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 60일, 지정생존자 > 포스터

tvN 드라마 < 60일, 지정생존자 > 포스터 ⓒ tvN

 
지난 8월 20일 tvN 드라마 < 60일, 지정생존자 >가 막을 내렸다. 평소 드라마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 드라마는 직접 봤다. 원작인 미국 드라마 역시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 작품은 한국판으로 리메이크하면서 한국적인 설정을 잘 가미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매 회 진행될 때마다 호평이 이어졌다.

직접 보고 나서도, 이 드라마는 괜찮은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드라마에는 아쉬운 면도 있었지만, 좋은 배경설정과 현지화 전략이 단점을 가렸다. < 60일, 지정생존자 >는 정말로 한국적인 정치 드라마고, 특히 주인공인 박무진 대통령 권한대행이 마음에 들었다.

제작진은 주인공을 양진만 대통령(김갑수)에 의해 등용된 환경부 장관 박무진(지진희)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테러에 공모한 내부 조력자는 다름 아닌 양진만 대통령의 최측근 한주승 비서실장(허준호)이었다. 덕분에 이 드라마는 누군가를 지지했던 사람이 어떤 태도를 가져야하는지, 누군가를 계승한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한자릿수 지지율을 전전하던 양진만 정부에게 정권재창출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비서실장 한주승은 드라마 1화에서 "제가 원하는 것은 대통령님이 상처입지 않는 것"이고 "나라, 역사 어떤 것도 대통령님보다 더 중요하다고 저한테 강요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한주승은 이후에 여러 번 "국민이 양대통령의 선의를 비웃었다"고 생각한다. 양진만 대통령 임기 동안 정부 지지율이 낮았다는 사실을 한주승은 자신의 인생을 다 바쳤지만 결국 실패한 결과라고 받아들인다. 그는 "성급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에게 민주주의자는 과분하다"고 말하고, 그런 사람들에게는 멋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오영석같은 리더가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국회의사당 테러를 통해 비극을 완벽하게 완성하고 더 남아 있는 실패를 피해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망했으니 당연히 계승의 여지도 없다고 여겼을 것이다.
  
 tvN 드라마 < 60일, 지정생존자 >의 한 장면

tvN 드라마 < 60일, 지정생존자 >의 한 장면 ⓒ tvN

 
정치인은 당연히 선거에 사력을 다해 임해야 한다. 지지율이 낮으면 심각한 위기다. 그렇지만 한주승의 결정은 양진만 대통령을 포함한 여당 정치인의 미래를 고려한 판단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는 정부가 겪은 상처, 우여곡절과의 절단을 택한 것이다.
 
반면 이 드라마의 주인공 박무진은 양진만 대통령이 좋은 사람이라서 한 표를 던졌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는 양진만 정부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한주승의 테러 의도에 동의하지도 않는다.
 
국회의사당 테러를 제외하면 작중에서 등장하는 가장 큰 위기는 군부 쿠데타다. 이미 드라마 초기부터 대립각을 세우면서 박무진과 관계가 틀어질대로 틀어진 이관묵 합참의장이 쿠데타 조기 진압에 나서면서 위기는 종료된다. 박무진이 이관묵을 설득하기 위해 한 말은 그가 사람을 무엇을 중심으로 바라보는지 보여주는 예이다.
 
이관묵은 박무진이 군인의 명예가 가장 중요한 자신을 모욕했음을 잊지 않고 면전에서 언급한다. 하지만 박무진은 이관묵에게 "우리 아이들에게 이 나라 군이 명예롭게 기억되길 바라실 것"이라고, "당신에겐 개인의 명예보다 대한민국의 법과 질서가 더 중요할 것"이라고 대꾸한다.
 
박무진에게 합참의장 이관묵은 권한대행과 갈등을 빚고 소외되면서 끝난 군인이 아니었다. 그는 개인의 명예보다 군의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기에, 자국민에게 총을 겨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불화를 잊고 쿠데타 진압에 나설 사람이었다. 박무진에게는 끝난 사람도 사실은 끝난 것이 아니며 그는 타인이 가진 가치를 잊지 않는다.
 
결국 이런 박무진의 사고방식은 양진만 정부를 바라보는 태도에도 이어진다. 대통령 선거 불출마를 말하는 박무진에게 한주승은 "양진만 대통령이 실패했듯이 박무진도 실패할 것"이라고 조소한다. 박무지는 여기서 양진만 대통령과 달리 자신은 실패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대신, 양진만 대통령도 실패한 것이 아니고 자신도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한다.
 
한주승은 완벽주의적인 도공처럼 잘못 만든 도자기는 깨버리는 사람이다. 문제는 그가 사람을 다루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박무진은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그 모든 과정을 역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박무진은 우여곡절이 있는 일이라도 그 과정 역시 하나의 역사로 편입된다고 보는 사람이다. 때문에 박무진에게는 지지율이 낮다고 해서, 폭발로 끝내야 할 완벽한 실패는 아니다. 또한 양진만 정부와 같은 가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시 활동한다면 양진만 대통령은 계승된 것이다.
  
 tvN 드라마 < 60일, 지정생존자 >의 한 장면

tvN 드라마 < 60일, 지정생존자 >의 한 장면 ⓒ tvN

 
한국의 정치 풍토에서 그동안 대통령이 된 사람들은 엄청난 지지와 기대를 받고 청와대에 들어갔지만 대부분 지지율 하락을 겪으며 청와대를 나와야 했다. 임기 중반이 지나면 지지자들도 분열되거나 지지를 거두기도 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결국 공적인 존재를 믿거나 따랐던 사람도 상처를 입게 된다.
 
그래도 그 모든 우여곡절이 계승되어야 하며, 역사의 일환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제작진이 남기는 말이 아닐까. 이 드라마의 주인공 박무진은 한국에서 살아가면서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을 향해 그런 평가와도 마주 설 것을 주문한다.

그런 면에서 이 드라마는 자신이 지지했던 정부가 힘을 잃는 것을 한 번이라도 바라본 지지자들에게 일종의 힐링물이면서 성장물이다. 그리고 박무진은 그 성장의 주인공이자 조력자인, 잊기 어렵고 때때로 생각날 그런 캐릭터다. 그래서 나는 이 캐릭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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