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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게 사는 것, 행복하게 사는 것은 개인과 인류가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일 것이다. 그러나 보편적 가치 지향과는 달리 개인과 개인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의 차이로 '건강하게' 오래 사는 문제에는 개별적 차이, 즉 건강 격차가 발생한다. 건강해지고 싶은 개인의 욕구 실현은 그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이 좌우한다.

그렇게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 중 특별히 중요한 것이 '함께 어울려 돕고 사는' 사회적 관계다. 남보다 더 우월한 지위와 삶을 위해 일하고 사는 것 보다 모두가 함께 잘사는 건강한 사회적 관계속에서 내가 건강하고 안전한 삶을 향유할 수 있다. 건강한 사회적 관계가 건강한 마음과 건강한 신체를 만드는 것이다.

고령화 시대 국내 생산 인구의 감소와 세계화 불평등은 전세계 이주민 인구를 17년만에 49%나 증가시켰고, 한국의 이주민도 10년만에 무려 3.3배나 증가하여 2016년 현재 전 인구의 3.4%, 176만명이 더불어 일하고 함께 살아가는 시대가 되었다.

이주노동자, 이주민이 더 이상 다른 세계에서 온 이들이 아닌, 우리의 이웃이 되는 시대에 살고있고, 그들과 함께 건강하고, 그들을 우리의 이웃으로 함께하는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나와 우리 모두를 건강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주노동자와 이주민들은 비인권적 고용허가제로 인해 안전하고 건강할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조건 속에서 환경, 언어, 인종, 국적이 다른 이들과 일상에서 건강한 사회적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향남공감의원에서의 경험을 공유하며,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주노동자가 병원에 온다는 것은

어느날 27세의 캄보디아 국적의 미등록남성이주노동자가 회사관리자와 함께 병원에 왔다. 한국말이 서툴러 한국말을 좀 하는 동료의 전화 도움을 받았고, 이를 통해 3일 전부터 38도의 이상의 고열과 오한, 기침, 객담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는 견디기 힘들어 병원을 찾았을 것이다. 급성폐렴이나 독감이 의심되었다. 확진을 위한 혈액검사와 X-RAY, 인플루엔자 신속검사가 필요했다. 하지만 건강보험을 가입할 수 없는 그에겐 돈이 부담으로 작용했다. 검사를 거부했고 약만 달라 했다. 회사 관리자는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에게 나는 검사비의 50%를 할인하는 '미등록이주노동자의료비지원제도'가 있음을 알려주었고, 이후 그는 검사를 흔쾌히 동의하였다. 그리고 인플루엔자 감염증으로 진단되었다. 일주일 간의 격리를 위한 병가가 필요하다는 소견서로 휴식을 취하며 치료를 받았다. 그는 독소에 의한 신기능저하까지 진행된 상태로 5일간 수액치료까지 받았고, 이후 정상 신기능으로 회복하였다.

나는 한달 후 추적관찰을 위해 내원할 것을 권유했으나, 이후 그는 다시 오지 않았다. 그가 5일간 치른 의료비는 5만 원이 조금 넘었고 공감의원에서 부담한 지원비는 9만 원이 조금 넘었다.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이주노동자들

장시간 고강도의 위험한 일을 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아프기 십상이지만 병원에 들어서는 일, 검사를 진행하는 일은 너무나 어렵다. 특히나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경우엔 더 하다. 건강하지 못한 환경에서 일하는 이들이 병원에 오기 힘든 현실이 아이러니하다.  2017년 화성시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서 진행한 이주노동자건강권 토론회에서 나온 이주노동자의 말을 들어보자.

먼저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크다. 자신의 증상을 표현하기 힘들고 의료진이 사용하는 의학용어를 알아듣기도 힘들다. 병원에 오는 이들은 나름 언어문제를 해결한 이들이다.

그리고 응급이 아니고서는 병원에 올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소규모 사업장들은 사업주의 안전보건에 대한 인지도 낮기 때문에 고용주가 허락을 안해주는 경우가 많아 근무 중 외출하기가 힘들다. 또 한번의 치료과정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두세 번에 걸쳐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 경우엔 더욱 어렵다. 위 사례처럼 응급과 전염성 질환이 아니라면 말이다.

셋째, 의료비도 부담된다. 특히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더하다. 등록이주노동자에 비해 급여가 훨씬 적은데 뜻하지 않는 의료비의 발생은 매우 큰 부담이다. 두세 번 병원에 방문해야 하는 경우엔 높은 병원비에 놀라 재방문을 포기하는 사례도 많다. 병원비가 아까워 본국에서 우편으로 약을 받아 해결하려다가 질병이 악화되기도 한다.

넷째,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경우 단속에 대한 두려움으로 병원을 이용해야 하지만 심리적 위축으로 포기한다. 그들은 휴일에도 익숙한 길만 이용하거나 심지어 대중교통 이용에 대한두려움도 있다. 마지막으로 아플 때 어느 병원을 이용해야 하는지, 보건소나 도립의료원과 같은 공공병원에서는 의료비 지원이 된다는 정보도 모른다.
 
이주노동자가 건강하면 지역주민도 건강해진다

 
"이주노동자를 죽이지 마라"
 "이주노동자를 죽이지 마라"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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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백한 한국사회 인구구조 변화 추이로 볼 때 이주민과 이주노동자는 이제 동일한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인식해야 한다. 그런데 차별과 불평등이 이주노동자의 건강의 문제를 발생시켰듯 그것은 모두에게 건강의 문제를 발생시킨다. 이주노동자도 멸시하거나 차별하지 않고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면 그 속에서 사는 우리도 건강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주노동자도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1) 의료기관 접근성에 대한 차별을 해소해야

첫째, 의료비 부담 때문에 적기에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하므로 보편적인 의료보장제도를 차별없이 모든 이주노동자들에게 적용해야 한다. 중소 규모사업장에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는 미등록이주노동자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하듯이 '건강보험도 당연 적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건강과 질병은 대부분 일과 관련되어있기 때문에 산재보험이나 건강보험이나 같은 문제로 병원을 찾기 때문이다.

