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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직장을 다닐 때 결혼을 한 뒤 여러 가지로 고민이 많았다. 일단 남편의 직장은 대전이고 나의 직장은 서울이었다. 주말 부부를 할 것인가, 한쪽이 직장을 그만두고 합칠 것인가를 비롯해 신혼집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 많이 고민했다. 실상 첫 아이를 낳을 때까지 우리는 신혼집조차 없이 생활했다. 남편은 회사 근처의 기숙사에 살았고 나는 친정에 머물렀다. 결국 내가 임신을 하게 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이 있는 대전으로 내려가기로 결정하면서 우리 부부는 함께 살게 됐다. 나 혼자면 상관없지만 아이가 있는 상황에서 주말부부는 자신이 없었다.

나의 결정을 듣고 당시 상사였던 팀장은 여러 번 만류했다. '여성들은 한 번 경력이 단절되면 다시 돌아오기가 너무나 힘들다'면서 '휴직 상태라도 좋으니 퇴사하지 말고 일단 이름만이라도 걸어놓고 내려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고민했으나 결국 퇴사를 선택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경력이 오랫동안 끊길 줄 예상하지 못했던 데다가 휴직 상태로 직을 걸어둔 직원을 주변에서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육아 휴직 마치고 돌아왔을 뿐인데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다
 
 나는 임신 후 퇴사를 선택했다. 출산 및 육아로 휴직 중인 직원들은 양가적인 감정의 대상이 되곤 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누가 임신했다고 하면 축하를 하기에 앞서 자신의 안위부터 걱정했다. 출산과 육아로 자리를 비울 직원의 공백을 남은 사람들이 메워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임신 후 퇴사를 선택했다. 출산 및 육아로 휴직 중인 직원들은 양가적인 감정의 대상이 되곤 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누가 임신했다고 하면 축하를 하기에 앞서 자신의 안위부터 걱정했다. 출산과 육아로 자리를 비울 직원의 공백을 남은 사람들이 메워야 했기 때문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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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사내에서 출산 및 육아로 휴직 중인 직원들은 양면적인 감정의 대상이 되곤 했다. 주변에서는 누가 임신했다고 하면 축하를 하기에 앞서 자신의 안위부터 걱정했다. 매정하게 들릴 수 있지만 실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휴직 중인 직원을 위한 새로운 직원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출산과 육아로 자리를 비울 직원의 공백을 남은 사람들이 메워야 한다는 뜻이다. 가뜩이나 버거워 죽겠는데 남의 일까지 도맡으라는 요구가 반가울 리 없다. 간혹 정원과 관계없이 단기 계약직이나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책임의 범위가 다르고 대부분 단순 작업을 하므로 실상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래전 같은 팀의 동료였던 이가 첫째 임신 후 출산·육아 휴직으로 1년가량 자리를 비우고 돌아왔던 적이 있는데, 그녀는 복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주변의 모든 사람은 겉으로 축하한다고 말하면서도 뒤에선 수군거렸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로 떠오를 때마다 '어떻게 그렇게 조심성 없이 또 임신을 할 수가 있느냐'는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당시에 그녀를 정말로 싫어했다. 그녀가 담당하고 있던 업무가 전부 나에게 오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어떻게 저렇게 이기적이지?'라고 속으로 생각했었다.

둘째를 낳으러 간 그녀가 자리를 비운 1년 동안 여러 번의 조직 개편이 일어났고 복직한 그녀에겐 남들이 꺼리는 자리가 배정되었다. 사람들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남들 일할 때 자기 애 본다고 자리 비웠는데 당연한 거 아냐?'라는 수군거림이 이어졌다. 오래지 않아 그녀는 퇴사했다. 사람들은 퇴사를 두고도 다시금 수군거렸다. '휴직 수당처럼 챙길 것은 다 챙기고 단물이란 단물은 다 빼먹고 간다'고.

