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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도 살기 좋아요."

지난 9월 3일, 수원 지동의 주민들은 성남 단대동의 논골 마을을 찾아갔다. 10월 19일로 예정된 마을 축제를 준비하며, 잘한다고 소문난 성남 논골 축제를 보고 배우기 위해서였다. 몇몇의 지동초등학생들이 엄마를 따라 나섰다. 지동에 사는게 어떻냐고 물으니 망설임 없이 살기 좋다고 대답한다.
 
지동 마을자치공동체 사람들은 '노을빛 사람들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 성남시 논골마을을 찾았다.
▲ 성남 논골마을을 찾은 지동 주민과 어린이들 지동 마을자치공동체 사람들은 "노을빛 사람들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 성남시 논골마을을 찾았다.
ⓒ 강봉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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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동은 과거 살인사건으로 동네가 흉흉해진 뒤, 마을을 가꾸는 주민들의 노력이 수년째 계속됐다. 그 땀방울들 덕분에 지금은 수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망대인 노을빛 전망대를 자랑하며 벽화 마을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재개발 지정과 해제가 계속되고, 고령의 주민들과 영세 가정들, 다문화 주민들이 늘어가며 이웃 간의 소통과 유대감의 절실해졌다. 마을자치와 공동체를 꿈꾸는 지동의 '노을빛 사람들'이 마을 축제를 준비하는 이유였다.
 
유쾌한 윤수진 관장의 이야기를 지동주민들과 아이들이 경청하고 있다.
▲ 단대동 논골마을 이야기를 전해주는 윤수진 논골도서관장 유쾌한 윤수진 관장의 이야기를 지동주민들과 아이들이 경청하고 있다.
ⓒ 강봉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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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 단대동의 논골도서관장 윤수진씨는 개구쟁이 아이들과 함께 온 '노을빛 사람들'을 향해 기운차게 말했다. 단대동 주민들도 역시 10월 26일에 있을 논골 축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만나고 얘기하는 게 시작입니다."
"우리 동네 마을회의를 '두목회'라 불러요. 두목회에는 중요한 원칙이 있어요."


소수의견을 중히 여긴다, 모든 의견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공개한다, 모두 다 얘기하고 모두 듣는다, 비방 욕설은 퇴장한다, 자율참석하고 자격제한은 두지 않는다는 두목회 원칙들이 하나하나 왜 중요한지 강론했다.

'닭잡고 꼬끼오'란 축제 행사가 있었다. 닭 100마리를 운동장에 풀어 놓고 잡는 사람이 보내주고 싶은 사람에게 사연과 함께 닭을 보내주는 행사였다. 이 제안은 처음 나왔을 때 대부분 반대했었다. 준비도 많고 다치고 난리난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회의가 거듭될 때마다 이 제안은 자라갔다. 지금은 가장 인기 있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 소수의견을 무시했으면 보지 못했을 광경이었다.

 
논골 마을 회의 두목회와 논골 마을 축제 등의 활동 모습이 논골 도서관에 전시되어 있다.
▲ 논골 마을의 회의와 축제, 마을학교 활동 모습  논골 마을 회의 두목회와 논골 마을 축제 등의 활동 모습이 논골 도서관에 전시되어 있다.
ⓒ 강봉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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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를 마친 위원들은 반드시 찾아가는 주민설명회를 열었다. 324회란 숫자를 자랑할 만했다. 축제를 위한 회의는 3월부터 10월까지 계속되었다. 어찌 사냐고 잘 사느냐고 묻는 게 회의였다.

"회의가 잘되는 마을은 뭘 해도 잘됩니다."

뿐만 아니었다. 만남의 크기가 커져 마을 전체 연석회의도 만들어졌다. 5년째다. 단대동 주민단체들 - 학부모회, 동 주민단체들, 마을동아리, 논골 도서관, 주민자치회 등등이 참여했다. 학교장, 우체국장, 동장, 경찰서장, 복지관장 등이 참여하는 기관장 회의도 있었다. 누구나 참관하고 말할 수 있었다. 회의를 통해 지역의 의제가 공유되었다.
 
