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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기사]
십여년 전 특목고에서 '스펙쌓기' 돕던 교사였습니다 http://omn.kr/1ks52
검사님들, 다른 봉사활동은 기소 안하시나요? http://omn.kr/1kt68

그 촛불 아직 끄지 마세요, 이제 '교육의 시간'입니다

"특히 교육 분야의 개혁을 강력히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 포함 6명의 신임 장관을 임명한 뒤 대통령이 발표한 대국민 메시지에서 제게 가장 의미있게 다가온 것은 마지막 문장이었습니다. 이전에도 청와대는 같은 입장을 표명했고 교육부도 의지를 다진 바 있지만, 다시 한 번 '교육 개혁'에 방점을 찍어주니 참 다행이었습니다.

십여년 전 한 특목고에서 교육받고 대학과 전문대학원에 진학한 특정인은 최근 지대한 관심을 받아왔습니다. 관심의 이면엔 그가 '그런 학생'은 아니었을까, 그의 부모가 '그런 학부모'는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난데없이 부끄러운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사회가 '그와 그의 부모'만이 아니라 '그와 그의 부모가 속했던 당시의 교육', 나아가 '지금과 앞으로의 교육'에 보다 주목하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글솜씨 탓에 제 글들이 '그 땐 모두가 부정했다, 모두 조사하고 모두의 입학을 취소해라'라거나 '특목고, 자사고 등 비일반고의 교육은 모두 부정하다', '정시전형이 정답이다' 등으로 비친 측면도 있은 듯해, 주제넘게 제가 생각하는 대안을 담은 마지막 사족을 덧붙입니다.

'잘나가는 엄마‧아빠'가 아니어도 괜찮아

흔히 '학종'이라 불리는 비시험전형의 원형일 수 있는 수시전형과 입학사정관제. 그 초기엔 말씀드렸듯 제도가 왜곡되는 문제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여러 교육주체들의 노력으로 이는 꾸준히 개선되어 왔습니다. 제가 교단에 남아 있을 때에도, 말씀드린 모의재판 대회와 같이 전문직 부모의 개입이 의심될 수 있는 외부 대회의 수상기록 대입 반영 폭이 점차 줄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지금은 아예 그 수상내역을 학생부에 입력조차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또, '판사 엄마' 사건 이후로는 비슷하지만 다르게 모의재판 활동을 지도했습니다. 교내 모의재판대회를 열면서 법무부 솔로몬센터의 '학교 변호사 신청' 제도를 활용했는데(지금도 그 이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학교의 누구와도 연고 없는, 법무부에서 보내준 한 변호사님은 몇 시간 동안 아이들의 경연을 참관하고 세세히 심사평을 해주신 뒤 공정하게 수상자들을 결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감사의 마음을 담은 작은 봉투를 드렸을 때 그 분이 쿨하게 거절하며 남기신 말씀은, "법무부에서 차비 줍니다. 그걸로 애들과 짜장면 드세요. 오히려 제가 더 즐거웠네요"였습니다. 또 최근엔 관련 대회를 위해 지역마다 로스쿨생들이 인근 학교 아이들을 도와주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9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열린 '조국 교수 법무부장관직 자진 사퇴 촉구 제3차 서울대인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정문까지 행진을 하고 있다.
 9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열린 "조국 교수 법무부장관직 자진 사퇴 촉구 제3차 서울대인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정문까지 행진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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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의 경우도, 이제는 대학교수 등과 작업한 논문은 학생부에 아예 입력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한 자사고에 계신 예전 동료 선생님은, '우리학교엔 논문 제1저자들이 넘쳐난다'고 하십니다. 인근 대학생들이 자원봉사활동으로 논문작성을 도와주는데, 그렇게 팀별로 아이들 스스로 논문을 쓰니 모든 논문들의 '제1 저자'는 당연히 아이들이 된다는 겁니다.

이처럼 '나의 엄마, 아빠'가 아니어도 지역사회의 전문가나 대학생‧대학원생들을 통해 아이들이 교과서를 넘어 다양한 분야에 관한 살아있는 공부를 할 수 있으면서도 '부모의 사회적 지위, 소득 수준'에 따른 차별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하는 장치들이 고안되고 가동되어 왔습니다. 학교 교육과 대학의 선발기준이 '보다 학교생활 중심으로' 방향을 옮겨왔고, 아직 남아있는 위험요소들을 제거하기 위해 많은 분들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하고 계십니다.

