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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1일 '다다익선' 복원 관련 국립현대미술관 기자간담회, 발표하는 박미화 학예연구관.
 지난 9월 11일 "다다익선" 복원 관련 국립현대미술관 기자간담회, 발표하는 박미화 학예연구관.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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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은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2018년 2월부터 가동 중단된 '다다익선'을 전격적으로 복원하겠다고 발표했다. 2022년까지 복원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예산은 약 30억 정도란다. 오래간만에 반가운 소식이다.

국민 대다수가 88년에 만들어진 다다익선을 백남준 대표작으로 꼽는다. 모니터 1003대(개천절에 유래)가 들어간 높이 18.5m의 작품이다. 이 규모는 보통 작품의 수백 배가 된다. 세계에서 가장 큰 작품이다. 다다익선 없는 국립현대미술관은 상상할 수 없다.

정준모 전 국립미술관 학예실장은 "다다익선은 전 세계적으로 기념비적인 작품이고, 미술사적 가치와 미술관의 가치를 견인하는 작품이기에 무조건 보존돼야 한다"고 했다. 독일, 일본, 미국에서 백남준을 자기 나라 작가라고 우기는데 우리가 이 작품을 잘 지켜야 한다.

기자간담회에서 박미화 학예연구관은 그 복원에서 'CRT(브라운관)' 위주로 방향을 잡았다고 설명이다. LCD, OLED, Micro LED 등 신기술은 활용한다고 하나 그 의지는 약해 보인다. 미술관 측 입장은 과거나 지금이나 같다. 좀 비싸긴 해도 CRT 장점을 살릴 수 있는 OLED 방식도 있다. 3년 후면 많이 변할 텐데 길게 봐야 한다.
 
1988년 9월 15일 다다익선 작품 제막식 사진. 당시 이경성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왼쪽)과 백남준
 1988년 9월 15일 다다익선 작품 제막식 사진. 당시 이경성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왼쪽)과 백남준
ⓒ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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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익선은 1988년부터 2014년까지 부분적 교체가 있었지만 25년간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2014년부터 CRT가 단종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최근 수리 경과를 보면 2014년, 2015년에 수리하고, 2018년에 2월부터는 아예 가동이 중단되었다. 이건 CRT의 한계다.

나는 이런 분야에 문외한이라 거의 20년간 백남준과 함께 동고동락한 이정성 전문기술자에게 전화를 해 이번 수리 방식에 조언을 구했다. 가장 중요한 건 임시방편식이 아닌 30년간 지속 가능한 방식인 LCD, LED 등으로 가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다다익선에 CRT를 쓸 경우, 6인지·10인치·14인치·20인치·25인지 등 모니터 크기가 달라 다 구색 갖추기 어렵고 부품 맞추기도 힘들단다. CRT는 비현실적이라는 결론이다. 요즘은 LCD라운드 방식도 나와 옛 모양도 유지할 수 있단다.

또 신모니터를 쓰면 전기세 3분의 1로 줄고, 무게도 가볍고, 수명도 훨씬 길다. 가격도 싸고 에어컨 작동 등 유지비가 안 든단다. 좋은 방안이 있는데 왜 비능률 선택을 하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미술관 측은 색발광에서 문제가 있고 4:3 크기를 보장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시대성은 '모니터'가 아니라 '콘텐츠'에 
 
1987년 백남준과 김원 건축가가 다다익선 설계방식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
 1987년 백남준과 김원 건축가가 다다익선 설계방식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
ⓒ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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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박미화 학예연구관이 CRT 모니터가 시대성을 반영하는 매체라 유지돼야 한다는 강조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 다다익선의 시대성은 그 모니터 모양에 있는 게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콘텐츠에 있다. 즉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백남준과 함께 다다익선의 구조를 설계한 김원 건축가도 미술관 측과 인터뷰에서 "백남준에게 모니터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비디오 안에 88올림픽 임춘애나 머스 커닝햄의 춤 등 콘텐츠가 중요했다"고 전했다. 백남준은 당시 시대성을 증언하는 콘텐츠를 중시한 것 같다.

이 작품의 시대성은 다른 면으로 보면 서울올림픽으로 무명의 한국이 전 세계 무대에 처음 데뷔했다는 점과 사회주의권이 발전한 서울을 보고 무너졌다는 점이다. 또한, 이 작품은 백남준 위성아트 3부작 '손에 손잡고(Wrap around the World)'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여기서 중요한 시대성은 바로 백남준이 '인류 공존과 세계 평화'의 정신을 담고자 했다는 사실이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이야기를 자유로운 영상으로 푼 백남준의 '서울 랩소디(LCD 280개, 2001년) 화면이 밝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이야기를 자유로운 영상으로 푼 백남준의 "서울 랩소디(LCD 280개, 2001년) 화면이 밝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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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역할은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라고 백남준은 말했다. 그는 미래를 내다본 사람이다. 백남준은 모니터 생명이 7만~8만 시간이라는 것과 전자제품은 20~30년 지나면 고장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정성 기술자에게 AS조치할 수 있는 '전권위임'을 문서(아래)로 남겼다. 백남준도 생전에 서울시립미술관 '서울랩소디'를 작업할 때도 LCD를 썼다.