논이 많아 논골이라 불리던 시절의 사진(왼쪽 위)부터 철거민 이주사업 당시 주거하던 모습(오른쪽 위)과 현재 빌라들로 가득 들어선 단대동의 모습이다. 빌라들 사이의 틈이 사람 하나 들어갈 공간만큼만 있다.
▲ 단대동 논골 마을의 과거와 현재 논이 많아 논골이라 불리던 시절의 사진(왼쪽 위)부터 철거민 이주사업 당시 주거하던 모습(오른쪽 위)과 현재 빌라들로 가득 들어선 단대동의 모습이다. 빌라들 사이의 틈이 사람 하나 들어갈 공간만큼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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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지저분해 보인다는 위정자의 지적하나로 시작됐다고 알려진 철거민 이주사업으로 만들어진 성남이었다. 맨 땅에 천막 하나 짓고 살던 과거의 그 주민들이 부당한 권력을 물리치고 기본권을 찾은, 이른바 '광주 대단지 사건'의 역사를 만든 것도 만나고 이야기한 게 시작이었다. 

'성남 아이유'라 불리는 윤관장의 단대동 마을 역사 이야기엔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서울로 일하러 6시간을 넘게 가야했던 주민들은 결국 건축업자들에게 딱지를 넘겼습니다. 그 뒤로 지금처럼 빌라가 잔뜩 들어선 단대동이 태어났습니다."
 
지동초등학교 친구들과 주민들이 계단을 즐기고 있다.
▲ 단대동에서 양지동으로 넘어가는 계단 지동초등학교 친구들과 주민들이 계단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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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힘이 나더라구요."

논골 도서관 팀장 김경옥씨가 말하는 논골 도서관은 만남의 공간이었다. 처음엔 당신도 잠깐 살고 떠나려 했단다. 그런데 머물며 같이 아이 키우는 사람들을 보니 힘이 나고 그렇게 좋더란다. 정이 들어 26년째 살고 있다는 김경옥 팀장.

아이 키우는 부모들이 모일 공간을 찾기 시작했다. 논골 도서관은 초기에 '마을공간'으로 행정청에 신청됐다. 그러나 당리당략에 밀려 통과되지 않다가 '도서관'으로 바꿔 신청하자 길이 열렸다. 논골 도서관 1층은 자연스럽게 웃고 떠드는 공간이 되었다. 지금은 장구교실도 요가교실도 열린다. 책장들에는 바퀴가 달려있었다.
 
성남시 단대동 논골 도서관은 아이 키우는 부모들이 모일 공간을 고민하다 시작됐다.
▲ 입구에 걸린 논골 작은 도서관 팻말 성남시 단대동 논골 도서관은 아이 키우는 부모들이 모일 공간을 고민하다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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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골 도서관 책장에 달린 바퀴는 무엇이든 가능하게 하려고 고민하는 열린 마음의 상징이다.
▲ 논골 도서관 논골 도서관 책장에 달린 바퀴는 무엇이든 가능하게 하려고 고민하는 열린 마음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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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놔두세요."

아이들이 심하게 굴지 않는 이상, 잠을 자건 의자를 모아 침대를 만들건 하지 말라
는 말이 절대 나오지 않았다. 떠드는 도서관이었다. 2층은 아주 조용했다. 진짜 도서관이었다. 문화교실이라 써 있는 3층은 강의 공간이었다. 아침 9시부터 밤 12시까지 도서관은 열려 있었다.

동네를 바꾸는 일은 아이 키우는 부모들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마을을 꾸미고 가꾸는 것도 내 아이가 지나는 곳이기에 더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지동에서 온 손님들은 김 팀장과 함께 단대동을 한 바퀴 돌았다.

도서관 도로 건너 높은 계단을 오르자 평지에 집들이 가득했다. 볕이 잘 든다는 양지동으로 넘어왔단다. 단대동은 방 2칸짜리가 많고, 양지동은 방 3칸짜리가 많단다. 단대동의 좁은 땅에 다닥다닥 들어선 건물들은 사람보다 돈이 먼저던 시절의 자화상이었다.
 
