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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으로 청산해야 할 적폐가 있지만, 국민의 약 70%가 거주하는 아파트의 적폐도 만만치 않습니다. 경험해보니 국가 적폐보다 마을(아파트) 적폐의 청산이 더 힘들게 느껴집니다. 4년간 아파트 회장을 하면서 겪었던 파란만장한 경험과 성취한 작은 성공의 이야기들을 시민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 기자말

2차 해임투표가 법원의 판결과 수원시의 행정명령으로 무산된 다음 날인 2016년 3월 10일 관리소장은 우리 집으로 공문을 보내왔다. 회장 직인을 반납하지 않으면 업무방해죄로 고소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관리소장이 회장을 협박하는 공문이라니, 이건 피고용인이 고용인의 대표를 위협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관리소장은 왜 직인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걸까? 표면상으로는 나의 회장 직무가 정지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남기업의 회장 직무는 왜 정지된 걸까? 선거관리위원회에서 해임투표 결과가 부결임을 공고해야 정지되었던 회장 직무가 살아나는데, 선관위가 투표결과를 1달 이상 공고하지 않은 데다, 다시 3차 해임투표를 진행하겠다는 결정을 했기 때문이다. 해임투표를 공고하면 해임대상자의 직무는 그날로 정지된다.

그렇다면 선관위 결정은 누가 내린 걸까? 저들이 내린 결정이다. '다수의 동대표들 + 4명의 선거관리위원들 + 관리소장'은 한 몸처럼 움직이며 매일같이, 그것도 대낮에 관리사무소에 모여서 작전을 짜고 있었다. 직인을 내가 가지고 있으면 아파트의 회계처리에 장애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정기적으로 결재를 해주면 아무 문제가 없다.

결국엔 돈 때문에?

그러면 회장 직인에 저렇게 집착하는 진짜 이유는 뭘까? 어차피 회장 해임에 성공하면 직인은 당연히 반납할 수밖에 없는데도, 왜 그사이를 못 참고 고소하겠다고 협박까지 하는 걸까?

나는 돈 때문이라고 본다. 아파트의 관리비는 회장이 도장을 찍지 않으면 1원도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구조다. 공사대금도, 물품구입비도, 직원급여도 모두 회장의 도장이 찍혀야 지급이 가능하다. 동대표회의에서 결정된 정상적 지출은 회장인 내가 결재를 해주고 있는데도 직인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까닭은 '불법적 지출'을 하겠다는 것으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나는 회장 직인을 반납하지 않았다. 아니 반납할 수가 없었다.

3차 해임투표 강행, 짜증 내는 판사

입주민들의 분노가 폭발해도 저들은 3차 해임투표를 강행했다. 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은 이러했다. '2차 해임투표를 법원이 중지하라고 한 까닭은 해임투표 결과를 공지하지 않고 진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해임투표 결과를 공지한 후 해임투표에 대한 이의제기서, 즉 남기업이 해임투표 기간에 부정을 저질렀다는 서류를 정식으로 접수 받고 이의제기서에 적시된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했으니 3차 해임투표를 진행할 수 있다, 법원이 지적한 절차적 하자는 다 해소된 것이다.' 3차 해임투표 기간은 3월 24일에서 31일이라고 공고했다. 이들의 집요함은 단연 금메달감이다.

내가 의지할 곳은 법원과 수원시밖에 없었다. 또다시 법무법인 에셀의 오재욱 변호사와 함께 3차 해임투표 중지를 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했다. 가처분 신청만 벌써 세 번째다. 그런데 이번 가처분 신청서에는 다시는 저들이 해임투표를 시도하지 못하게 막아달라는 내용도 포함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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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은 신속하게 열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재판을 진행하는 가처분 담당 판사가 짜증을 내는 게 아닌가? 지방법원에서 가처분 사건은 보통 한 명의 판사가 담당하는 것 같았다. 판사의 말을 종합해보면 짜증 내는 이유는 이랬다.

'지난 3월 9일에 해임투표 중지 판결을 내렸는데, 왜 같은 이유로 해임투표를 또 진행하느냐? 하지 말라고 판결했으면 하지 말아야지, 지금 장난 하나? 지난 재판 때 해임투표 종료 전에 판결문을 쓰느라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는지 아느냐?'

판사의 태도와 발언에서 재판 결과는 충분히 예상되었다. 재판 결과는 '3차 해임투표 중지하라, 만약 '3인방'('몸통'+관리소장+선거관리위원장)이 다시 해임을 시도하면 시도한 행위마다 20만 원의 간접강제금을 부과한다'였다. 이 판결로 3차 해임투표는 종료일을 하루 앞둔 3월 30일에 중단되었다.

