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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제도, 유엔군들이 포로송환을 위하여 친공 및 반공포로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1953. 4. 13.).
 거제도, 유엔군들이 포로송환을 위하여 친공 및 반공포로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1953.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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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 마지막 암초 제거

1953년 3월에 스탈린 수상이 사망했다. 그의 사망은 미소 냉전 분위기를 완화시켰다. 중국 역시 내전을 마친 지 1년 만에 한국전쟁에 참전한 터라 피폐한 국내 사정은 마냥 전쟁을 오랫동안 끌게 할 수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1953년 5월, 공산군 측은 유엔군 측의 주장을 반영한 포로교환 수정안을 제시했다. 그 수정안은 본국 송환을 원치 않는 포로는 중립국 포로송환위원회에 넘겨 처리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수정안이 체결됨으로써 비로소 정전회담의 최대 난제였던 포로 송환문제가 해결될 실마리가 보였다.

그런 가운데 1953년 6월 18일 밤, 이승만 대통령은 일방으로 반공포로를 석방하는 조치를 내렸다. 이 대통령의 명령으로 전국 포로수용소에서 약 2만7000여 명에 이르는 반공포로들은 갑자기 석방됐다.

이 조치는 막 닻을 내리려던 정전협정회담에 새로운 암초로 떠올랐다. 하지만 정전협정회담장에 앉은 유엔군, 공산군 쌍방은 더 이상 전쟁을 지속키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돌발사태에 유엔군 측은 서둘러 국군이 정전협정을 준수하도록 보장하겠다고 공산군 측에 확약함으로써 마지막 암초는 곧 제거됐다. 마침내 지루했던 장마처럼 질금질금 끌던 정전협정은 체결될 기미를 보였다. 하지만 회담장 분위기는 여전히 살얼음판이었다.

이번 회는 1953년 1~6월의 한국전쟁 NARA 소장 사진으로 엮었다.
 
 미 전투기의 폭격 장면(1953. 1. 11.).
 미 전투기의 폭격 장면(1953. 1. 11.).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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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엔군들이 최전방 참호에서 경계근무를 교대하고 있다(1953. 1. 22.).
 유엔군들이 최전방 참호에서 경계근무를 교대하고 있다(1953.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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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엔군 측 정전회담 실무자들(가운데 미 해군 다니엘 제독, 1953. 4. 6.).
 유엔군 측 정전회담 실무자들(가운데 미 해군 다니엘 제독, 1953. 4. 6.).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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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문점 정전회담장 정문 공산군 측 초소(1953. 4. 6.).
 판문점 정전회담장 정문 공산군 측 초소(1953. 4. 6.).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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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엔군 측 정전회담 실무자들이 판문점 회담장으로 가는 헬기에 오르기 직전의 모습이다(1953. 4. 6.).
 유엔군 측 정전회담 실무자들이 판문점 회담장으로 가는 헬기에 오르기 직전의 모습이다(1953. 4. 6.).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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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 근해에 정박 중인 미 해군 Wisconsin 호 함상에서 미 해군 장병들의 사열을 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 근해에 정박 중인 미 해군 Wisconsin 호 함상에서 미 해군 장병들의 사열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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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해병 1사단 11연대의 제1 로켓포대가 야간 포격을 하고 있다(1953. 4. 15.).
 미 해병 1사단 11연대의 제1 로켓포대가 야간 포격을 하고 있다(1953.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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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군 포로가 막사 지을 곳에 기초공사를 하고 있다(1953. 4. 16.).
 중국군 포로가 막사 지을 곳에 기초공사를 하고 있다(1953.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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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 해리슨 장군이 기자들에게 정전회담 상황을 브리핑하고 있다(1953. 5. 13.).
 미군 해리슨 장군이 기자들에게 정전회담 상황을 브리핑하고 있다(1953.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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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정전반대 시위 대열이 부산역 앞을 지나가고 있다(1953. 6. 13.).
 부산, 정전반대 시위 대열이 부산역 앞을 지나가고 있다(1953.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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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 중, 총탄과 포연을 뚫고 피란민과 군수물자를 숱하게 날랐던 증기기관차(1953. 6. 24.).
 한국전쟁 중, 총탄과 포연을 뚫고 피란민과 군수물자를 숱하게 날랐던 증기기관차(1953.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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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정전반대 시위학생들과 대치한 미8군 헌병들(1953. 6.).
 서울, 정전반대 시위학생들과 대치한 미8군 헌병들(195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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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박도 기자의 NARA 앨범 ]은 45회로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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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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