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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집 앞
 책집 앞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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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책집 : 경기 수원 '책먹는 돼지'
경기도 수원히 팔달구 세지로 300
http://instagram.com/piggyeatsbooks


서울에 있는 국립한글박물관에 가야 할 일이 있는데, 낮 1시 무렵까지 가자면 도무지 때를 맞출 수 없어 하루 일찍 움직이기로 합니다. 이날 저녁에 인천 배다리에 있는 책집지기 할머님한테 누리신문에 글쓰기를 어떻게 하는가를 알려주기로 하고는, 고흥서 인천으로 가는 길목인 수원에서 내립니다.

수원역에서 내려 맞이칸에서 책을 읽습니다. 오늘 가려는 마을책집이 아직 문을 안 열었다고 해서, 문을 열 즈음까지 기차역 맞이칸에서 조용히 책을 쥐며 보냅니다. 슬슬 때가 되었다 싶을 즈음 시내버스를 타고서 지동초등학교 언저리에서 내려 천천히 걷습니다.

사람도 많고 자동차도 많지만, 팔달문이 한복판에 있는 수원입니다. 한복판에 우뚝 선 커다란 문은 이 고장에 살뜰히 숨통 구실을 하는구나 싶어요. 집하고 찻길만 가득하다면 숨통이 막혀요. 나무가 설 틈이나 풀밭을 이룰 자리가 없다면 숨을 쉴 겨를도 없겠지요.
 
책집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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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책이 반기는 책집
 돼지 책이 반기는 책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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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사롭게 내리쬐는 여름 끝자락 볕을 누리면서 마을책집 '책먹는 돼지' 앞에 섭니다. 초등학교 어린이가 책집 앞을 노래하면서 지나갑니다. 때로는 손전화에 고개를 박고서 지나갑니다. 책먹는 돼지 앞에 돼지 걸상이 있습니다. 이 돼지 걸상은 책집 앞에서 다리쉼도 하며 해바라기도 하는 자리가 되겠어요.

책을 먹는 돼지는 무엇을 누릴까요? 책을 먹는 돼지를 아끼는 사람은 무엇을 즐길까요? 책돼지는 마음으로 속삭입니다. '넌 돼지가 어떤 숨결인 줄 아니? 너희가 돼지라는 이름을 붙인 우리는 어떤 사랑인 줄 아니?' 고흥에서 순천을 거쳐 수원으로 가는 길에 '돼지'라는 이름을 붙인 수수께끼 한 자락하고 동시 한 자락을 썼어요. 저절로 샘솟더군요.
 
아름다운 '돼지 책'
 아름다운 "돼지 책"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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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집에서
 책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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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숲노래 씀)

반지르르한 털은 아침햇살
곧고 긴 등줄기는 여름바다
새털같은 몸은 날렵날렵
싹싹하며 올찬 걸음걸이

혀에 닿으면 바람맛 느껴
코에 스치면 흙맛 느껴
살에 대면 마음멋 느껴
품에 안으면 숨멋 느껴

낯선 길을 의젓이 이끌지
우는 동생 토닥토닥 달래
사나운 물살 헤엄쳐 건너
별빛으로 자고 이슬빛으로 일어나

거짓말 참말 환히 꿰뚫고
즐거운 웃음을 노래하면서
보금자리 정갈히 돌보는데
둥글둥글 모여 누워 꿈을 그려

보들보들한 털에, 곧은 등줄기에, 폭신한 몸에, 똑부러지고 다부진 눈빛에, 씩씩하며 날렵한 몸짓인 돼지는, 해바라기랑 숲놀이랑 흙씻기랑 풀잎 먹기를 즐겨요. 구정물이나 찌꺼기를 즐기는 돼지가 아니라, 더없이 깔끔하면서 정갈한 돼지인데, 사람들이 잘못 길들여요.

다시 말해서 '고깃감'으로 태어난 돼지가 아닌, '삶을 노래하는 사랑'으로 태어난 이웃이에요. 저는 이런 돼지, 고깃감 아닌 삶을 노래하는 사랑으로 태어난 돼지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일이 있기에, 이를 동시로 그려 보았습니다. 마을책집 책먹는 돼지에 이 글자락을 드리려고요.

