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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세비야에 갔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와 이어집니다.)

얼음이 모두 녹을 때까지 샹그리아를 즐긴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우리는 조금 더 강에 가까이 가보기로 했다.

서서히 해가 질수록 쌀쌀한 기운이 감돌았고, 강 근처로 가니 더욱 그랬다. 하지만 11월에 반팔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여태껏 춥지 않았던 게 더 신기한 일이었다. 
 
 세비야 과달키비르 강
 세비야 과달키비르 강
ⓒ 송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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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건너편 늘어선 알록달록한 건물들은 이곳이 '유럽'인 걸 느끼게 해줬다. 어디선가 이런 사진을 본 것도 같은데. 사진이 아니라 실제 내 시야라는 점에 감탄했다.

사실 단지 큰 길을 따라 걸어왔을 뿐, 세비야에 이렇게 멋진 강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강을 따라 길이 난대로 마냥 걸었다. 점점 강과 가까워지는 해를 올려다 보며 우리를 이곳으로 안내해준 우연에 감사했다.
 
 세비야 과달키비르 강
 세비야 과달키비르 강
ⓒ 송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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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찾아보니 이 강의 이름은 '과달키비르 강'이었다. 스페인어로 'Guadalquivir, Río'라 표기하며 아랍어로 '큰 강'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스페인에서 네 번째로 긴 강으로 코르도바 지역까지 연결돼 안달루시아의 충적평야를 이룬다고 한다. 

강을 따라 걸으면 세비야의 관광 명소인 '황금의 탑'과 '스페인 광장'이 나온다고 한다. 전혀 몰랐다. 심지어 유명한 '이사벨 2세 다리(세비야를 상징하는 다리이자 과달키비르 강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 세비야 최초 철강제로 만들어졌다. 1976년 4월 역사적 기념물로 지정)'가 이 강의 명소라던데… 아마 모르고 지나쳤어도 보긴 봤을 거다. 아무튼 우리는 이런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강 근처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앉아 멍하니 해가 지는 걸 바라보았다. 

물을 바라보는 것만큼 마음이 편해지는 게 또 없다. 어디선가 '물은 사람은 빨아들이는 힘이 있어, 가만히 보고 있으면 몸이 점점 앞으로 기운다'는 설명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강과 가까이 가고 싶었던 걸까? 
 
 세비야 과달키비르 강
 세비야 과달키비르 강
ⓒ 송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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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근처에는 여러 사람이 있었으나 서로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띄엄띄엄 저마다 명소를 찾아 홀로 혹은 둘, 셋, 넷… 모여 강과 함께 떨어지는 해를 보았다. 나와 친구는 이때 사랑과 노후에 대해 이야기했던 거 같다. "지긋한 나이가 되면 사랑하는 사람과 세비야에 오고 싶다" 뭐 이런 이야기. 실제로 세비야에서 노부부를 참 많이 봤다. 

여전히 그 생각은 변함없다. 유럽여행을 다녀오고 난 뒤, 나의 미래에 '유럽'이 들어가는 일이 잦아졌다. 예를 들면 사랑하는 사람과 밤 비행기로 파리를 내려다 보기, 단골이 되었던 바르셀로나 카페에 함께 가기, 세비야 강을 보며 지는 해에 비치는 주름 마저 사랑스러워하기 등등. 모두 '언젠가'라는 명제가 붙고, 굳이 유럽이 아니더라도 가능하지만 미래란 그런 거니까. 
 
 세비야 과달키비르 강
 세비야 과달키비르 강
ⓒ 송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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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해가 졌다. 노을을 바라보며 해가 다 져버리기 전에 움직이기로 했다. 왠지 노을까지 보고 나면 평화가 쓸쓸함으로 바뀔 것만 같았다.

떠나기 전 물에 쏟아지는 빛을 보며 느리게 눈을 슴벅였다. 빛이 물에 만들어내는 길은 아름답고 황홀했다. 그리고 과달키비르 강에서 본 '빛길'은 유난히 붉었다. '이게 바로 세비야다. 세비야의 태양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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