집주인은 놀리고 있는 지하공간을 마을 주민들에게 공유했다. 대문이 사라지고 담장이 허물어졌다.
▲ 대안공간 틈이 있는 가정집  집주인은 놀리고 있는 지하공간을 마을 주민들에게 공유했다. 대문이 사라지고 담장이 허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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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여유롭게 사람답게 살아보자는 생각들이 모여 마을을 바꾸어갔다. 기업이 후원하는 재단을 찾아내 우중충한 시멘트 벽에 그림을 그렸다. 해보고 싶다는 어르신들과 대학 동아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당신 집 지하를 내어주겠다는 주민이 나타나셨다. 주인이 사는 집의 대문이 헐리고 담장도 허물어졌다. 축축한 지하 방은 '대안공간 틈'이라는 예술 공간으로 태어났다. 그 틈에서 열리는 전체공개전환 이라는 전시회의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왼쪽 밑에 대안 공간 틈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 대안공간 틈 왼쪽 밑에 대안 공간 틈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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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재능을 내어주겠다는 사진작가도 나타나셨다. 사진이 마음에 들었던 동네 어르신은, 세상 소풍을 마치시던 날 그 사진을 당신 앞에 세우고 가셨다. 영정 사진을 찍어주자는 봉사가 시작됐다. 아이디어가 또 생겼다. 아이들의 성장사진을 담자고 했다. 이런 사진들의 전시회가 열었다.

카페도 생겼다. 논골 카페는 한울타리 공동체라 불리우는 장애우 부모들의 모임에게 위탁되어 부모들의 수입원이 되었다. 마을학교에선 아저씨가 아이들에게 당구를 가르쳤다. 머리염색과 메이크업, 네일아트를 요구하는 소년소녀들이 동네 아저씨 아줌마를 강사로 만들었다. 논골에는 '배워 얻었으면 반드시 나눠 줘라'는 말이 강령처럼 깔려 있었다.
 
카페 안 TV엔 단대동 마을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긴 길가에서 벤치가 놓여 있는 곳은 논골 카페 밖 뿐이었다. 논골 카페는 장애우 부모님들의 모임이 신탁받아 경영하고 있었다.
▲ 논골 카페 카페 안 TV엔 단대동 마을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긴 길가에서 벤치가 놓여 있는 곳은 논골 카페 밖 뿐이었다. 논골 카페는 장애우 부모님들의 모임이 신탁받아 경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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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전상영씨는 논골 마을을 찍는다. 작업 공간 외의 공간은 사실상 마을 사람들의 공간이 되었다.
▲ 논골 갤러리 디딜틈 사진작가 전상영씨는 논골 마을을 찍는다. 작업 공간 외의 공간은 사실상 마을 사람들의 공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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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골 축제나 벼룩시장 같은 행사 때 자리는 단대동 주민들이 독차지 하지 않았다. 멀리 강릉에서도 왔다. 논골 마을학교 친구들이 폐교 체험하며 인연을 맺었던 강원도 산골에서도 축제에 함께 했다. 벼룩시장을 무척 즐기는 다른 시동 주민들도 함께 자리를 차지했다.
 
사진 작가 전상영 작품. (전시된 사진을 찍음)
▲ "그곳에 가자"  사진 작가 전상영 작품. (전시된 사진을 찍음)
ⓒ 전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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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동에서 찾아온 아이들은 평범한 동네였건만, 여행은 여행인지 종일 들뜨고 신나했다. 저학년 친구에게 맛있게 먹은 것 빼고 뭐가 기억에 남느냐고 물으니, 떠드는 도서관이라 말했다. 고학년 친구는 우리 동네 (지동) 벽화가 더 예쁘고 살기 좋은 거 같다고 말했다.

지동 마을만들기 협의회장 이성욱씨는 경청과 존중이 기본이라는 것을 확인했다며, 지동에서 즐겁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먼저 찾아야겠다고 짚었다. 과거 권위적인 모습들로는 이런 풍경을 만들 수 없다고도 반성했다. 돌아가자마자 지동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얼른 만나봐야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10월 19일 있을 "지동 노을빛 사람들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바빠지고 있었다.
 
지동 마을 사람들이 10월 19일 예정인 마을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 벤치마킹에 나섰다.
▲ 지동 마을 자치공동체의 논골도서관 벤치마킹 인증샷 지동 마을 사람들이 10월 19일 예정인 마을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 벤치마킹에 나섰다.
ⓒ 노을빛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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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벤치마킹은 경기도 따복 공동체 지원센터의 후원으로 이뤄졌고, 지동 마을자치공동체 노을빛 사람들이 주최, 주관하고 지동초등학교 학부모회와 통장협의회가 참여했다.

태그:#노을빛 사람들, #탐방, #마을 공동체, #지동, #논골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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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은 필연적으로 무섭거나 치욕적인 일들을 겪는다. 그 경험은 겹겹이 쌓여 그가 위대한 인간으로 자라는 것을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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