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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넘기기 아까워 아껴 읽는 책이 있다. 조해진의 신간 장편소설 <단순한 진심>이 그랬다. 나는 이미 조해진의 전작 <빛의 호위>에 매료됐는데, 이번 책 또한 이 못지 않았다.

'미군 위안부'는 머리를 떠나지 않는 화두다. 파주 용주골 '기지촌'을 탐방한 게 계기가 됐는데, 이렇게 가까운 곳에 아픈 역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게, 그렇게 무심할 수 있던 무지(無知)가 놀라웠다. 부끄러웠고 미안했다. 이후 책이나 영화 속에서 비가시화된 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해진 소설가의 <단순한 진심>도 그중 하나다. 권력은 진실을 가릴 수 있었고 역사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미군 위안부'가 역사에서 지워진 존재라면, 그들의 아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이른바 'GI 베이비'로 불리던 혼혈 아동은 대부분 미국으로 입양됐는데, 여아(女兒)가 선호됐다.

<단순한 진심>의 주인공들이 입양된 1980년대는 아동 해외 입양의 정점이었다. 아동 100명 당 1.3명이 입양될 정도였다. 입양 아동 대부분은 미혼모의 자식들이었고 입양 기록은 입양 시장에서 선호 되는 조건으로 둔갑했다(<왜 그 아이들은 한국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나> 참고).

<단순한 진심>에 등장하는 입양인 '스테파니'는 흑인 여아였고, 입양되기 전 말할 수 없는 차별과 학대를 당했다.
 
"짐작할 수 있을까요. 나처럼 생긴 아이가 1980년대에 한국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을지... 학교에서 나는 이름으로 불린 적이 없었어요. 성적수치심과 모욕감을 주는 지독한 별명들... 마음이 다치지 않고 무사히 흘러간 날이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p231)

파주 기지촌 용주골에서 만난 한 주민에게 나는 '어릴 적 혼혈 친구들을 기억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이렇게 대답했다. "애들이 많이 괴롭혔죠. '아이누꾸'나 '튀기'라고 불렀어요. 더러운 애라고 가까이하지 않았죠. 그땐 어려서..."

입양에 대한 소설을 써도 될까
 
 "단순한 진심" 책표지
 "단순한 진심" 책표지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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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은 책 속 '작가의 말'에서 '미군 위안부' 이야기를 쓰게 된 첫 인연의 고리가 입양인 제인 정 트렌카의 에세이 <피의 언어>임을 밝히고 있다.

내게 제인 정 트렌카는 그의 자전 소설 <덧없는 환영들>로 각인돼 있다. "입양이 한 사람의 존재를 완전히 돌이킬 수 없게 지워버리는 것임을 그들은 몰랐다"는 소설 속 문장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었다. 제인은 어느 날, 백인이 아닌 명백한 다른 색의 피부를 가진 자신을 의식하게 된다. 백인성과 제국에 대한 유혹은 줄기찬 노력으로 '백인 되기'를 갈망하게 했지만, 결국 허사인 것을 알기까지, 그가 경계인으로서 살아내야 했던 시간들은 혼란과 고통으로 점철됐다.

조해진은 제인 정 트렌카에게 '입양인이 아닌 사람이 입양에 대한 소설을 써도 괜찮은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때 제인이 "안 될 게 뭐 있어(why not)?" 하며 환하게 웃어 주었는데, 그것이 그가 <단순한 진심>을 쓸 수 있게 된 용기의 근원이었다고 썼다. 제인은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 입양인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단순한 진심>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존재의 기원을 끊임없이 물을 수밖에는 없는 입양인의 이야기다. 프랑스로 입양된 '문주'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그는 자신이 '문주'라 불린 것, 철로에 버려진 것을 단서로 한국을 찾는다.

강렬한 철로의 기억은 다른 기억을 소거한 채, 위험한 그곳에 고의로 버려졌다고 믿게 했다. 철로에 서 있다 달려오는 기차에 목숨을 잃을 뻔한 문주를 위기에서 구한 건, 기차를 급정거해 세웠던 기관사였다. 문주는 그를 오래오래 기억했다. 비록 누군가는 버렸지만, 누군가는 자신을 지키려 했다는 역설의 기적을.