둘째, 공공보건의료기관의 적극적인 역할과 공공의료사업 민관협력을 구축해야 한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취약한 의료보장으로 인해 이주노동자는 건강에 가장 취약한 계층이다. 당장의 현실이 평일 진료가 힘든 이주노동자들에게 지역의료기관과 협력하여 주말 진료를 추진하고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한다. 특히 미등록이주노동자에게도 안전한 진료라는 인식을 만드는데 지난한 공을 들여야 한다. 또한 공공과 민간의 의료비지원사업에 대한 효과적이고 적극적인 홍보가 있어야 한다.

셋째, 평일 진료를 허락하도록 고용주를 대상으로 안전보건인지교육, 산업안전교육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2) 이주민 역량강화 사업을 통해 지역사회 통번역 시스템을 만들어야

비단 의료의 영역만이 아닌, 노동, 법률, 생활의 영역 전반에서 '의사소통'의 문제가 이주민의 건강과 삶의 어려움을 야기하고 있다. 화성지역에서 이주민공동체 지원 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사)더큰이웃아시아'에서는 모국인 가족, 친구들을 통해 한국생활의 어려움을 주로 해결하고 있다는 실태조사결과에 근거하여 리더역량강화사업을 통해 이주민 리더(한국 정착에 성공한)들을 양성하고 적정 수준의 활동 수당을 제공하여 상시통역 요원의 역할과 이주민 멘토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 사업을 지자체에 제안하였다. 이러한 역할을 기반으로 한 자조(self help) 조직의 구성과 운영은 이주민들의 자존감을 높이고 정주민에게도 이주민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강화시키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당장에 실현 가능한 방안으로 화성시 재원으로 이주민 통역 상담원들을 채용하여 의사소통과 취업, 생활고충 등 어려움을 지원하는 사업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이주민역량강화사업들에 지역내 의료기관들은 이주민리더, 혹은 통역상담원들의 보건의료분야 전문역량을 강화시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3) 이주노동자 공동체는 스스로 건강을 지키는 힘이다

이주노동자들이 병원을 찾는 주요 질환 중 하나가 위장관질환이다. 이는 대부분 스트레스로 유발되며 일터에서 한국인 동료나 관리자에게 욕설과 폭언, 멸시를 받으며 일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는 다시 위계적인 노동사회구조에서 비롯되는데 이른바 '구조화된 폭력'이라 말할 수 있다). 게다가 야근과 특근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풀 수 없는 경우 우울증을 앓거나 자살을 선택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주노동자의 정신건강문제는 상당히 많을 것이다. 이를 해결할 유력한 방안의 하나는 '이주민 공동체'의 활성화를 통한 이주노동자의 공동체 참여를 높이는 일일 것이다. 지자체와 지역사회는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 지원하여 건강한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돕고, 건강과 보건의료 영역에서도 교육사업 등 다양한 지원사업을 기획해볼 수 있을 것이다. '(사)더큰이웃아시아'에서는 구체적으로 모임이나 행사를 쉽게 할 수 있도록 공공장소와 시설 공간을 적극 지원하거나 동아리 지원사업과 같은 공동체 활성화 사업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4) '존중과 평등'의 관계를 만드는 지역사회로

이주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받는 차별과 멸시는 국가간 불평등을 심화시킨 세계화에 자본이 만든 위계적인 노동조직 구조, 위험의 이전, 차별적인 노동인권이 버무려진 결과일 것이다.

결국 지역사회에서 이러한 사회적 관계는 '나보다 낮은' 지위의 사람들이라는 인식, 그것에서 비롯된 모멸감을 주는 언행과 위험을 전가하는 행동들로 나타난다. 이 사회에 층층이 존재하는 수많은 '을(乙)'들은 그것들이 얼마나 인간의 존엄성과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히는가를 몸소 느꼈을진데, 안타깝게도 '차별의 이전'은 구조적으로 반복된다. 그렇다면 이전되는 차별의 구조를 어떻게 깨뜨릴 것인가?

지역사회 수준에서 말하자면 보다 평등한 사회관계를 지향할수록, 서로 존중하고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수록 그 사회 구성원 '전체'가 건강해진다는 영국의 저명한 사회역학자의 말을 빌려본다. 그리고 평등한 사회관계는 평등에 대한 인식과 평등한 구조를 만드는 과정과 결과에서 형성된다.

먼저 지자체와 지역주민 공동체에서 이주노동자도 동일한 인간의 존엄성을 지닌 사람으로 평등성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더 많은 이들로 인식을 넓힐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과 문화 사업을 펼쳐내면 좋겠다. 평등성을 인식하는 이러한 사업에 이주민과 정주민이 함께 참여하고 아동, 청소년, 성인,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가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하여 지역사회 각 영역에서 차별과 편견이 해소될 수 있도록 하자는 '(사)더큰이웃아시아'의 고견도 귀 기울여 들을만 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이자 (사)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 향남공감의원의 의사이신 송홍석님이 작성하셨습니다. 또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9월호에도 연재한 글입니다.


태그:#미등록이주노동자, #이주노동자공동체, #건강할권리, #고용허가제, #지역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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