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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한 후배로부터 예배 시간에 들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다가 노처녀가 천국에 가면 뭐라고 부르는지 아느냐고 했다. 뭔가 기가 막힐 말이 나오겠구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목사님의 답은 뒷목을 잡게 했다.

"미개봉 반품."

명백한 성희롱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발언을 예배 시간 때 성도들을 모아 놓고 하다니 너무 기가 차서 물었다. "다들 그냥 듣고 있었니?" 하니까 그 말을 듣고 웃었다고 한다.

"너라도 항의의 뜻으로 자리를 박차고 나왔어야지" 하자 거기까지는 생각 못하고 자기도 모르게 "미친 거 아냐?"라는 육성이 터져 나오는 바람에 옆에 있던 엄마의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왜 공적인 장소에서 이런 식의 발언이 허용되는 걸까. 게다가 그런 말을 듣고 다들 웃었다는 말에 그야말로 허탈한 헛웃음이 터졌다.

공정위원장 후보자에게 '출산' 운운하는 한국 사회

비혼인 나도 면접 때마다 질문을 받았다. 결혼을 했느냐는 질문에서부터 아예 결혼을 한 것을 전제로 아이가 몇이냐는 질문으로 점프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결혼도 안 했는데 아이까지 있는 기혼으로 '당연하게' 인식되어 버린 것이다. 남편은 무엇을 하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40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런 말을 들을 때,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아이가 없다고 대답해야 하는지,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대답해야 하는지 수많은 생각들이 무질서하게 뒤엉켜버려서 얼버무리듯 답변했었다. 나와서는 내가 왜 그렇게 바보처럼 대처했는지 스스로에게 화가 나서 속이 상하곤 했다. 그때의 당혹스럽고 어이없고 난감한 표정과 눈빛을 얼마 전, TV에서 봤다.

정갑윤 : "아직 결혼 안 하지 않았나. 출산율이 결국은 우리나라를 말아먹습니다. 우리 후보자 정말 훌륭한 분이에요. 그것도 갖췄으면 정말 오늘 정말 100점짜리 후보자다. 본인 출세도 좋지만 국가 발전에도 기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료 제출 요구하는 정갑윤 정갑윤 자유한국당 의원이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해 윤석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에게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
 정갑윤 자유한국당 의원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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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에게 정갑윤 의원이 무려 청문회장에서 한 발언이다. 이때 조성욱 후보의 표정이 오래전 내가 지었던 표정과 흡사했다. 장관으로서의 능력과 자질을 검증받는 자리에서 결혼 여부는 왜 등장하며, 평생 자기 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며 살아온 교수에게 출산으로 국가 발전에 기여하라는 가당찮은 충고가 웬말인지.

게다가 100점의 기준은 뭔가?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야만 장관으로서 100점이 된다는 뜻이라면, 도대체 그 기준은 누가 만들어 놓은 것인지 몹시 궁금하다. 그리고 출세를 위해서 비혼이고 비출산했다는 자의적 해석과 비혼, 비출산을 국가 발전과 연결하는 논리적 비약도 해괴망측하다. 설사 출세를 위해 비혼과 비출산의 삶을 선택했다 해도 그건 공적인 자리에서 지적받을 일이 전혀 아니다.

여성이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일한 결과로 공직자 후보에 오른 것이다. 그 자체가 국가 발전에 기여한 것인데, 그러한 사회적 성취는 출산보다 못한 것으로 치환되어 버린다. 여성의 삶에서 비출산은 어떤 숫자를 대입해 곱해도 무위로 만들어 버리는 0(제로)인가 싶다.

여성은 출산을 통해서 국가발전에 기여한다는 인식은, 아이를 낳지 않은 여성은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이기적인 존재란 뜻도 포함되어서 문제적이다. 동시에 여성은 결혼하면 출산해야 한다는 전제도 깔려 있다. 아이를 낳는 것은 당연하다는 암묵적인 룰 속에서 출산을 종용하면서, 정작 여성이 출산을 꺼리는 이유에 대해서는 무책임하고 무지하다.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피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여자가 출산해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은 상황에서, 아이를 낳을 이유가 여성 입장에서는 여전히 많지 않다.

한 후배는 친정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맞벌이를 하며 딸을 키우고 있다. 워낙 일을 잘하는 친구였는데 출산과 동시에 일을 그만두었다. 2년쯤 지나서 다시 일을 하려고 했지만, 경력직으로 예전과 같은 대우를 받고 취업을 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프리랜서 편집일을 하다가 얼마 전에 비정규직으로 취업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프리랜서로 벌 때보다 보수가 덜했고, 그 전에 정규직으로 회사에 다닐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낮은 월급이었다.