'스펙'이 안된대도 괜찮아

개선노력과 별개로 입학사정관제와 같은 비시험전형의 장점 그 자체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십여년 전 입학사정관제가 추구한 '다양한 학생 활동'은 수능, 내신, 논술만으로도 힘겨운 아이들에게 스펙까지 요구하며 '죽음의 다이아몬드'로 불렸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 이를 버거워하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활동을 즐거워하는 아이들, 새로운 입시전형에 적합한 아이들도 또 많았습니다.

언젠가 야간자율학습시간을 맞추느라 밤 10시에 교내토론대회를 열었을 때 늦은 시각에도 해당 학년의 상당수가 참석했습니다. 스펙만 생각한다면 참가팀들만 참석하면 될 일이거늘 아이들은 친구들의 토론을 지켜보고 참석자로서 질문하는 그 시간을 의미있게 여기는 듯 했습니다. 저는 문제집만 풀며 대입을 준비했지만, 새로운 제도 속에서 다양한 활동들이 장려되는 가운데 이 아이들은 친구들과 고민하고 토론하고 활동하면서 '진짜 공부'를 하고 있으니 그것은 '교육적'이라 생각됐습니다.

사회과 교사였던 저는 사회과교사단체의 선생님들께서 진행하시는 '사회참여교육'을 적극 지지합니다. 참여시민의 자질은, 교과서 속 활자들을 통해서뿐 아니라 시민단체에 가입해 활동한 내역을 보고서로 작성하고 청소년의회에서 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해 보는 등의 활동 속에서 더 함양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 모임의 한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의 제자였습니다. 모임에 가입한 이유를 묻자 돌아온 답은 "제가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수행평가로 내주신 과제를 아직도 기억해요. 저도 그런 살아있는 교육을 하고 싶어 단체에 들어왔어요" 였습니다.

작은 지방학교에서 근무한 초임시절, '살아온 시간이 소설같아 삶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쓰기만 해도 작품이 되어버리곤 하던 아이'를 만난 일이 있습니다. 아이는 수업이 끝나면 야간자율학습을 뒤로 하고 집으로 곧장 달려갔습니다. 경운기 몰며 농사 짓고 살림을 하기 위해.

아이의 삶과 글쓰기 재능은 놀라웠고 이는 시험점수로 평가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대학 가던 시절과 달리 아이에게 적합한 대입 전형이 있었습니다. 아이는, 여러 글쓰기 대회 등에서의 수상실적과 성실한 학교생활과 삶이 담긴 자기소개서 등을 통해 수능점수로만으론 학원 한 번 다니지 못한 그 아이가 가기 어려웠을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관련기사] '결식 교사' 부끄럽게 만든 제자, 기대됩니다 http://bit.ly/JEDWmt
  
보다 '교육적'인 비시험전형, 다만 '학교 서열화폐지'가 필수적 전제조건

이 같은 비시험전형의 '교육적' 효과를 어떻게 부정할까요. 사람이 아닌 점수만 보다 보니 학교는 시험을 위한 기관으로 전락하고 학생은 '수험기계'가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교육은 붕괴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대학이 시험 기술이 뛰어난 학생이 아니라 관련학과에 진정으로 적합한 인재를 선발할 수 있게 하는 데에 이 같은 비시험전형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험 점수만으로 상급학교 진학을 결정하는 것이 가장 공정한 대안이라고 한다면 '대치동 학원가'가 왜 우리에게 고유명사처럼 익숙한지가 설명되질 않습니다. 높은 점수를 따기 위해 보내는 비싼 학원에도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의 연결고리는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점수가 아닌 사람을 보는 교육제도, 입시제도'는 자칫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앞선 기사들에서 말씀드렸듯, 특히 입학사정관제 초기에 제도가 악용되는 문제가 있었고 저 역시 그에 가담하며 수많은 비교육적 선택을 해왔습니다. 특정 아이에게 부당할 수 있는 특혜를 주고, 아이들이 자신의 힘이 아닌 방법으로 스펙을 쌓도록 도움을 주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몸담고 있었던 그 학교에서만의 잘못은 아닐 겁니다. 당시 저의 가장 큰 잘못은 '나의 학생들만을 생각한 행동'이 다른 평범한 학교 학생들에게는 얼마나 큰 상처로 다가올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이는 비단 특정 대회에서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비단 학교에서만의 얘기도 아닙니다.

