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기> 포스터

<메기> 포스터 ⓒ (주)엣나인필름 , CGV 아트하우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4관왕을 기록하며 화제의 중심에 섰던 영화 <메기>가 약 1년여의 기다림 끝에 관객들과 정식으로 만나게 되었다.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선보이는 이 작품은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피어나는 '의심'을 소재로 삼고 있다.
 
작품은 의심스러운 다양한 상황을 설정해 재미를 선사한다. 마리아 사랑병원은 한 장의 사진으로 발칵 뒤집힌다. 남녀의 정사가 담긴 엑스레이 사진은 병원 내에서 큰 화제가 된다. 간호사 윤영(이주영 분)은 집으로 이 사진을 가져오고 남자친구 성원(구교환 분)은 이 사진의 주인이 자신과 윤영 같다고 말한다. 이에 윤영은 사직서를 낼 결심을 한다. 하지만 다음 날 윤영과 부원장 경진(문소리 분)을 제외한 직원 전부가 병원에 출근하지 않는 일이 발생한다.
 
두 사람은 전화를 돌리고 직원들은 갖가지 질병을 이유로 든다. 하지만 경진은 분명 엑스레이 사진의 정체가 자신일 것이라는 생각에 직원들이 병원을 그만 둘 생각으로 나오지 않는 것이라 의심한다. 이에 윤영은 한 가지 제안을 한다. 두 명의 직원을 정해 직접 방문해서 확인해 보자고 말이다. 의심과 믿음 사이에 대한 고민이 담긴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세 가지 핵심적인 소재를 통해 여러 에피소드들을 응집력 있게 묶어낸다.
 <메기> 스틸컷

<메기>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 CGV 아트하우스

 
첫 번째는 엑스레이이다. 영화는 도입부에서 우주를 보고 싶으면 나사(NASA) 대신 병원의 엑스레이실을 향하면 된다고 말한다. 엑스레이로 찍은 인간의 몸이 우주라는 이 영화의 주장은 다소 허무맹랑하게 느껴지기도 하다. 이런 주장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을 떠올리게 만든다. 인간이 의심과 믿음을 반복하는 이유는 그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윤영은 함께 동거 중인 남자친구 성원을 완벽하게 믿을 수 없다. 자신이 몰랐던 그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는 주변의 말에 성원을 향한 신뢰가 흔들리고 매일 함께 아침을 맞이할 만큼 가깝게 지냈던 사람이 맞는지 의심하게 된다. 이는 성원 역시 마찬가지다. 커플링을 잃어버린 성원은 그 범인으로 함께 일하는 동생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런 의심은 그 사람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우주와 같이 무한한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런 마음은 이유 없는 의심과 믿음을 낳게 된다. 엑스레이 사진 한 장에 병원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진의 주인이 아닐까 의심하게 되고 근거나 실체 없이 자신의 사진이라 믿게 된다. 의심과 믿음이 반복되는 과정은 끝없는 우주를 탐험하는 기분을 준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정처 없이 떠도는 방황처럼 명확한 답도 실체도 없는 '무언가'에 대해 의심과 믿음을 반복하며 인간관계에서 피어나는 의심을 조명한다.
  
 <메기> 스틸컷

<메기>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 CGV 아트하우스

 
두 번째는 구덩이다. 작품에는 '구덩이에 빠지면 가장 먼저 할 일은 구덩이를 파는 게 아니라 빠져나오는 것이다'라는 문구가 다양한 형태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영화는 싱크홀 현상을 보여주며 구덩이가 지닌 상징적인 의미를 강조한다. 여기서의 구덩이는 의심의 늪을 말한다. 윤영은 세탁소 주인이 환자복을 골라서 빨래했다고 의심하는데, 이 장면에서 해당 문구가 종이에 적혀서 처음 등장한다.
 
의심의 늪은 끝이 없다. 그 실체가 없기에 끊임없이 구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윤영이 처음 성원을 의심했을 때 경진은 직접 성원에게 그 문제에 대해 물어보라 말한다. 하지만 윤영은 성원에게 직접 묻지 않는다. 이는 두려움의 감정에서 비롯된다. 혹시 그 의심이 맞을까 하는 두려움에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회피한다. 하지만 이런 회피는 점점 더 구덩이를 파게 만든다. 빨리 구덩이에서 나오지 못해 점점 더 깊게 의심이란 구덩이를 파 나가는 것이다.
 
세 번째는 메기이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메기는 내레이션 역할을 한다. 한 마디로 이 작품은 메기의 시점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작품이 메기의 시점을 택한 이유는 윤영에게 있다. 직접적인 장면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메기는 윤영이 자신과 대화를 나눈다는 점을 강조한다. 대사는 없지만 대화를 나눈다는 점은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우나기>를 연상시킨다.
  
 <메기> 스틸컷

<메기>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 CGV 아트하우스

 
이 작품에서 주인공 야마시타는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고 그녀를 찔러 죽인 혐의로 10년 형을 선고받는다. 모범수로 가석방이 된 그는 인간에 대한 염증 때문에 인간이 아닌 오직 우나기(뱀장어)하고만 대화를 나눈다. 작품 속 메기는 관계가 지닌 의심과 믿음에 고민하고 지치는 윤영이 찾는 대상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어떠한 의심과 믿음에도 치이지 않는 메기는 제3자의 입장에서 이 기상천외한 에피소드 속 인물들의 모습을 서술한다.
 
여기에 메기가 물 밖으로 튀어오를 때 싱크홀 현상이 일어난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싱크홀은 구덩이를 만들고 이 구덩이를 채우는 건 막노동자로 일하는 성현이다. 윤영이 의심의 구덩이를 파 내려갈 때 성현이 싱크홀로 생긴 구덩이를 채운다는 점은 아이러니한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아이러니는 작품이 선보이는 특유의 시니컬하고 어두운 유머의 색을 살리는 역할을 한다.
 
<메기>는 의심과 믿음의 순간을 담아내며 진실이 닥친 순간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 다양한 에피소드를 의심이란 하나의 코드로 묶어내는 건 물론 메기를 내레이션으로 내세우는 재기발랄함을 통해 독창성과 응집성을 동시에 갖춘 완성도 있는 독특한 서사를 완성시켰다. 각각의 캐릭터의 개성을 살리는 연출은 물론 묵직한 웃음을 지닌 이 영화는 작년 부산영화제가 해낸 최고의 발견이라 할 수 있다. 26일 개봉.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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