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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릇한 젖멍울이 돋았던 때가 언제일까. 초등학교 5학년 여름, 옷장에서 하늘색 민소매 티를 꺼내 입었을 때, 가슴 부위에 새겨진 소라 모양 자수가 소복이 부풀어 올라와 있었다. 왠지 부끄러웠다. 가끔 아릿한 통증이 왔고 가슴은 점점 커졌다.

중·고등학교 내내, 또래보다 큰 가슴은 나의 콤플렉스가 됐다. 나는 체육 시간이 싫었다. 여학교였지만 뛸 때 큰 가슴이 출렁이는 것이 불편했고 민망했다. 체육 선생님이 남자라 더 신경 쓰였다. 가슴 밑에 땀이 차는 것도 싫었다. 운동신경도 없는 편이지만, 큰 가슴 때문에 운동이 더 싫어졌다.

가슴 때문에 생긴 일

'가슴이 큰 여자는 머리가 나쁘다'는 편견은 어깨를 꾸부정하게 말아 가슴을 숨기게 했다. 나는 가슴을 감추기 위해 조끼를 자주 입었다. 조끼를 입으면 일단 가슴이 한 겹 덧씌워져서 안심됐다.

드물게 당당히 몸매가 드러나도록 옷을 입는 친구가 있었다. 친구에겐 끊임없이 소문이 따라붙었다. 대학생 남자친구가 있다더라. 선생님과 연애를 한다더라. 그 아이가 먼저 유혹했다더라.

"걔, 가슴이 크잖아." 뒤에서 항상 쑤군거림이 있었다. 그런 소문은 내 가슴을 더 움츠러들게 했다. 1980년대, 당시 여학생들은 '여자는 유리그릇과 같다. 한번 깨지면 붙이기도 힘들고, 붙여도 티가 난다"며 순결을 강요받던 시대였다. 가슴을 드러내는 것은 남자를 유혹하는 것. 방탕한 성생활의 시작처럼 여겨졌다.

대학교에 가서야 꽁꽁 싸매고 있던 가슴을 조금씩 드러낼 수 있었다. 여대라서 그런지 모이면 타 대학과의 미팅이 주 관심사였고, 자연스럽게 화장이나 옷, 얼굴과 몸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오갔다(학교 안에서 직접 경쟁이 없기 때문에, 허심탄회한 정보공유가 가능했다).

나는 마른 몸에 큰 가슴이라는, 유전자가 내린 '아름다운 선물'을 감추지 않기로 했다. 한껏 몸매를 강조하는 옷을 입고 멋을 내고 다녔다. 단 교회에 갈 때만은 조신하게 옷을 입었는데, 어느 날 교회 남자 선배가 '자매, 너무 붙는 옷을 입지 않으면 좋겠는데..." 했기 때문이다. 형제를 시험에 들게 하는 음란 마귀가 될 수는 없었다.

졸업하고 아침 생방송 프로그램 방송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밤을 새서 일한 뒤, 아침 방송이 끝나면 함께 작업한 작가들과 방송국 인근 대중목욕탕에 가는 일도 잦았다. 20명이 넘는 작가들 사이에 내 가슴이 예쁘다고 소문이 났다.

나는 더욱 자신감이 생겼다. 유난히 얼굴 예쁜 작가들이 모여 있는 연예 정보 프로그램으로 옮겼을 때 '나는 가슴이 좀 되잖니'라며 대담하고 뻔뻔하게 농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20년 전에 SNS가 있었다면 가슴골 보이는 '셀카(셀프카메라)'에 #슴부심 해시태그를 달았을지도 모른다).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젖몸살로 가슴이 돌덩이처럼 딱딱해졌다. 아기 낳는 것보다 젖이 잘 돌도록 가슴을 마사지하는 것이 더 아팠다. 어렵게 시작된 모유 수유였지만 시간이 지나니 젖이 잘 나오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컸던 가슴이 더 커져서, 아이가 젖 먹을 때 내 젖가슴에 눌려 숨을 제대로 못 쉴 정도였다.

꼴깍꼴깍 젖을 넘기는 소리를 듣는 것이 좋았다. 아기가 배불리 먹고 입으로 물었던 젖꼭지를 놓으면 남아있는 젖이 나와 아이 얼굴에 샤워기처럼 뿌려대기도 했다. 혹시 심청이처럼 동네 젖동냥하는 아이가 있다면 얼른 가서 물려주고 싶을 정도였다.

내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다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책표지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책표지
ⓒ 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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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년생인 둘째 아이도 1년간 모유 수유를 했다. 젖 안에 염증이 생겨 약으로 젖을 말렸다. 젖가슴도 함께 말라갔다. 이러다 가슴이 다 없어지는 것 아닌지 걱정될 정도로. 결국 아주 작은 가슴이 남았다. 남편은 나의 가슴이 컸던 것은 대부분 유선 조직이었다고, 덕분에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서 고맙다고 했다.

엄마로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여자로서 매력을 상실한 것 같아 우울해졌다. 옷을 입어도 태가 나지 않았다. 브래지어 안에 패드를 넣으면 불편했다. 평생 이런 고민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대부분의 여성은 유방의 크기에 대해서 걱정하는 것이 건강하지 못한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왜 건강하지 못한 일인지는 모르고 있다. 여성은 자신의 몸을 어릴 때부터 대중매체를 통 세뇌된 이미지처럼 보이고 싶어 한다. 여성의 몸은 문화적인 전쟁터이다. 우리는 현실과는 맞지 않는 터무니없는 기준에 완벽하게 맞추어야 한다는 불가능한 임무를 떠맡은 셈이다.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크리스티안 노스럽, 282쪽)"

나는 왜 가슴 크기에 집착했을까? 가슴이 작으면 여성적 매력이 사라질까 봐 두려웠다. 성적 매력이 사라지면 부부관계가 소원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컸다. 여성의 가슴은 남성을 위한 것이라는 무의식적 편견에 젖어있었기 때문이리라. 봉긋하고 탱탱한 가슴만이 '아름다움'이며, 처지고 쭈글쭈글한 가슴은 '추함'이라는 남성의 눈길과 문화에 길들어 있었다. 여성의 몸에 대한 책을 읽고, 남편과 대화하며 나는 가슴 크기나 아름다움이 섹스와도 사랑과도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슴이 작아져서 좋은 점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웬만해서는 외출할 때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다. 더울 때 가슴 밑에 땀이 차지 않아 좋다. 취미로 시작한 발레를 하기에도 딱 좋은 몸이 됐다. 점프해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이제 50세를 앞둔 나는 작아진 가슴뿐 아니라 가슴보다 더 앞으로 나온 아랫배와 날개가 돋아나려는 듯 두툼한 팔뚝까지 가지게 됐다.

나는 나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소중하고 아름다운 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내 몸을 못마땅해할수록 타인의 시선을 더욱 의식해 자신감만 떨어질 테니까. 내 몸을 스스로 존중할 때, 엄격하고 왜곡된 '아름다움의 전쟁터'에서 벗어나 나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몸을 존중하라. 여성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유방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몸과 자신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유방을 양육과 (자기를 사랑하는) 기쁨의 원천으로 소중하게 여긴다면 유방과 우리의 관계는 충분히 개선될 수 있다. (같은 책, 286쪽)"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 개정판

크리스티안 노스럽 (지은이), 강현주 (옮긴이), 한문화(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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