댓글로 시민들의 고백을 읽다가 또다른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잠시 교단에서 외도하여 한 언론사의 특정지면 담당기자로 있을 때의 기억이. 어느날 한 학생기자의 글을 실으라는 지시 또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여러 학생기자들의 글들 중 어느 하나를 채택한 것이 아니고 그저 그 아이의 글이 주어졌습니다. 저는 공들여 아이의 사진과 함께 글을 다듬고 실었습니다. 며칠 뒤 그 아이의 아버지께서 저희에게 식사대접을 하셨고 상품권도 주셨습니다. 제가 있던 신문사와 같은 계열의 임직원인 그 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얘는 이 쪽으로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이후 그 아이가 명문대 수시전형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네. 그 땐 제가 잘못하는 줄도 몰랐습니다. 상품권으로 친구와 영화를 봐도 죄책감이 없었습니다. 난 지금 교사가 아니니 받아도 괜찮다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 아이의 수시전형에 그 기사가 전혀 도움이 안됐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합니다. 그 언론의 계열사 임직원 자녀가 아닌 다른 학생기자들에게 있어 그것은 충분히 잘못된 일이었다고.

그런데 이와 같은 개개의 사례보다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업계의 비밀'인지 이제는 모두 아는 공공연한 사실인지 잘 모르겠지만, 십여년 전 근무하던 특목고의 동학년 선생님들과 입시지도에 필요한 정보수집차 소위 명문대 입학사정관들을 일일이 면담한 일이 있습니다. 직답을 피하는 대학들도 있어 내신 00 등급 이상, 텝스 00점 이상, 반영되는 수상기록 등과 같은 '숨겨진 진짜 기준'들을 완전히 파악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대학 입학사정관은 다행히(?) 솔직했습니다.

"00 등급도 다 괜찮아요. 우리는 이 전형에서 특목고는 최대로 받으니까 안심하고 우리 대학으로 지원해 주세요."

이른바 '외고 전형'. 모두에게 열려있는 듯 했지만 실은 외고생들을 위해 존재했던 전형들. 당시 동학년 부장교사는 젊고 열정적이었습니다. 내 제자들이 한 명이라도, 1점이라도 더 유리하게 명문대에 입학하길 바라는 그는 당시의 면담 기록들을 바탕으로 특히 외고 전형을 중심으로 한 대외비 자료를 만들어 교사연수를 했고 열심히 학생들 대입 지도를 했습니다. 학년 기획이었던 저도 이를 적극 지지하고 도왔습니다.

과연 당시의 그를, 또 교사들을 잘못했다고만 할 수 있을까요. 직업적 사명감 측면에서도 내 학생들에 대한 사랑 측면에서도 그 또는 우리가 최선을 다하고자 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겁니다.

다만 지금이라도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외고 전형'의 다른 이름은 같은 등급이어도 일반고 학생과 특목고 학생을 달리 평가하는 '차별'이며, 그것이 품고 있는 것은 '고교 등급화'였다는 것을. 나의 제자들만 생각하는 마음 속에서 우리는 그만 우리 학교 담장 밖의 아이들은 잊었다는 것을. 우리들의 제자 사랑은 어쩌면 진짜 사랑은 아니었을지 모른다는 것을.

누군가는, 아니 그럼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모였는데 그 학교 아이들과 다른 학교 아이들을 같게 평가하는 것이 오히려 '다른 것을 같게 평가'하는 차별이 아니냐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특목고, 자사고 진학과 깊은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 한 '외고 전형'이 평등하다고 공정하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또 대학의 해당 전형들이 공식적으로 표명한 기준을 생각할 때 국민들에게 거짓말한 것이 되는 것만으로도 문제일 겁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문제는 특목고, 자사고, 국제고 등의 목적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특목고'가 '외국어‧과학 교육 특수목적고등학교'의 준말이 아니라 '특별한, 대학 진학 이익을 목적으로 한 고등학교'의 준말이고, '자사고'가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자율형사립고등학교'의 준말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언수외(국영수) 위주 등 수험적합하게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는 고등학교'의 준말이 된다면, 이는 그 교육기관들의 설립목적 자체의 위반입니다.

