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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 밑에 있어야할 봉선화가 조용한 사찰(寺刹)의 한쪽, 수렁에 빠져 있다.
 울 밑에 있어야할 봉선화가 조용한 사찰(寺刹)의 한쪽, 수렁에 빠져 있다.
ⓒ 엄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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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밑에 있어야할' 봉선화가 조용한 사찰(寺刹) 한쪽, 수렁에 빠져 있다.

기다란 저 끄트머리 오른쪽의 꽃밭으로부터 씨앗이 떨어져 수로를 따라 구르다가 멈춘 곳, 그곳이 이 봉선화의 터전이 되었다. 한줌 남짓한 흙에서 뿌리를 내렸고, 빛을 찾아 사각 틈새 비집고 올라와 꽃이 피었다.

가느다란 대궁에 초록빛 열매주머니 주렁주렁 무겁게 달린다 해도, 좌우 양 옆으로 지지대가 되어 줄 튼튼한 스틸 그레이팅이 있으니 비바람에 쓰러질 염려야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갑한 심정은 어쩔 수 없으리라. '너도 참 고달프겠구나!' 어쩐지 처연한 심정에 애처롭게 바라보며 생각에 젖다보니 저절로 흘러나오는 노래가 있다.
 
"울밑에선 봉선화야 / 네모양이 처량하다/ 길고긴날 여름철에 / 아름답게 꽃필적에 (생략)"

김형준 작사, 홍난파 작곡의 '봉선화'다. 이 노래의 3절에는 한겨울 찬바람에 형체가 없어져도 화창한 봄날에 환생키를 바란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데, 독립을 갈망하는 민족의 염원이 가득하다. 일제강점기에는 반일 사상의 노래라 하여 금지곡이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하고, 한국인이면 누구나 불러봤을 애창곡이다.

봉선화는 줄기와 잎에 많은 밀선(蜜腺, 꿀샘)이 있어 개미들이 무척 좋아한다. 허리를 굽히고 눈높이를 낮추어 가만히 들여다보면 봉선화 줄기 위로 연신 오르내리는 개미들을 볼 수 있다. 또한, 가까운 곳에 자잘한 흙 알갱이 수북한 사이로 구멍 뽕뽕 뚫린 개미집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인도, 말레이시아, 중국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는 봉선화는 언제부터 이 땅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 기록에도 있는 걸 보면 무척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과 친숙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기록에도 '봉선화'로 되어 있는데,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봉숭아'라는 이름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국의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는 '봉선화'로 등록되어 있으므로 그를 따르는 것이 맞겠다.
 
 장미꽃 모양의 겹꽃 봉선화
 장미꽃 모양의 겹꽃 봉선화
ⓒ 엄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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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엄마는 반딧불이 날아다니는 깜깜한 여름 밤, 뒷마당에 있는 장독대에서 언니와 나의 손톱에 해마다 봉선화 꽃물을 들여 주셨다. 한낮에 미리 따놓아 밤이면 시들해진 꽃잎을 백반과 함께 돌멩이로 콕콕 찧어 손톱위에 푸짐하게 올려놓고 닥나무의 넓은 잎으로 정성껏 감싼 후 면실로 돌돌 동여매어주면, 망가지지 않을까 손가락을 뻗쳐들고 있었고 행여 자다가 빠지지나 않을까 조바심에 편히 누울 수도 없다.

다음날 아침 곱고 깔끔하게 꽃물 들어 있기를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풀어보면 손톱은 물론 손가락 한마디만큼 온통 주황색으로 변해 있었지만 그마저도 좋았기에, 만나는 사람마다 보여주며 자랑하던 기억이 아련하다. 또한, 소녀 시절 아이들 사이에는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손톱에 들인 봉숭아 꽃물이 첫눈 내릴 때까지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그렇기에, 손톱의 꽃물 들인 부분이 점점 짧아지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기도 했다.

봉선화의 붉은 색소 성분은 꽃과 함께 잎에도 많이 들어 있다하니, 낭만은 좀 없겠지만 꽃잎의 양이 부족하다면 잎으로 들여 볼 만도 하다.

무릇, 봉선화의 계절이다. 집집마다 담장아래 봉글 봉글 봉선화가 피었다. 오늘밤엔 반짝이는 별빛아래, 뜨렌비 쪽마루에서 오랜만에 봉숭아 꽃잎을 찧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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