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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역 앞 세브란스 병원, 전화로 뼈대만 남았다(1950. 11. 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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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변에 성조기를 꽂았지만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이후 역전된 국군과 유엔군은 그 분위기를 타고 계속 북진했다. 38도선을 돌파하고 마침내 평양을 손아귀에 넣었다. 11월 하순에는 압록강변에다가 성조기를 꽂았다. 그 무렵 국군과 유엔군은 전쟁을 곧장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꿈에 부풀었다.
하지만 그 감격은 잠시뿐이었다. 중국군은 한국전쟁에 이미 참전 준비를 마치고 공격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중국군은 10월 25일부터 한국전쟁에 참전해 공세작전을 펼쳤다. 압록강을 넘어온 중국군은 험준한 산맥을 은밀히 타고 남진해 왔다. 중국군의 제1차 공세는 국군과 유엔군의 더 이상 진격을 멈추게 했다. 이로써 맥아더의 추수감사절 공세는 예상치 못한 중국군의 개입에 따라 실패로 돌아갔다.
맥아더는 추수감사절 공세에 앞서 미군 장병들에게 "크리스마스 이전에 일본으로 돌아갈 것입니다"라고 사기를 복돋우는 말을 했으나 곧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이번 회는 1950년 11월 중하순 당시 NARA 소장 사진들로 엮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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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남, 정미소 노동자들이 도정한 쌀을 가마니에 담고 있다(1950. 11.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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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7사단 장병들이 국경지대인 압록강까지 진격하고 있다(1950. 11. 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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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경도 갑산 압록강변, 전화에 잿더미가 되었다(1950. 11. 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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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7사단 17연대 장병들이 혜산진 압록강 강변에다 성조기를 꽂고 있다(1950. 11. 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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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흥, 시내 변두리의 한 길거리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팔고 있다(1950. 11. 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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