그 친구의 경력과 능력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자리여서 나까지 속이 상했다. 만약 계속 일을 했더라면 지금쯤 부장급이고, 그만한 능력이 되는 친구인데 말이다. 현실은 대졸 초임 수준이다. 그나마도 그녀가 일할 수 있는 건, 친정 부모님이 아이를 맡아 주셨고, 남편과의 가사 노동 분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이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라고 했다.

2년 전, 서른일곱에 결혼한 후배는 결혼하자마자 주변으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아이는 언제 갖냐?", "좋은 소식은 없냐"는 말이었다. 요즘 엄마가 아프시면서는 "이제 엄마 건강도 예전 같지 않으니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어서 낳으라"는 말도 듣는다. 그리고 그 끝에 "작가하면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는 말이 세트 메뉴처럼 따라붙곤 한다. 후배가 작가로서 이루고 싶은 성취는 출산보다 못한 것이 되고, 성인 부부의 가족계획은 많은 저항에 부딪힌다. 

출산이 여성의 의무?

얼마 전 버스를 탔다가 우연히 듣게 된 뒤에 앉은 어르신들의 대화도 인상적이었다. 대화의 주제는 손주들의 가정사였다. 대부분 누구의 손주 부부가 아이를 갖지 않아서, 혹은 한 명인데 더 안 낳는다는 걱정이었다.

"저러다 마흔 넘어가면 진짜 큰일인데, 어쩌려고 아이를 안 낳는지 모르겠다."
"한 명은 외로워서 두 명은 낳아야 하는데 더 안 낳으려고 해서 걱정이다."
"저희들끼리 재밌게 지내는 게 좋다고 한다. 그러다 나중에 늙어서 후회할 텐데 아직 젊어서 몰라서 그런다."


이처럼 한 명은 외로우니까, 부모가 늙기 전에 효도 차원에서, 국가 발전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명목 아래 여성은 종종 출산의 의무로 내몰린다.

지금까지 공들여 쌓아온 경험과 커리어를 포기해야 할 위험, 다시는 내 인생에서 오지 않을지도 모를 삶을 포기하는 모험을 왜 다른 사람이 강요할까. 다시 일하고자 했을 때 갈 곳이 없거나 냉대 받고, 전보다 못한 대우를 감수해야 하는 공백기를 그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으면서 그런 차별은 '당연하다'고만 말한다.

임신과 출산을 애국이라고 칭송하면서 막상 현실에서는 패널티만 주고 있는 셈이다. 비혼이라고 하면 이기적이라고 하고, 임신과 출산을 하면 경력단절이 되어 버리니 어쩌라는 것인지. 이런 여성의 상황을 헤아리는 데에는 인색하거나 무지하다. 그러니 아이를 낳으라는 말을 식당에서 주문하는 것처럼 쉽게 하는 거겠지. 정갑윤 의원처럼 말이다.

어디 정갑윤 의원뿐일까. 최기영 과기부 장관 후보 청문회에서 박성중 자유한국당 의원이 "아내 관리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수십조원 예산을 다루는 과기정토부를 제대로 관리할 수 있겠느냐?"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이제 배우자와 자녀와 가족을 관리대상으로 보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도 지긋지긋하다. 공직자로서 도덕적인 책임을 묻고 거기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각각의 인격과 자기 결정권이 있는 가족 각 개인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시대착오적이다. 자신의 가족을 비롯해 각각의 가족들을 들여다보라. 내 마음대로 되는 경우가 얼마나 있나.

또 예배 시간 때 비혼 여성을 '미개봉반품'이라고 말한 목사님, 그 말을 듣고 재미있다고 웃으며 묵시적 동조를 하는 사람들, 여성이 얼마나 노력하고 성취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아이를 낳으면 100점이라고 점수 매기는 사람들... 수많은 정갑윤들이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라캉은 인간의 욕망 또는 무의식은 말을 통해 나타난다고 했다. 즉,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말하여진다는 뜻이다. 요즘 여성들을 향해 들리는 이러한 말들은 여성을 그저 출산의 도구로 보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뭐가 잘못인지도 모르고 공적인 자리, 사적인 자리 구분 없이 여성의 삶과 출산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나라에서 아이를 낳고 싶은 여성이 과연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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