전혀 놀랍지 않은 일이긴 합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불편한 진실일 겁니다. 지금은 달라졌는지 몰라도 적어도 제가 있을 당시까지만 해도 특목고, 자사고 등은 진정 그 목적대로 운영되는 교육기관들이 아니라, 과거의 경기고, 경복고 등의 영광을 대원외고, 한영외고, 하나고 등이 대신해 온 '입시명문고'임을 우리 사회는 모르지 않았습니다. 

하나 더. '사람을 보고 뽑는 것'의 이른바 편법적 운용. 이는 대학입시에만 한정된 문제가 또 아닙니다. 몇 년 전 '하나고등학교 사건'이 사회를 뜨겁게 달궜습니다. 하나고의 전경원 선생님이 그 학교 입학전형에서 독서활동 기록 등의 평가가 더 높음에도 여학생이란 이유만으로 그보다 평가가 낮은 남학생을 선발하고(경험으로 짐작컨대, 체력이 뒷받침되므로 남학생이 고3때 성적이 급상승하는 경우가 많다고 평가해 남학생을 선호했다고 생각합니다), 특정 신문사 사장의 자녀를 평가점수가 낮음에도 합격시킨 일 등의 입시부정을 세상에 밝히셨기 때문입니다.

하나고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십여년 전 특목고의 목적 그대로의 교육, 특목고 교육 정상화를 추구하겠다며 교육부는 특목고 입시를 '자기주도전형'으로 대폭 전환시켰습니다. 정량점수로는 중학교 영어성적만을 보고 자기소개서와 독서활동기록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도록 하는 자기주도전형. 한마디로 '시험 잘 보는 아이만 선발하고 시험 잘보게만 교육하지 말라'는 정부의 방침이었습니다.

이에 외고들 중엔 그와 같은 신입생 선발 방식을 실질상 거부하며 편법을 연구하고 시행하는 곳들이 있었습니다. 즉, '응시생들의 중학교 수학 성적을 파악해 실질적으로 이를 합격기준으로' 하거나 '중학교 서열화를 하여 우수(?) 중학교 중심으로 선발'하는 등의 편법이 연구되고 실행됐습니다.

근거도 없이 무슨 얘기냐고 하신다면 관련한 어떤 경험과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있다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얘기는 논의의 본질을 흐릴 수도 있고, 제 치부와 맨살을 모두 드러낼 자신은 없어 이렇게밖에 말씀드릴 수 없는 점 정말 죄송합니다. 다만 특목고 자기주도전형 시행 초기 한 특목고의 입학사정관이었던 제게 다른 특목고의 입학사정관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전합니다.

"이거 이러면 대국민 상대로 사기치는 거야. 저렇게 해서 어떻게 우수한 애들을 뽑아. 우린 지역별 중학교 가중치 주기로 했어. 00지역 1등급이랑 00지역 1등급이 어떻게 같냐고. 하. 지원하는 애들, 엄마들은 진짜 독서기록, 자기소개서로 뽑는 줄 알고 그거 열심히 준비할텐데, 와 진짜 이걸 어떻게 하냐고."

오래된 얘기입니다. 아직도 실질적인 중학교 등급화나 실질적인 고교 등급화가 존재하는지, 아직도 편법 또는 불법적 선발을 시도하는지, 교단을 떠난 지 오래인 저로서는 솔직히 잘 모릅니다.

그러나 어쩌면 아직도 존재할 수 있기에, 아니 새로운 무엇들까지 더 연구되어 더욱 교묘해졌을지도 모르기에 당시를 고백하며 말씀드립니다. 비시험전형이 그 교육적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악용될 여지, 편법의 여지가 있다면 이제 '교육의 시간'에서 '교육개혁'을 논의할 때 반드시 놓쳐서는 안되는 것, 그것은 '학교 서열화 폐지'라고.

(다음 기사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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