해체, 비평준화가 있다. 그 옆에 나란히 특목고와 자사고 확대가 있다.

평준화 지역 '선지원 후추첨' 도입과 '선지원' 비율 증가는 '학교선택제' 강화 흐름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이 흐름은 1990년대 중반 신자유주의 교육 개악으로 악명 높은 '5·31 교육개혁'과 닿아 있다. 이때부터 학교 선택 강화, 학교 다양화를 앞세워 평준화 지역 '선지원'을 도입하고, 특목고와 자사고를 늘렸다. 이후 이명박 정부의 '고교 다양화 300' 정책 추진과 함께 고등학교 평준화는 사실상 무너지게 된다. 서울이 대표적이다. 제도로서 평준화는 남아 있지만, 알맹이는 빠진 '무늬만 평준화'인 상태이다.

결국, 평준화 지역에서 시행하고 있는 '선지원 후추첨'제는 학교 선택을 강조하며 수월성 교육을 강화한 잘못된 결과이지, 결코 교육기회의 균등을 추구한 결과가 아니다. 다른 지역에서도 '선지원 후추첨'을 하고 있다는 강원도교육청의 주장은 제도의 역사적 배경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이다.

이미 시행한 지역에선 학교 서열화, 과열 경쟁으로 몸살

이미 오랫동안 '선지원 후추첨'을 시행한 지역에서는 학교 선호도 차이로 인한 학교 서열화, 학생 유치를 위한 학교 간 과열 경쟁, 희망학교에 배정받지 못하는 학생들의 여전한 불만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선지원 후추첨제' 실시 지역에서 가장 크게 고민하는 문제는 선호학교 쏠림 현상으로 인한 학교 서열화다. 고등학교 평준화 실시 취지 자체를 훼손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강원도교육청도 이 점을 의식한 듯 강원도 내 평준화 지역인 춘천, 원주, 강릉에 학교 선호도 차이가 크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명을 딴 학교들의 '명성'도 예전만 못하다고 강조했다.

'원거리 배제 무작위 추첨제' 아래에서 학교 선호도가 줄어든 것과 '선지원' 제도를 도입했을 때의 학교 선호도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현재 선호도 차이가 줄어든 것은 '원거리 배제 무작위 추첨제'의 결과이다. 하지만 개인에게 학교 선택을 맡긴다면 선호도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강원도교육청은 전혀 다른 상황을 묶어서 이야기하고 있다.

춘천과 강릉지역에서 선호학교와 비선호학교의 차이는 극명하다. 상대적으로 원주 지역이 선호학교가 분산되어 있기는 하지만, 선호학교와 선호하지 않는 학교 사이의 양극화는 분명하게 존재한다. 강원도교육청이 '선지원 후추첨제' 실시의 근거로 삼고 있는 연구용역 결과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보였다. 선호학교 간 차이가 가장 크게 나타난 지역의 1지망 학교 지원율 차이는 무려 20배가 훨씬 넘는다.

'선지원 후추첨' 실시 지역에서 만나는 또 하나의 커다란 문제는 학교 간 과열 경쟁이다. 성적 상위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교사들은 물론 재학생들까지 동원하는 일도 벌어진다고 한다. 비평준화 시절 비선호학교들이 벌이던 일이다.

하지만 평준화 지역에서는 희망하는 학생들로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비선호학교만 경쟁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다. 지망 학생들이 정원을 초과하는 학교는 성적 상위 학생들이 탈락하는 것을 염려하며, 더 많은 성적 상위권 학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유치 전쟁에 합류한다. 선호학교는 자신들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서 그렇지 못한 학교들은 새로운 명성을 얻기 위해 과열 경쟁에 뛰어드는 것이다.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드는 '선지원 후추첨', 시작하면 되돌리기 어려워

강원도교육청은 '선지원 후추첨'을 하면 학부모들이 제기하는 원거리 통학, 비선호학교 배정 등의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평준화 지역 '선지원 후추첨' 제도는 평준화 본래의 취지를 해치면서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다. 오히려 사태를 더 꼬이게 만들기만 한다. 이미 '선지원 후추첨'을 시행하고 있는 다른 지역을 보면 알 수 있다.

2010년대 들어 진보교육감 등장과 함께 '선지원'을 오랫동안 시행했던 지역에 변화가 있었다. 선지원, 즉 학교 선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지원 비율 축소, 성적균등 배정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3년 광주, 2015년 전남, 2016년 경남, 2017년 충북이 선호도 차이로 인한 학교 서열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적균등 배정을 적용했다.

여기에 더해 2018년에 광주는 선지원 비율을 절반인 20%로 축소했으며, 충북은 선지원 희망학교 수를 반으로 줄였다. 그동안 강조하던 선택권 대신 기회균등이라는 평준화 취지를 살리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노력은 오랫동안 시행한 '선지원'의 틀을 무너뜨리지 못함으로써 충분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강원도는 다행히 2013년 '원거리 배제 무작위 추첨'으로 평준화를 시작했다. 다른 지역이 겪는 어려움을 고민한 결과이고, 소도시인 지역 특성을 고려한 결과이다. 평준화의 근간을 흔드는 '선지원 후추첨' 발표를 지금이라도 철회해야 한다. '선지원 후추첨'이라는 학교 선택의 판도라 상자를 열게 되면 사태를 되돌리기는 어렵다.

강원도교육청이 '선지원 후추첨'과 같은 학교선택제를 도입함으로써 교육기회의 균등, 평등교육을 강조하는 '모두를 위한 교육'을 포기하려고 시도를 이어간다면 매우 우려할만한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당장은 전교조 강원지부와 같은 진보세력과 부딪힐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선지원, 즉 학교 선택을 강화하라는 보수 엘리트 세력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당장은 강원도교육청이 선지원 비율을 늘리라는 요구에 직면할 것이다. 이후 선지원 비율을 조정하거나 성적균등 배정 도입을 고려하는 등 다양한 배정방식 변경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때는 이미 상황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게 된다. 그러다 보면 평준화 제도는 길을 잃게 될 것이다.

이것이 '선지원 후추첨' 앞에 '평준화 근간을 흔드는'이나 '평준화 해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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