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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SBS 드라마 <닥터탐정>이 끝났다. 드라마는 미확진질환센터(Undiagnosed Disease Center, 이하 UDC)라는 가상의 기관에서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이 마치 탐정처럼 각종 직업병을 찾아내는 이야기다. 그동안 메디컬 드라마는 주로 흉부외과, 외상외과, 응급의학과, 내과와 같이 드라마적 요소가 있는 임상과나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법의학 드라마 정도가 주류를 이루었다. 직업병을 진단하는 직업환경의학과를 다룬 드라마는 <닥터탐정>이 최초였기 때문에 직업환경의학과를 포함한 산업보건 분야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더구나 UDC처럼 업무상 질병 역학조사(이하 역학조사)를 수행하고 있는 나와 직장 동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드라마는 수은중독으로 사망한 문송면군의 장례식이 치러진 날로부터 정확히 31년이 지난 7월 19일 첫 방송을 시작했다. 드라마의 첫 장면은 주인공 박진희(도중은 역)가 어느 어두운 공장 안으로 들어가 성냥개비 1개를 켠 후 몇 분 만에 공장 내 급식 노동자에서 발생한 자외선 노출 피부질환을 밝혀내는 장면이었다. <닥터하우스>나 <싸인>과 같은 메디컬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멋있었다. 산재 노동자의 아들이면서 UDC의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인 봉태규(허민기 역) 역시 천재적인 추리 능력과 병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위장 취업까지 불사하는 열정이 가득했다. UDC의 창시자인 박지영(공일순 역)은 노동 현장의 재해가 없어져 직업환경의학과가 사라지는 것이 인생 목표일 정도로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뭉친 전문가의 모습으로 나왔다. 이들을 중심으로 이영진(변정호 역), 정강희(하진학 역), 후지이 미나(석진이 역) 등 UDC 연구원들은 수은 중독 청년의 스크린도어 사망, 메탄올 노출에 의한 실명, 직업성 천식, 식각가스 노출에 의한 급성 폐 손상, 사무직에서 발생한 열사병 등 직업병을 비롯한 가습기 살균제 폐질환과 같은 환경성 질환까지 끝까지 추적해 낸다. 그뿐 아니라 직업병 대부분이 자본의 극한 이윤 추구가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까지 밝혀낸다.
 
노동자가 아프고, 다치고, 죽는 이유는 노동자 개인의 문제가 아닌 일터에 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닥터탐정들의 모습 (<닥터탐정>의 한 장면)
 노동자가 아프고, 다치고, 죽는 이유는 노동자 개인의 문제가 아닌 일터에 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닥터탐정들의 모습 (<닥터탐정>의 한 장면)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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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가 끝날 때마다 나온 에필로그에서는 스크린도어 작업을 하다가 사망한 구의역 김군, 30년 전 수은중독으로 사망한 문송면과 그의 형, 이황화탄소 중독 원진레이온 피해자, 메탄올 실명 피해자 이진희,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 드라마 조연출 고 이한빛 PD,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과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졌다. 제작진과 배우들은 이들이 있었다는 것을 사회에 알리고, 재해 노동자들에게 "아픈 건 당신 탓이 아니라 일 때문입니다"라고 위로하며, 더 이상 노동 현장에서 억울하게 죽지 않고, 아프지 않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취지에 공감하며 드라마를 만들었다. <닥터탐정>은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멜로나 숨겨 놓은 자식의 등장과 같은 요소 없이, 끝판 대장인 지팡이 빌런 최광일(모성국 역)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하는 사이다 결말을 보였다.

나는 드라마 촬영이 있기 전 UDC 연구원 역할을 맡은 배우들과 제작진에게 우리나라 직업병의 역사와 직업환경연구원에서 수행했던 실제 역학조사 사례를 소개하였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드라마로서 산재 피해자의 이야기를 사회에 알려야겠다는 의지로 동료 연구원들에게 많은 질문을 한 배우들과 제작진의 열정을 잊을 수 없다. 뜨거운 여름에 직업환경연구원 실험실에서 무거운 촬영 장비를 이리저리 운반하던 제작진과 열심히 촬영에 임하였던 단역 배우들의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30년 전 문송면이 사망한 후 KBS에서는 논픽션드라마 <송면이의 서울행>을 1988년에 방영하였다. 이 드라마는 문송면이 수은 온도계 공장에 들어가 어떻게 수은에 중독되었는지, 산재 신청 과정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사실적으로 보여줌으로서 우리나라 노동보건 정책과 제도가 자리를 잡는데 크게 기여를 하였다. <닥터탐정> 역시 낮은 시청률에도 많은 사람이 드라마에 대한 공감과 호평을 하면서 시즌2에 대한 기대도 많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노동자 건강권에 대한 인식 증대와 건강한 일터를 만드는데 오래도록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도 장모님이 사위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잘 아시게 되었고, 이전보다 더 크게 지지를 해주시고 있어 뿌듯하다.
 
직업환경의학 의사에게 노동 현장은 노동자들이 왜 아프고, 다치고, 죽는지 원인을 밝히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장소이다. 탄광에서 김대호 연구원의 모습이다.
 직업환경의학 의사에게 노동 현장은 노동자들이 왜 아프고, 다치고, 죽는지 원인을 밝히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장소이다. 탄광에서 김대호 연구원의 모습이다.
ⓒ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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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가 끝나고 제작진과 배우들은 이제 다른 드라마나 영화 촬영 현장에서 일을 하겠지만, 나는 UDC 연구원들처럼 여전히 역학조사 현장에서 뛰어다니면서 질병의 원인을 찾아다니고 있다. 나의 직장인 직업환경연구원은 수사권을 가지고 노동 현장에 잠입하지는 않고, 환자를 직접 진료하지도 않으며, 재해 노동자의 장례식장에서 유족과 함께 명복을 비는 일은 없다. 하지만 UDC라는 기관이 제작진, 배우, 시청자의 기대가 녹아있었던 가상 기관이라는 점에서 <닥터탐정>은 우리 기관의 지향점과 방향성에 대해 많은 무언의 조언을 하였다. 우리 기관뿐만 아니라 노동자에게도 노동 현장의 재해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산재 은폐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산재 노동자들에 대한 무슨 오해가 있는지, 이들에 대한 연대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매회 이야기 했다.

<닥터탐정>은 끝났지만 아직 안 보신 분들에게 다시 보기를 부탁드린다. 산업보건 관련 전문가에게도 역시 훌륭한 교육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많은 영상들이 있으니 꼭 다시 보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근로복지공단 직업환경연구원 연구위원 김대호 님이 작성하셨습니다. 또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에도 연재됩니다.


태그:#닥터탐정, #산업재해, #직업환경의학과, #노동자건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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