입주민 아닌 사람까지 끌어들여 

저들이 해임 추진을 손쉽게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선거관리위원회 7명 중 4명이 한 몸이었기 때문이다. 선거관리위원회는 과반수로 의결하는 구조로 되어있기 때문에 저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의결하여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3월 중순경에 4명 중 1명인 80세 정도 되는 선관위원이 2월 말에 양주로 이사를 갔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이사를 가면 아파트 주민이 아니기 때문에 선거관리위원 자격은 자동 상실된다. 그런데 그들은 과반수 요건을 갖추기 위해서 이미 선거관리위원이 아닌 그 노인을 양주까지 가서 자가용으로 데리고 오면서까지 의결을 강행한 것이 아닌가? 물론 오가는 기름값과 톨게이트비용은 아파트 관리비로 지출되었다. 관리소장도 당시 선거관리위원장도 이사 간 것을 다 아는 데도 말이다. 명백한 불법이었다.

선관위원이었던 그 노인은 우리 아파트의 가장 작은 평수에서 혼자 세 사는 사람이었다. 우리 아파트에서 여러 해 전에 부녀회가 해산되었는데 원인 제공자도 그 노인이라고 한다. 부녀회 총무였던 그 노인이 재정 비리를 저지른 것이 밝혀졌기 때문에 해산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오갈 데 없는 노인에게 밥을 사주면서 선관위원으로 앉힌 후 거수기로 이용했던 것이다. 심지어 입주민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이사 가기 전 관리사무소에서 잠깐 만난 그 노인은 나를 무척 안쓰러워했다. 해임투표 기간 중에도 회장 결재는 해야겠기에 무거운 맘으로 관리사무소에 갔던 어느 날 그 노인은 관리사무소에 초라한 모습으로 앉아 관리사무소 직원이 타 준 믹스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결재하고 있던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내가 자기 아들 같았는지 "이렇게 착하게 생겨가지고 어떻게 ○○○을 당해낼 수 있겠어. 쯧쯧쯧, 얼굴이 반쪽이 됐네" 하면서 측은해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위원님, 제가 그렇게 안 돼 보이시면 선관위원을 그만두시면 돼요"라고 했더니, 그 노인은 "알지, 근데 선관위원 하면 회의수당 5만 원도 받고 밥도 사주는데, 어떻게 그만둬"라며 미안해하는 것이 아닌가.

만약 그 노인이 2월 말에 이사 간 것이 사실이면 그는 선관위원 자격을 상실한 것이고, 3월에 선관위에서 의결된 2차 해임투표와 회장 재선거, 그리고 3차 해임투표 결정은 다 무효일 수밖에 없기에 나는 수원시에 민원을 제기했다. 선거관리위원회 위원 자격이 상실된 사람이 선관위원회 회의에 참석해서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으니 이를 바로잡아달라고.

수원시는 즉각 현장을 방문하여 그 노인이 거주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수원지법이 판결을 내리던 3월 30일에 공문을 발송해주었다. 2월 28일에 이사 간 그 노인은 선관위원 자격이 상실되었으므로 3차 해임투표 결정은 무효이고 그러므로 지금 진행하고 있는 3차 해임투표를 중지하라는 내용의 공문이었다. 그러니까 3차 해임투표 중지 명령을 사법기관인 수원지법과 행정기관인 수원시가 동시에 내린 것이다.

만신창이 되어 병원으로

이로써 3개월 반 동안 진행된 '남기업 회장 해임투표'는 끝이 났다. 법원의 판결과 수원시의 적극적 행정이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선관위원 1명이 자격이 상실돼서 저들도 더이상 해임투표를 진행할 수 없었다. 해임투표 3회, 회장 재선거 1회, 가처분 신청 3회, 수도 없이 드나든 수원시 공동주택관리과, 정말 아파트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었다.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쳤다. 3개월 반 동안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고 식사도 거르기 일쑤였다. 말 그대로 만신창이가 된 나는 결국 병원으로 갔다. 연구소 동료들에게 연구과제를 제대로 진척시키지 못한 미안함도 컸다.

그런데 해임이 되지 않았다고 해서 나의 고생이 끝난 게 아니었다. 아직도 임기는 1년 9개월이나 남았고, 내가 회장을 사임하지 않는 한 임기가 다 하는 날까지 저들과 1달에 1~2번 얼굴을 맞대고 회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지칠 줄 모르는 저들은 다음 작전에 돌입했다. 그러나 이제 나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야심 찬 반격을 준비했다.

그런데 나는 대체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걸까?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입주민의 무관심'이라는 바다에서 홀로 저 이리 떼들에게 사정없이 물어뜯기면서 버티고 있는 걸까? 그냥 사임하면 되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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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자유연구소(landliberty.or.kr) 소장. 토지정의와 기본소득, 그리고 통일을 염두에 둔 대안 국가모델에 관심을 갖고 연구와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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