 
책먹는돼지..에 동시 한 자락하고 수수께끼 한 자락을 드렸습니다.
 책먹는돼지..에 동시 한 자락하고 수수께끼 한 자락을 드렸습니다.
ⓒ 책먹는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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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책 <명왕성으로 도망간 돼지>(에머 스탬프/양진성 옮김, 푸른날개, 2014)를 살펴봅니다. 줄거리가 살짝 엉성하고, 돼지를 놓고서 한켠으로 치우친 생각이 내내 드러나서 아쉽지만, 돼지가 '농장 주인 아저씨'가 어떤 속내인가를 뒤늦게 깨우치면서 새로운 길을 찾는 삶을 찬찬히 그립니다.

책집 보임칸에 곱게 놓은 <용기를 내! 할 수 있어>(다카바타케 준코 글·다카바타케 준 그림/김숙 옮김, 북뱅크, 2019)는 돼지 어린이가 동무들 곁에서 늘 쭈뼛질을 하던 모습이었지만, 어머니 사랑을 새삼스레 받고서 씩씩하게 바람을 가르는 길을 따사로이 보여줍니다. 참으로 좋군요. 어머니는 사랑으로 가르치고, 아이는 사랑을 받아 기운을 냅니다.
 
책시렁
 책시렁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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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시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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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먹는돼지에서 내놓는 커피를 맛보다. 돼지 이야기가 흐르는 동화책을 읽으면서.
 책먹는돼지에서 내놓는 커피를 맛보다. 돼지 이야기가 흐르는 동화책을 읽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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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구석 꼼꼼한 손길로 책꽂이를 가다듬은 책쉼터인 책먹는 돼지라고 느낍니다. 허술히 놓은 책이 하나도 안 보입니다. 이렇게 꾸리기까지 쏟은 사랑어린 손길을 물씬 느낍니다.

오늘은 책을 석 자락 장만하자고 생각하며 그림책 <자전거 도시>(앨리슨 파랠/엄혜숙 옮김, 딸기책방, 2019)까지 집습니다. 온갖 자전거가 두루 길을 누비는 그림이 재미있습니다. 온갖 자동차 아닌 온갖 자동차가 길을 가득 누빈다니, 얼마나 멋스러울까요.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책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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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시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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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길 아닌 자전거길이 된다면, 또 자전거길보다는 '사람길'이 되어서, 아기도 아장아장 걸음질을 할 수 있고, 어린이는 길바닥에 돌멩이로 죽죽 금을 긋고서 놀이판을 꾸밀 수 있으면 좋겠어요. 더 빨리 달려야 하는 찻길이 아닌, 누구나 사이좋게 어우러지면서 왁자지껄 이야기꽃이 피어나는 살림길이 되면 좋겠습니다.

책집지기님이 만화책을 좋아하신다고 해요. 다달이 만화수다를 나눈다고 하시는군요. 만화수다를 나눌 수 있는 마음이기에 책을 더욱 깊고 넓게 즐기며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겠지요. 일본만화가 아닌 그저 아름다운 만화를 짓는 테즈카 오사무, 타카하시 루미코, 오자와 마리, 오제 아키라, 이런 분들 만화가 제대로 읽히면 좋겠어요.
 
책집지기 손
 책집지기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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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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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새>나 <블랙 잭>이나 <우주소년 아톰>도, <경계의 린네>나 <이누야샤>나 <루미코 걸작 단편집>도, <이치고다 씨 이야기>나 <은빛 숟가락>도, <우리 마을 이야기>나 <나츠코의 술>도, 착한 마음을 참하게 그리면서 사랑으로 곱게 펴는 숱한 이야기에 깃든 씨앗이 온누리에 퍼지면 좋겠습니다. 미움이나 시샘이 아닌, 꿈하고 사랑이 씨앗이 되면 좋겠어요.

책집지기님하고 신나게 수다꽃을 펴느라 많이 늦는 바람에 택시를 불러서 인천으로 씽 하고 달리기로 합니다. 다음에는 한결 느긋이 찾아오자고 생각합니다. 마을책집에 가득한 돼지 책이여, 돼지 인형이여, 다음에 다시 만나자.
 
책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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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집에서 창밖을 보며
 책집에서 창밖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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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기울면서 책집 안쪽이 새롭게 보인다
 해가 기울면서 책집 안쪽이 새롭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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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드나들 적에는 "밀면 돼지"
 이곳을 드나들 적에는 "밀면 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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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집(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태그:#마을책집, #마을책집 나들이, #책먹는돼지, #책숲마실, #숲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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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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