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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인 2018년 6월, 제주도에 온 예멘 난민들로 한국에서는 '난민 수용'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다. 난민을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취지의 집회가 열리는가 하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는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내용의 청원에 70만 명이 동의하기도 했다.

당시 '난민이 한국에 들어오면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으로 공포를 부추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멘 난민들이 테러를 위해 한국에 들어오려는 '가짜 난민'이란 주장도 제기됐다. 언론에서 팩트체크를 통해 대부분 가짜뉴스라는 게 밝혀졌지만, 이후에도 외부인에 대한 편견과 혐오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난민 사태에 감정적 반응이 먼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1년이 넘게 지나 2019년 여름이 되었고, 이제 냉정하게 돌아볼 시기에 맞춰 책이 출간된 듯하다. 예멘 난민 사태는 한국에 무엇을 남겼을까?

제주 예멘 난민과 페미니즘의 응답, '경계 없는 페미니즘'
 
 '경계 없는 페미니즘' 책표지.
 "경계 없는 페미니즘" 책표지.
ⓒ 와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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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출간된 <경계 없는 페미니즘>은 1년 전 벌어진 예멘 난민 사태에 대한 논란을 담은 책이다. 2018년 예멘 난민에 대한 수용 거부 주장이 나올 당시 페이스북 페이지 '경계 없는 페미니즘'에 실린 글들을 묶은 게 주된 내용이다.

'경계 없는 페미니즘' 페이스북 페이지는 난민과 여성의 인권이 충돌한다는 주장에서 혐오와 편견을 짚고, 경계 대신 관계를 그려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이 온라인 페이지에 총 38명의 사람들이 글을 기고했다. 손희정 문화평론가, 정희진 여성학자,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등을 포함해 장애, 정치, 여성학 연구자와 성소수자 활동가까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참여했다.

책은 '예멘 난민과 페미니즘의 응답'을 주제로 내세웠다. 지난해 예멘 난민을 거부하는 주장에 깔린 논리가 '난민이 한국 여성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저자 다수는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사람이며, 페미니즘이 난민에 응답하는 방식이 배제와 혐오가 아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난민 다수는 범죄자'라는 주장이 통계나 사실과 다르며, 이런 생각에 편견이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최근 인터넷과 스마트폰, 기사들에서 떠도는 괴담이 있다. 무슬림 국가인 예멘에서 남성들이 놀이 삼아 여성을 강간하고 여자아이와 조혼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이야기다. 도시괴담과 다를 바 없는 이 이야기는 현재 제주도에 머무르고 있는 예멘 난민들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확산시키는 데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 본문 64쪽 중에서

"'통계'라는 도구는 섬세한 해석을 필요로 한다. (중략) 국내에 거주하는 이주 노동자의 강력 범죄율이 한국인보다 높다는 2016년 기사는 범죄율의 특성상 성별, 나이를 통제할 경우 내국인보다 범죄율이 높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틀렸다. 그러니까 난민과 이민자가 강력 범죄 증가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데이터로 지지되지 않는다. 이건 그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무결한 존재라는 뜻이 아니다. (중략)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는데도 혐오에 근거한 뉴스를 계속 확산시키는 이유는 그게 자기 신념, 전제와 일치하기 때문일 것이다." - 본문 21~22쪽 중에서

난민이라는 이유로 모두 범죄자 취급을 하는 건 일종의 인종 차별이다. 특정 정체성을 이유로 낙인을 찍는 건 이성적 판단에 근거한 행위라기보다 감정적 추론에 기반한 것에 가깝다. 이에 <경계 없는 페미니즘>은 난민을 경계 너머의 타인으로 두고 두려워하는 데서 머물지 말고, 페미니즘의 의미에 맞게 소수자의 상황을 돌아보자고 권한다.

난민 인권과 여성 인권은 상충되지 않아
 
"페미니즘 운동은 다른 인권 운동과 따로 갈 수 없다. 예멘의 상황과 이슬람 문화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여성혐오적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무조건 반대하고 차별하는 것은 페미니즘이 아니라 근거 없는 오만이다. 난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 없이 난민 남성은 위험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인종차별인 동시에 난민을 향한 혐오일 뿐이다. 보통 난민 남성이 먼 이국땅 한국에 먼저 도착하면 터를 잡고 남은 가족들을 데려온다. 그러니 예멘 여성의 입장에서, 예멘 남성은 잠재적인 성범죄자라며 수용을 거부하는 것이 과연 고마운 일일까? 한국인 페미니스트로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소수자인 난민을 수용하고 난민 여성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도록 돕는 것이지, 예멘 난민 성비만 보고 난민 남성이 나쁘다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 본문 30쪽 중에서

위 글에는 난민으로 제주에 온 이들 중 남성 비율이 높았던 것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 하긴, 입국 가능 여부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먼 나라에 가는 일은 쉽지 않으니 가족 구성원 중 남성이 난민 신청자를 도맡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데 '난민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혐오의 대상이 되어야 했던 이들의 심정은 과연 어땠을까. 한국 사회에서 여러 차별을 겪는 여성들이 난민과 소수자끼리의 연대를 고려해봤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다.

정체성에 대한 편견만으로 배제가 쉽게 이뤄지는 사회라면, 그곳에 페미니즘을 위한 자리가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저자들은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정말 무엇인지 말로 외쳤다면 이제는 행동으로, 예멘 난민에 대한 환대로 보여줄 차례다. 그게 인간다움이다"라고 말한다.

책에서는 인권이 제로섬 게임처럼 한정된 자원을 나눠 갖기 위해 싸우는 일이 아니며, 난민 인권과 여성 인권이 상충되는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교차성'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인종, 성별, 국적, 성적 지향 등 개인의 정체성이 하나로 규정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로 교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체성을 단순하고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건 나뿐만 아니라 다른 개인도 마찬가지일 테니, 타인의 특징을 뭉뚱그려 편견을 갖지 않으려면 기억해둘 만한 개념이다.

가짜뉴스와 혐오 넘어 연대를 말하다

책에서는 혐오발언으로 얼룩진 제주 예멘 난민 사태를 재조명하면서, 사안에 대한 오해를 되짚는다. 그와 동시에 편견과 차별이 '일반 국민'과 '소수자'를 갈라 구분하는 과정을 지적하고, 연대를 통해 이를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안전과 내 안전을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은 '진짜 사람'만 남기는 것이 아니다. (중략) 자신의 불안을 어떤 집단을 몰아내는 것으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번 가짜를 몰아내고 나면 그다음으로 판단될 가짜는 어떤 집단일지, 그리고 그러한 배제의 끝이 무엇일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 본문 116~117쪽 중에서
 

지난 2018년 제주도에 들어온 난민 신청자 484명 가운데 심사를 통해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은 단 2명뿐이었다. 1년 3개월가량 지난 현재, 이들을 수용하지 않음으로써 정말 한국 사회가 더 안전해지고 여성의 성범죄 피해 위험이 줄었을까?

난민에 대한 편견이 있는 사람이라도  읽고 다시 생각해볼 지점이 많은 책이다. 특히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고 싶은 사람, 차별의 장벽을 허물고 싶은 페미니스트라면 <경계 없는 페미니즘>을 읽어보길 권한다. 우선 나를, 내 생각을 바꾸어야 세상을 바꿀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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