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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편에서 이어집니다.)

미국에서 지내며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전통에 대해 돌아보게 된 그녀는 자신이 고국에 돌아가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보다 분명히 자각하게 됐다.

"한국에서 유학 갈 때, 전부 백남준처럼 될 거라고 생각하고 갔다가 뿌리를 못 내리고 수초처럼 떠다니는 국제 미아를 많이 봤어요. 저는 서른 후반에 어느 정도 제 세계가 갖춰진 다음에 갔으니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미국이라는 나라에 간 것이 저에게는 큰 인생의 변곡점이 됐죠.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인가도 인식하게 됐고요. 그래서 돌아올 때는 굉장히 겸손해졌어요. 화단의 많은 작가들이 서양화를 흉내만 내고 있어요. 그건 광대지, 예술가가 아니잖아요?

진짜 뿌리는 우리의 자생성에 둬야죠. 그 뿌리를 자양분으로 온전히 흡수하고, 우리만의 진짜 문화를 꽃피워야 세계적인 위치를 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에 돌아가면 '뭘 해야 할까?'에 대해 숭고한 감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깊이 생각하게 됐고, 작가로서 어떤 길을 가야 하나 고민했죠.

결국 저 같은 사람이 한국 미술사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자문했을 때, 우리 전통문화를 되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기여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거예요. 그리고 그때 절실히 생각한 게 '다음 세대들이 우리보다 더 큰 나무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게 국가를 위한 길이겠다!'는 거였어요. 외국 가면 애국자가 된다는 걸, 정말 뼈저리게 느낀 거죠."
 
 정종미 한국화가
 정종미 한국화가
ⓒ 종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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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미술사는 주로 표현기법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고, 그림을 이루는 재료기법, 물질에 대한 내용은 거의 다뤄지지 않던 시절이었다. 정 교수는 한국채색화가 발전하려면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책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틈틈이 연구하고 실험하며, 그동안 수집한 자료와 데이터를 번역하고 적용했던 8년의 시간 끝에 그녀의 저서인 <우리그림의 색과 칠>이 드디어 세상에 빛을 보게 된다.

"그림의 근본은 '물질'이거든요. 그래서 재료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좋은 그림을 그릴 수가 없어요. 때문에 콩즙, 연지, 황벽, 황토, 쪽 오리나무 등 다양한 자연 재료들을 연구했죠. 콩즙 같은 경우는 일랑 이종상 선생님이 대학교 3학년 때 수업 시간에 말씀을 하셔서 알게 됐어요. 무당들이 굿을 할 때 장판지 같은 그림을 깔고 굿을 하는데, 물을 막 뿌리고 그래도 멀쩡하다고 하신 이야기가 흥미로웠죠.

민간에서는 소를 한 마리 잡아야 아교(阿膠)가 나오니까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전색제(展色劑)로 콩즙을 사용한 거예요. 그 이야기가 떠올라 콩즙을 써봐야겠다 싶었어요. 시행착오를 많이 거쳐서 장판지 같은 느낌의 그림을 완성했는데, 전시회에 오신 분들이 그림을 보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하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오랫동안 장판지 생활을 해온 우리의 DNA 안에 아직도 이런 것이 남아 있다는 증표죠."

정 교수는 그런 DNA 속 감성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우리 문화의 자존감을 찾아내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자연 재료는 시간이 축적되면서 그 색이 더욱 아름다워진다. 가장 황홀했던 색으로 쪽과 황벽의 푸른색과 노란색을 꼽는 그녀는 색의 아름다움에 도취돼 밤을 새가며 작업에 매진할 때도 있었다고 회고한다.
 
여성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작품을 그리다


아름다운 자연의 색을 한지에 입히고 여기에 여성성을 더해 탄생한 '종이부인' 시리즈, 그리고 그에 실존 인물을 표현한 '역사 속의 종이부인'과 하나의 의례행위라고 할 수 있는 '여성성에 바치는 헌사' 시리즈는 정 교수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를 비롯한 많은 여성들을 관찰하면서 이들이 공통적으로 강인한 포용력과 인내심, 관용정신을 지니고 있음을 느끼게 됐어요.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올까? 생각해보니 '모든 여성은 내면에 부처를 지니고 있구나.' 하고 결론짓게 되었죠.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한지가 가장 질기면서도 가장 부드러운 최고의 종이라는 것을 알게 됐는데, 이 점이 한국의 여성성과 흡사해서 작품에 활용하게 됐어요. 명성황후, 허난설헌, 황진이, 논개, 신사임당 등을 표현한 '역사 속의 종이부인'에 힘겨운 삶을 살다 간 여성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진혼(鎭魂)의 의미를 담았습니다."
 
 정종미 화가 작품 <Budda in Women>
 정종미 화가 작품
ⓒ 종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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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교수는 지난 2001년 이중섭미술상을 2012년에는 이인성미술상을 수상하면서 그 실력과 기여도를 인정받았다. 여성작가로서 이중섭미술상 수상은 두 번째, 이인성미술상은 최초였다는 점도 놀랍지만, 한국 화가이자 여성 화가로서의 수상은 우리 화단에도 큰 족적을 남길 정도로 큰 성과였다.

"이제는 전통 문화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해요. 뿌리를 알지 못하면 굳건해지지 못하거든요. 지금 방탄소년단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데 K-pop뿐만 아니라 기초문화에 대한 집중적인 조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도 최근에는 학생들의 의식도 좀 바뀌고 있는 것 같아서 희망적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금방 뜨고, 반짝거리고, 유명해질까를 고민하는 시대 속에서 그녀는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은근한 빛을 발할 수 있으려면 내공을 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가치를 정확히 알고 표현할 때 비로소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을 제대로 알려면, 기본적으로 인문적 소양을 갖춰야 하고요. 아이디어 하나를 내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꾸준함, 성실함, 우둔함 이런 자세를 가지는 게,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오랜 시간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온 만큼, 그녀의 향후 계획도 사뭇 구체적이고 다양하다.
 
  <Budda in Women> 작품 앞에 선 정종미 화가
  작품 앞에 선 정종미 화가
ⓒ 종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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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이 살았던 집터가 바로 저희 집 옆이거든요. 인왕산이든 인왕문화든 그걸 주제로 전시를 하나 만들어 보고 싶어요. 제가 보기에는 겸재가 여기 살 때 그때 당시 평론가였던 강세황이나 김홍도, 신윤복 이런 사람들이 여기서 많이 놀고 그림을 많이 그렸던 것 같거든요. 말하자면 진경산수의 산실인데 지금 남아 있는 그림들을 보고 지금 이 동네의 현장과 연계 시키는 그런 작업을 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관공서에서도 나서서 그런 의미를 부각시킬 수 있는 행정적인 지원을 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미술사를 공부한 인문학자와 함께 과거에 살았던 작가들이 여기서 무엇을 했고, 그 활동들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조사해서 의미를 부여해 주면,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거죠. 그러면 그냥 인왕산이 아니라 역사적인 가치를 가진 인왕산을 그릴 수 있게 되지 않겠어요?"

정 교수는 우선 자신의 갤러리 '페이퍼 하우스'를 한국 전통 회화의 맥을 잇고 한국화를 부활시키는 장소로 활용할 계획이다. 조만간 한국화 작가들 중 작품이 좋은 30, 40대 작가들의 전시를 개최하고, 지역 문화 활성화를 위한 시 낭독회 등 문화 행사도 마련할 예정이다. 그녀의 확고한 신념과 오랜 집념이 있기에 우리 전통문화의 빛나는 미래가 더욱 선명하게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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