이번 기자회견 때 국립미술관은 이정성 기술자를 초대하지 않았다. 대신 윤양수 작품보존미술은행관리과장이 나왔다. 다다익선 수리권은 공적으로 백남준의 위임권을 받은 이정성 기술자에 있다. 그는 백남준 작품을 미국 기술자가 못 고칠 때 현장에 가서 고친 분이다. 

외국 백남준 작품 복원의 사례

외국의 백남준 작품 복원 사례를 좀 보자. 지금 80년대부터 독일에서 백남준 작품을 복원수리하는 요헨 자우어라커가 미술관 초청으로 한국에 와 있다. 이분은 이정성 기술자와도 오랜 친구다. 미국과 일본은 전자작품 수리하는 데 있어 신모니터를 선호하는데 반해 독일은 CRT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분도 그렇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CRT를 구입할 수 있단다.

자우어라커는 2년간(2016~2018) 백남준 작품 '하늘을 나는 물고기'를 CRT로 복원했다.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팔라스트미술관' 소장품이다. 국립은 이를 CRT 성공사례로 들었지만 이건 모니터가 88대밖에 안 되고 구조도 단순하다. 1003대 다다익선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다다익선은 모니터 종류만 해도 5개가 넘고 부속품과 시스템이 훨씬 더 복잡하다.

또한 다다익선 복원 기간도 외국 사례에 비해 매우 짧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커뮤니케이션박물관 소장품인 '프리벨맨(Pre Bell Man)'은 다다익선에 비해 소품이나 이것 하나 복원하는 데도 7년 걸렸다. 백남준 전문가 헤르조겐라트 박사 외에도 5명 박사가 참여했다. 그런데 이게 세계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건 21세기 인간형 '디지털 노마드' 상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올해 미국 휘트니미술관 소장품 '세기말(207개 모니터)'도 복원에 2012년부터 2018년까지 7년 걸렸다. 이 작품은 미국판 '다다익선(1989년)'이다. 8명의 기술자와 작가를 전담으로 배치했다. 여기서는 혼합형 신구 모니터를 썼다. 97대는 CRT와 110대는 LCD로 복원했다.

소모품 쓰는 전자아트 업그레이드 당연
 
1993 휘트니비엔날레 서울 관람권 김달진 미술자료 박물관
 1993 휘트니비엔날레 서울 관람권 김달진 미술자료 박물관
ⓒ 김달진자료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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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이 다다익선을 잘 보전해야 하는 이유가 많지만 그중 하나 더 추가된다. 왜냐하면 국립현대미술관이 백남준에게 '25만 달러(약 3억)'를 빚졌기 때문이다. 무슨 소리인가?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받은 백남준은 1993년 뉴욕 첨단의 '휘트니비엔날레'를 직수입해서 과천에서 순회전을 열었다. 당시 국립미술관에서 예산이 없다고 하자 백남준이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받는 '상금 3억(현 시가 10억?)'을 기부했다. 당시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다.

"1982년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백남준 회고전을 대대적으로 열었다. 그 이후 백남준은 미국에서 세계적 반열에 올랐다. 그래서 11년 후 1993년 휘트니비엔날레를 통째로 한국에 들여왔다. 국립미술관 예산이 부족하자, 백남준이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으로 받은 상금 포함한 사비 등 25만 달러(약 3억)를 휘트니비엔날레 서울순회전에 털어넣었다."

다다익선 전시가 2년간 중단된 동안 미술관은 독일 ZKM, 미국 모마, 휘트니미술관 관계자 40여 명의 사례를 조사했고, 전문가 자문도 받았다. 그 내용을 책자로 냈다. 그 중 난 아래 김홍희 선생의 자문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서울시립미술관장이었던 그녀는 현재 백남준문화재단이사장이다. 1980년 뉴욕 첼시 키친센터에서 백남준을 처음 만나 활동한 백남준전문가다.

"남준의 '다다익선'과 같이 구형 모니터가 대거 파손되고 더이상 교체할 모니터를 구하기 힘들 경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동일한 모델이나 유사모델을 찾아 대체하려는 비현실적 시도보다는 대체 가능한 신재료나 기술을 작품을 살리고 영구 보존이 가능토록 노력해야 한다. 비디오아트는 일종의 개념미술로 소프트웨어나 이미지가 작품의 핵심을 이룬다.

백남준도 "기계도 수명이 있는 하나의 생명체와 같다. 모니터 몇 개 망가져도 새것으로 교체하면 된다. 작품도 기술발달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남준의 작품 철학을 반영해 LED, LCD 모니터로 교체 신방식을 도입하는 게 과거 원형복구보다 '상책'이다. 최적의 방법으로 다다익선을 살려 후대에게 유산으로 물려주는 게 '국립현대미술관의 역할'이다."

 
2003년 2월 6일 백남준, 이정성씨에게 보낸 팩스
다다익선 수리전권을 위임하다
 
백남준이 이정성기술자에게 준 '다다익선' 수리전권위임장
 백남준이 이정성기술자에게 준 "다다익선" 수리전권위임장
ⓒ 이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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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 https://www.mmca.go.kr/main.do


태그:#백남준 , #다다익선, #CRT , #LCD(LED), #이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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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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