한국에 와 머무는 동네에 어느 날 정전이 되고, 문주는 촛불 빛에 이끌려 '복희식당'으로 발걸음 하게 된다. 이곳은 문주와 복희를 연결하는 공간이다. 문주가 입양인임을 알게 되자 마치 복희를 보듯 살뜰히 보살피는 주인장 연희.

식당을 열어 놓고 돈 벌 작정이 아닌 듯 장사에 열성을 보이지 않는 까닭이 복희에 있음을 알게 되고, 문주는 짐작되는 연희의 그 마음, 복희를 그리워하고 만나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 미워지기도 한다. '그럴 걸 왜 버렸던 말인가.' 복희식당에서 무작정 복희를 기다리는 내막이 다 밝혀지지 않은 채 연희는 뇌출혈로 쓰러지고, 이후 문주는 연희를 돌보며 그 내막의 진실을 알아내게 된다.

따라서 문주가 복희식당의 연원을 아는 일과 마침내 복희와 접속하게 되는 과정은 문주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탐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연희가 복순, 복희와 대안가정을 꾸리고 꽤 오랜 시간 가족으로 지냈다는 사실과 문주가 철로에 버려진 것이 아니라는 진실을 알아내는 과정은, 그들이 엄마를 자신을 버린 사람으로 오해하며 증오했던 시간들과 화해하는 일인 동시에, 엄마 대신 자신의 존재를 지켜주었던 사람들과 뜨겁게 조우하는 일이기도 하다.

노파의 이름은 누가 찾아주나

"나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한 믿음이 그 세계를 단단히 떠받쳐 왔던" 시간들의 증거를 확인하는 입양인들. 그래서 이들은 '엄마'를 부르며 "언제까지라도 변하지 않을 저의, 진심"을 이제 전할 수 있다.
 
"마치 집단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보통의 한국인들은 기지촌이란 단어를 좀처럼 입에 올리지 않았다고 해요... 기지촌은 한국인들에게 성적인 뉘앙스뿐 아니라 강대국에 대한 굴욕감을 줬기 때문에 더더욱 은폐되었다고 하더라구요..." (p180)
 
문주와 복희의 여정에 거칠게 등장하는 연희의 친구 '노파'. 한때 '미군 위안부'였던 그를 그저 한 '노파'로 호명한 것은, <단순한 진심>이 등장인물들의 이름의 뜻을 전하는 일에 공을 들이는 것과 대비되며, '미군 위안부'의 익명성을 상징하고 있다.

역사 속에 소거된 채, 기억되지 않는 존재들인 미군위안부들은, 폐지와 고물을 주어 하루하루를 연장하는 비참한 신세의 '노파', 죽어도 자신의 몸뚱이 하나 처리해줄 이 없는 고독한 존재인 '노파'로 남아있는 것이다. 개발 독재 시절, 대한민국에 달러의 화수분으로 헌신했던 젊었던 시간들은 온데간데없고, 이제 냄새나고 흉한 몰골로 모두에게 외면당하는 처지가 '노파'라는 익명에 신산하게 묻어나고 있지 않은가.

<단순한 진심>은 이름 찾기의 기록이기도 하다. 주인공 나는 머물렀던 곳마다 달리 불렸다. 문주, 박에스더 그리고 나나. 그 뜻을 새롭게 획득한 '문주', 무늬 '문'에 우주 '주', '우주의 무늬'라는 이름은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였던 자신을 복원시킨다.

스테파니는 자신의 생명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 분투했던 두 엄마의 '진심', 복되게 잘 살기를 기원한 마음이' 복희'라는 이름 속에 간직돼 있음을 깨닫고, 버려두었던 복희를 부활시킨다. "우리 모두의 이름은 언젠가 한 존재가 타인을 위해 진심을 담아 건넨 최초의 말"이다.

그렇다면, 아이의 존재에 '진심'을 담아 평안을 빌었던 엄마들, 이제는 그저 '노파'로 불리는 저 여인들의 이름은 누가 찾아내 불러주어야 하는 걸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단순한 진심

조해진 (지은이), 민음사(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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