그런 상황을 알고 있는 상태였기에 섣불리 휴직할 수 없었다. 일단 복직을 할지 안 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복직하지 않으면 닥칠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느 것 하나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동료들에게 업무적인 부담을 주고 싶지도 않았다. 동시에 언제든지 마음먹으면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전에서 취직할 수도 있는 거고 여차하면 서울에서 취직해 다시 주말부부를 할 수도 있다'며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첫 아이를 출산한 뒤에야 그것이 얼마나 천진난만한 생각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아이가 있는 상황에서 원하는 직장을 금방 구할 수 없을 뿐더러, 직장을 구하더라도 내 상황에 맞춰 돌보미를 구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간혹 6개월에서 1년 단위의 육아휴직 기간을 갖지 않고 출산휴가 3개월 직후 복귀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3개월짜리 아기를 얼마나 떼놓기 어려운지, 100일짜리 갓난쟁이가 얼마나 연약하고 어린지를 아이를 낳아보고서야 알았다. 그때 그들이 어떤 심정이었는지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옛 동료들의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대부분 나처럼 결혼 및 임신을 거쳐 회사를 떠나거나 욕을 잔뜩 먹으면서 버텼다. 그러나 온갖 욕을 먹으며 버텼던 사람들 역시 출산과 육아 기간의 부재에 대한 대가로 인사평가에서 최하위의 고과를 받아, 동료나 후배에게 승진이 밀리고 조직개편 때마다 위태로운 대상이 되었다. 그들은 그렇게 점차 원하지 않는 곳으로 밀려났고 결국 몇 명을 제외한 대부분은 퇴사했다.
  
정갑윤 의원은 모르는 임신 후 뒤바뀐 삶 
 
 청문회장에서 자유한국당정갑윤 의원이 후보자에게 질의하고 있다.
 정갑윤 자유한국당 의원은 2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미혼인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에게 "우리 후보자 정말 훌륭한 분이에요. (출산 또한) 갖췄으면 100점짜리 후보자다"라는 성차별 발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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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기록한 것을 두고 여기저기서 말이 많다. 심지어 지난 2일 정갑윤 자유한국당 의원은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에게 "아직 결혼 안 했냐"고 물으면서 "본인의 출세도 좋지만 국가 발전에 기여하길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사람들은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인생에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갖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싶다. 여성을 임신과 출산을 해야 할 일종의 '가축'으로 보는 것에 가깝다. 하기야 '가임기 여성 지도'를 만든 나라에 무엇을 기대할까.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아이를 낳으면 돈을 많이 주자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출산율에 경제적인 문제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으나 이 역시 본질과는 거리가 있는 이야기다.

임신과 출산은 경제적인 문제보다 아이를 낳은 이후 두 사람의 삶에 얼마나 큰 변화가 일어나는지와 관계가 깊다. 대한민국에서 임신과 출산을 겪은 뒤 여성의 삶은 그 전과 완전하게 달라진다. 남성 역시 변화를 겪지만 여성만큼은 아니다. 양육의 부담은 여전히 여성이 더 많이 짊어지고 있고 경력을 구축해 나가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물론 출산 이후 성공적으로 경력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의 영혼을 갈아 넣으면서 혹은 본인 스스로를 갈아 넣어 그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낳은 두 아이를 아주 사랑한다. 결혼 후 지금까지의 선택에 후회가 없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남편이 적극적으로 육아와 가사를 분담하고, 나의 입장에 대해 배려를 해준 덕분이다. 지원해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여러모로 어려웠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배우자 한 사람의 인성에 기대야 하는 관계가 얼마나 위태로운지에 대하여 종종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을 대하는 사회의 근본적인 시각과 경력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없는 한 혼인율과 출산율 저하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출산율 저하가 안타까운 분들은 '아이 낳으라고 닦달하거나 돈을 주겠다'고 말하는 대신 '여권 신장 운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동참'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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